일본군 위안부, 가슴시린 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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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군 위안부, 가슴시린 그 이야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요 약

2. 명 칭

3. 개요 및 실상

4. 배경과 모집

5. 차출 방법과 대상
5.1. 광고
5.2. 대상
(1) 가난 &가족의 빚 청산
(2) 유괴와 납치
(3) 현지 여성 조달
(4) 독신여성 조달
(5) 근로정신대 탈영자

6. 기 타
6.1. 진상규명과 배상을 위한 움직임
6.2. 일본 정부의 대응
6.3. 아시아 국민기금 문제
6.4. 작은 소녀 ‘평화비’

- 관련 인물 및 증언
- 사진자료
- 관련음악
- 관련동영상

본문내용

. 고등과 1학년 일본인 담임 선생이 가정방문을 와서 정신대로 나가라고 했다. 배우기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했다. 선생이 가고 난 뒤 엄마는 안 된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으나, 그때는 선생이 말하면 거역하지 못할 형편이라 가게 되었다.”
“시모노세키에 도착한 후 다시 기차를 타고 도야마현(富士縣)의 후지코시(不二越) 비행기공장으로 갔다. 처음에는 공장을 두루 구경시켜주고 선반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가르쳐주었다.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사방에 담이 있고 문지기가 있었다. 기숙사에서 꽤 걸어가야 공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장에서는 가슴에 여자정신대(女子挺身隊)라고 박은, 누르스름한 옷과 모자를 주었다. 기숙사에 돌아오면 집에서 가져간 다른 옷을 입었으나 공장에서는 그 옷만 입었다.“
“공장에 있을 때는 일도 힘들었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참을 수 없었다. 도야마현에서는 밥과 된장국, 단무지가 고작이었고 밥도 아주 조금밖에 주지 않았다. 밥을 아껴 먹으려고 한 알씩 한 알씩 세며 먹기도 하고, 세 숟가락에 다 먹어치우기도 했다. 밤일을 할 때는 일이 끝나고 기숙사에 오면 아침을 주고는 저녁까지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으로 가야 할 밥을 몰래 가져 와서 먹기도 했다."
"도야마현에 도착한 지 2달 정도가 되었을 때 배가 고파서 새벽에 도망을 나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기숙사 여자가 붙잡으러 왔다. 공장으로 잡혀가 빰을 많이 맞았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궁리하여 얼마 후 친구와 함께 다시 도망을 쳤다.
밤이었다. 철조망을 쳐들고 나와 전에 도망갔던 데와 다른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공장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군인에게 잡히고 말았다. 친구와는 죽으나 사나 손을 꼭 잡고 가자고 했는데 잡혀서 트럭에 타고 보니 나뿐이었다."
“난 거기서 ‘하루에’로 불렸다. 군인들이 이름을 부르면 여자들이 담요를 들고 군인을 따라 나가야 했다. 깜깜한 야산에서 몇 사람인지도 모르는 군인들에게 당하곤 했다. 너무 당해서 밑이 아파서 걸음을 못 걸으니까 데리고 간 군인들이 끌다시피하여 천막으로 데리고 왔다. 그때의 비참한 느낌이란 정말 말로 다 못한다.”
“어느 날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여 동료 하나와 부대까지 가봤는데 보초도 없고 군인들이 모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그래도 무엇 때문인지 몰라 길 쪽으로 나서니까 길에서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조선인 아저씨를 붙들고 울었다. 어디 가시는 길이냐고, 나도 좀 데리고 가달라고 하니까 어찌된 애냐고 놀라면서 물었지만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도야마현까지 데려다달라고 했다. 그 아저씨가 오사카까지 데려다줄 수는 있다고 해서 급히 옷 보따리를 챙겨 들고 트럭을 탔다. 그때 아마 거기 있었던 여자 두 세명도 같이 탄 것 같다. 다른 조선 여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오늘을 맞이 한다.”
증언 1집 발췌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서울: 도서출판 한울, 1993년)
사진자료
▶1945년 8월 8일 버마 랑군에서 연합군 장교와 인터뷰 중인 중국인 위안부의 모습
▶1945년 8월 14일 미얀마의 미이토키나에서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힌 한국인 군대 위안부들
▶위안소에서 탈출하다 잡혀 온몸에 문신을 당한
위안부 출신 할머니
▲전선의 이동으로 일본군 트럭에 실려 이동 중인 위안부들.
현지 위안부와 달리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 다닌 경우가 많았다.
▲ 상해에 처음 세워진 위안소의 외부
정문에 “성전의 승리를 위해 용사를 환영합니다. 신심을 다해 봉사하는 일본 여성의 서비스”라는 글이 보인다.
▲ 나무막사로 지어진 상해 육군 오락소
각 방에 위안부를 한 명씩 넣어두고 군인들을 받게 하였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위안소 형태 외에도 중국인 집이나 상가를 이용, 전방에서는 천막으로 급조하여 사용하였다.
관련음악
1. ‘소녀의 기다림’
-일반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만든 노래
[가사]
노란 민들레를 좋아했던
분홍 복숭아에 웃음 짓던
푸른 시냇가로 모여들던
추억 속에 잠든 소녀가 있어
가을 밤 스러진 낙엽처럼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하얀 눈길 위로 피어나는
꽃잎의 향기를 따라 걸었네
멈추지 않는 비에도 돌아서지 않아
봄결의 바람은 내 곁에 머무르네
이제 지나간 발걸음 그 위에서
망설이지 않아
내 삶과 함께 한 그 미소를 기억하네
나의 가슴 속 가득한 이 소원을
기억하길 바라
이런 내 마음을 기억해주길 바라
노란 민들레를 좋아했었던
분홍 봉숭아에 웃음 짓던
푸른 시냇가에 모여들었던
소녀의 기다림을 기억하네
2. ‘비 화(悲花)’
- 현역 육군 장병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러간 소녀의 아픔을 노래
[가사]
해 맑은 눈동자에 풋풋한 웃음 짓던 꿈 많던 열여섯 꽃다운 소녀야
채 피지도 못하고 짓이겨 버려진 너는 가녀린 위안부 소녀
여린 손목 전쟁터로 슬피 끌러가 아리따운 꽃망울은 무심하게 꺾어지네
사슴같은 두 눈에 그렁 그렁 눈물만 가득
선혈처럼 흘러 하염없이 가슴 적시네
아 그대는 채 피지도 못한 한 송이 꽃 가녀린 위안부 소녀
아 그대는 채 피지도 못한 한 많은 꽃 슬픔 간직한 위안부 소녀
관련동영상
유투브 영상캡쳐
[유투브 동영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일본군 ‘위안부’
참고자료
<인터넷 URL>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홈페이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9246&cid=200000000&categoryId=200000169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홈페이지 http://cyber.nanum.org/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9246&cid=200000000&categoryId=200000169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38169&cid=505&categoryId=505
네이버 블로그 (베이비호야의 행복바이러스) http://blog.naver.com/sssppp82?Redirect=Log&logNo=9017924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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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4.17
  • 저작시기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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