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기
2. 우리 사회 정치형태로서 자유민주주의의 함의(含意)
(1)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성과 특징
(2)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로서 ‘대화와 타협’ 또는 ‘다수결의 원칙’
(3) 가치들 사이의 대립에서 무엇이 우선에 서고 있는가? - 경쟁논리
3.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노력
(1) 참여민주주의에 대하여
(2) 법과 제도의 의미 되살리기 - 시민불복종 운동
4.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일상의 흐름으로서 파시즘
(1) 우리 사회의 파시즘을 보여주는 요소들
(2) 이 논리들은 어떤 과정으로 형성되는가?
(3) 파시즘은 어떤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가?
5. 마치며
참고문헌
2. 우리 사회 정치형태로서 자유민주주의의 함의(含意)
(1)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성과 특징
(2)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로서 ‘대화와 타협’ 또는 ‘다수결의 원칙’
(3) 가치들 사이의 대립에서 무엇이 우선에 서고 있는가? - 경쟁논리
3.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노력
(1) 참여민주주의에 대하여
(2) 법과 제도의 의미 되살리기 - 시민불복종 운동
4.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일상의 흐름으로서 파시즘
(1) 우리 사회의 파시즘을 보여주는 요소들
(2) 이 논리들은 어떤 과정으로 형성되는가?
(3) 파시즘은 어떤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가?
5. 마치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화하고 항상 긴장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거대한 판옵티콘과 같다. 법과 제도로, 군대와 학교로, 가부장적 질서로, 그리고 각종 매스컴으로 훈련되고 교화된 현대인들은 이와 같이 경쟁과 배타의 논리를 내면화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해가는 것이다.
(3) 파시즘은 어떤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가?
그런데 이런 파시즘은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부분 여러 가지 형태로 숨어서 자신의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파시즘에 대해 경고하고 비판의식을 갖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근대)국가는 낡은 신을 극복한 당신들을 꿰뚫어 보는 새로운 우상이다. 그것은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고는 순진하고 귀가 얇은 자, 근시안인 자들을 노린다.”
파시즘이 뒤로 숨는 가장 좋은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이다.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모든 배타성이 용서된다. 애국주의는 전체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영달을 넘어서는 훌륭한 이데올로기인 것 같지만 그것이 배타적이 되는 순간 반드시 약자를 억압하는 논리가 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극심한 차별, 일본에 대한 분노가 힘없는 어린아이들까지 희생자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의 논리로 대체되는 것, 월드컵 축구의 성공을 위해 질서를 잘 지켜야 하고, 외국어를 배워야 하고, 항상 상냥하게 웃어야 한다는 묘한 논리가 그래서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민족주의가 가질 수 있는 배타성에 대해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두 번째는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 속에 숨는 것이다.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들이 효율성이라는 절대 가치로 전도되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의 가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들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국제법도 전쟁을 해야 할 다른 명분도, 그리고 인도주의적 가치도 외면한 채 전쟁을 해도, 그것이 단지 ‘테러와의 전쟁’이기 때문에 용인되는 것 이것이 바로 가치의 전도이다. 극단화된 흑백논리 속에서 자신을 숨기는 논리도 바로 이런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효율성과 합리성을 내세우면서 이것에 부합하지 않는 소수자들에 대해 가차없이 죽음의 칼날을 휘두른다는 사실이다. 효율성보다 소수자의 권리가 더 우선할 수 있으며, 합리성보다 공동체의 선과 사랑과 같은 가치들이 더 우선하도록 하는 것이 파시즘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이다.
세 번째는 형식적 민주주의 속에 숨는 것이다. 다수가 찬성하도록 만들기 위해 매스컴을 동원하고, 정보를 규제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렇게 해서 다수가 찬성하면 그것이 절대 진리가 되어서 다른 소수를 억압하는 일에 사용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형식 속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관철시키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그것의 한 표현이 바로 ‘지역주의’ 아닌가? 이처럼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보호되지 않은 채 그것의 형식만 남아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형식을 조정할 수 있는 자들에 의해 왜곡된다.
네 번째는 ‘보호를 명분으로 한 규제’ 속에 숨는 것이다. ‘규제’는 많이 가진 자들이나 힘있는 자들이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 외에도 국가권력의 자기 유지를 위한 목적 속에서 진행된다. 그것은 때로는 개인의 자유나 권리와 충돌한다. 그 때 우리가 어떤 원칙에 서있어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포르노를 규제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규제’라는 성격을 띠는 순간, 통신상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결국 ‘청소년 보호’냐 ‘표현의 자유’냐 라는 이상한 논쟁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보장해야 할 것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을 동렬에 놓고 논쟁을 시키는 것은 가치간의 경중을 파괴하는 것이다. 물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회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규제는 필요하다. 특히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규제가 없다면 강자가 득세하고 약한 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규제에는 강자에 대한 규제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규제’는 더욱 힘을 가지려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규제가 원칙이 되면 국민들의 권리를 제한하게 된다. 원칙은 국민들의 권리라는 점을 명심하고, 평등하고 자유롭게 공동체를 유지할 권리를 침해하고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만이 필요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5. 마치며
앞에서 참여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참여민주주의라는 형식을 발전시키는 것, 그것은 단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도적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우리의 일상속에 침투해있는 파시즘의 논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일상의 파시즘 논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참여민주주의’의 논리조차도 친 정권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고 객관성을 가장한 힘의 논리로 귀결된다.
우리가 파시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비판의식이 필요하다. 그 비판의식은 때로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그런 문제제기를 인정하지 않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파시즘의 논리들이 조금씩 합리적 논리로 대체되고, 그러면서 사회의 기반이 되고 있는 파시즘의 논리는 조금씩 깨져나갈 것이다. 그것은 일상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저항해보는 것이다. 그것의 여러 표현으로 지금 여러 사회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가 장애라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자신들의 생활권에 대해 당당하게 문제제기 하듯이, 동정과 지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주체로서 문제제기 하듯이 그것은 사회 곳곳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인간의 권리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일할 권리,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각종 위계에 대항하여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권리, 규제당하지 않을 권리, 다양한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들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확장시켜야 한다. 그럴 때에야 일상의 파시즘을 극복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게 된다.
(3) 파시즘은 어떤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가?
그런데 이런 파시즘은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부분 여러 가지 형태로 숨어서 자신의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파시즘에 대해 경고하고 비판의식을 갖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근대)국가는 낡은 신을 극복한 당신들을 꿰뚫어 보는 새로운 우상이다. 그것은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고는 순진하고 귀가 얇은 자, 근시안인 자들을 노린다.”
파시즘이 뒤로 숨는 가장 좋은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이다.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모든 배타성이 용서된다. 애국주의는 전체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영달을 넘어서는 훌륭한 이데올로기인 것 같지만 그것이 배타적이 되는 순간 반드시 약자를 억압하는 논리가 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극심한 차별, 일본에 대한 분노가 힘없는 어린아이들까지 희생자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의 논리로 대체되는 것, 월드컵 축구의 성공을 위해 질서를 잘 지켜야 하고, 외국어를 배워야 하고, 항상 상냥하게 웃어야 한다는 묘한 논리가 그래서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민족주의가 가질 수 있는 배타성에 대해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두 번째는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 속에 숨는 것이다.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들이 효율성이라는 절대 가치로 전도되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의 가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들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국제법도 전쟁을 해야 할 다른 명분도, 그리고 인도주의적 가치도 외면한 채 전쟁을 해도, 그것이 단지 ‘테러와의 전쟁’이기 때문에 용인되는 것 이것이 바로 가치의 전도이다. 극단화된 흑백논리 속에서 자신을 숨기는 논리도 바로 이런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효율성과 합리성을 내세우면서 이것에 부합하지 않는 소수자들에 대해 가차없이 죽음의 칼날을 휘두른다는 사실이다. 효율성보다 소수자의 권리가 더 우선할 수 있으며, 합리성보다 공동체의 선과 사랑과 같은 가치들이 더 우선하도록 하는 것이 파시즘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이다.
세 번째는 형식적 민주주의 속에 숨는 것이다. 다수가 찬성하도록 만들기 위해 매스컴을 동원하고, 정보를 규제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렇게 해서 다수가 찬성하면 그것이 절대 진리가 되어서 다른 소수를 억압하는 일에 사용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형식 속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관철시키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그것의 한 표현이 바로 ‘지역주의’ 아닌가? 이처럼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보호되지 않은 채 그것의 형식만 남아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형식을 조정할 수 있는 자들에 의해 왜곡된다.
네 번째는 ‘보호를 명분으로 한 규제’ 속에 숨는 것이다. ‘규제’는 많이 가진 자들이나 힘있는 자들이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 외에도 국가권력의 자기 유지를 위한 목적 속에서 진행된다. 그것은 때로는 개인의 자유나 권리와 충돌한다. 그 때 우리가 어떤 원칙에 서있어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포르노를 규제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규제’라는 성격을 띠는 순간, 통신상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결국 ‘청소년 보호’냐 ‘표현의 자유’냐 라는 이상한 논쟁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보장해야 할 것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을 동렬에 놓고 논쟁을 시키는 것은 가치간의 경중을 파괴하는 것이다. 물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회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규제는 필요하다. 특히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규제가 없다면 강자가 득세하고 약한 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규제에는 강자에 대한 규제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규제’는 더욱 힘을 가지려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규제가 원칙이 되면 국민들의 권리를 제한하게 된다. 원칙은 국민들의 권리라는 점을 명심하고, 평등하고 자유롭게 공동체를 유지할 권리를 침해하고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만이 필요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5. 마치며
앞에서 참여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참여민주주의라는 형식을 발전시키는 것, 그것은 단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도적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우리의 일상속에 침투해있는 파시즘의 논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일상의 파시즘 논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참여민주주의’의 논리조차도 친 정권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고 객관성을 가장한 힘의 논리로 귀결된다.
우리가 파시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비판의식이 필요하다. 그 비판의식은 때로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그런 문제제기를 인정하지 않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파시즘의 논리들이 조금씩 합리적 논리로 대체되고, 그러면서 사회의 기반이 되고 있는 파시즘의 논리는 조금씩 깨져나갈 것이다. 그것은 일상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저항해보는 것이다. 그것의 여러 표현으로 지금 여러 사회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가 장애라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자신들의 생활권에 대해 당당하게 문제제기 하듯이, 동정과 지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주체로서 문제제기 하듯이 그것은 사회 곳곳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인간의 권리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일할 권리,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각종 위계에 대항하여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권리, 규제당하지 않을 권리, 다양한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들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확장시켜야 한다. 그럴 때에야 일상의 파시즘을 극복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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