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의 시작 [일본열도의 형성][구석기 시대][구석기 시대 생활모습][죠몬 문화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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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열도의 시작 [일본열도의 형성][구석기 시대][구석기 시대 생활모습][죠몬 문화 탄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일본열도의 형성

2. 구석기 시대
(1) 구석기 시대의 발견
(2) 구석기 시대의 생활모습

3. 죠몬(繩文)문화
(1) 죠몬(繩文)문화의 탄생
(2) 죠몬(繩文)문화의 도구
(3) 죠몬(繩文)인의 생활
(4) 죠몬(繩文)인의 원시신앙과 습속
(5) 죠몬(繩文)인과 한반도의 관계

4. 야요이(彌生)문화
(1) 야요이(彌生) 문화의 시작
(2) 죠몬(繩文)인과 야요이(彌生)인
(3) 도래인과 벼농사의 전래
(4) 야요이(彌生) 시대 유적
(5) 야요이(彌生) 문화의 발전

본문내용

후에 일본열도의 여러개의 소국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규슈, 긴키 지방에서 발전해가기 시작한 농경ㆍ철기문화는 동쪽으로 전달되어 야요이(彌生) 후기까지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 구석기, 죠몬, 야요이 문화의 차이점
시대
구분
구석기시대
죠몬문화
야요이문화
주업
수렵과 채집
수렵과 채집
수렵, 채집, 벼농사
도구
타제석기
마제석기, 죠몬토기
야요이토기,
석기, 청동기, 철기
주거
동굴, 절벽아래
수혈식주거
수혈식주거
사회
혈연에 의한 소집단
사냥감에 따라 이동
빈부격차 없음
몇 개의 집단 함께 거주
빈부격차 없음
큰 마을 형성
빈부격차발생
수장의 등장
풍습
자연경외(토우)
굴장, 발치, 연치
매장, 조상신숭배
유적
이와쥬쿠
산나이마루야마
요시노가리
※ 조사후 느낀 점
일본고대사에 대한 지식은 평소 거의 0%에 가까웠다고 하는 편이 맞을 거 같다. 일본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가 모두 사용하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라는 시대구분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명칭으로 부르는 모습에서 일본인들이 역사에 대해 얼마나 자긍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을 얼마나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이 짐작이 갔다. 그래서 더더욱 후지무라 신이치 사건과 같은 사건도 일어나게 된 것일지 모fms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가까우면서도 멀다는 말을 많이 한다. 늘 일본에게 늦쳐져 있고, 일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는 자괴감을 버리고, 일본을 잘 알고 배워야 우리가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발표에 나온 선사시대만 보더라도 우리는 일본에게 문화를 전파해주던 선진문화를 가진 민족이었다. 항상 자긍심을 갖고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했던 것처럼 더 나은 문화를 창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학기 ‘동아시아 중세사회의 구조’라는 수업을 통해 일본 고대사에 대해 학습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 아니었기에 여전히 생소한 부분이 많다. 더욱이 문자가 없는 시대라 그런지 이 시대에 대해서는 의문점도 많고 그 진실을 알아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다른 시대와 비교해서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일본의 고대에 대해서 상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고대의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섬이라는 지형적인 특성상 대륙과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일본은 청동기와 철기를 거의 동시에 받아들여 사용하게 되었으며 또한 대륙으로부터 벼농사가 전래되게 된다. 당시의 이러한 문명의 도입은 고대국가를 형성하는 밑거름이자 발판이 되어 야마타이국에 이르고 후에 야마토정권이 등장하게 된 게 아닌 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중 벼농사의 전래는 한반도를 거쳐 들어간 것으로도 추정이 되는데 이는 일본과 한반도의 교류의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한국과 일본은 관계를 맺어 왔으며 다시 한 번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고대와 같이 양국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원활한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갔으면 한다.
필자는 고고학 쪽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주제를 선택했지만 일본 원시시대를 조사하면서 알게 된 점이 많았다. 일본 고대 쪽은 신화 쪽이나 일본이 꾸며낸 임나일본부설 같은 안 좋은 이미지에만 국한 되었었는데, 이번에 조몬, 야요이 문화를 조사하고 알게 되면서 우리 나라의 원시시대와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았었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답사가 끼어있었고 해서 조사는 많이 못했다는 자격지심같은 생각이 든다.
또한 조사하면서 알게 된 필자의 의문이지만 죠몬 시대나 야요이 시대를 조사하면서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필자가 생각한 이유는 아마 조사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바로는 특히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 - 기원 후 3세기)는 일본 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역시 아무런 역사적 정보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그 시대에 대한 자료가 있었다면 좀 더 그 시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든다. (좀 과장이겠다만)자기 나라의 역사에 관한 치명타를 감추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점이 보이는 일본의 고고학도 아직 수준이 낮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일본사에 관심이 없었기에 조사하는 것도 힘이 들었고 시간이 촉박하여서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사하면서 살짝 흥미를 느꼈는데 그건 바로 그들만의 특유의 시대 구분법이였다. 세계적인 구분법과 다르게 그들은 죠몬, 야요이 문화라는 새로운 구분법을 사용하는 것이였다. 그만큼 세계적인 신석기 문화 청동기 문화 철기 문화등과 차이점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이나 자국의 역사에 대한 자존감이 큰거 같았다. 섬나라라는 한계를 벗어나기위해 역사를 조작하려는 사건도 있었기에 잘 느낄수 있었다. 게다가 사실 고고학에 흥미가 있었기에 이 부분을 맞게 되었는데, 후지무라 신이치 사건은 나에게 충격이였다. 고고학은 ‘인간이 남긴 유적 ·유물과 같은 물질 증거와 그 상관관계를 통해 과거의 문화와 역사 및 생활방법을 연구하는 학문’ 인데 그저 자신의 명예와 국가의 역사에대한 자부심을 키우기 위해 거짓된 발굴을 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발굴을 하는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면 이런일이 벌어질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일본사는 현재의 일본을 잘 이해할수 있는 방법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일본을 멀리하고 싶어해도 어쩔수 없이 부둥켜안고 가야할 나라가 일본이다. 그런 일본을 알아야 그들과 대등하게 나아갈수 있을것이다.
※참고문헌
1. 이영, 이재석 <일본고중세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9
2. 연민수 <일본역사>, 보고사, 1998
3. 요시노마코토 <동아시아속의 한일 2천년사>, 책과함께, 2005
4. 정혜선 <한국인의 일본사>, 현암사, 2008
5. 요시노가리 유적 역사공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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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5.08
  • 저작시기2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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