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차(茶)의 역사와 커피의 역사 - 차와 커피의 어원과 전래과정,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차문화, 우리나라 커피와 다방의 역사 등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한국문화사] 차(茶)의 역사와 커피의 역사 - 차와 커피의 어원과 전래과정,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차문화, 우리나라 커피와 다방의 역사 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차의 역사
 ① 차의 어원
 ② 차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
 ③ 고려시대의 차문화
 ④ 조선시대의 차문화 - 차문화가 쇠퇴한 까닭 네가지
      
2. 커피의 역사
 ① 커피의 어원
 ② 커피의 전래 과정
 ③ 우리나라 커피와 다방의 역사
   - 식민지 시대 커피 (이효석, 카페의 모습)
   - 1950년대 다방의 문화
   - 1970년대와 DJ 문화
   - 1980년대의 다방문화
 ④ 된장녀와 고추장남자의 논쟁
 ⑤ 스타벅스 커피 무엇이 문제인가?

본문내용

나자 정부는 국내 커피업체의 설립을 허가하였다. 이는 커피가 나라 안에 널리 퍼지게 되는 전기를 마련, 오히려 이전까지 즐겨 마시던 원두커피를 재치고 독주하기에 이른다. 인스턴트의 간편함과 인력 절감의 장점은 순식간에 커피 시장의 흐름을 뒤바꿔 놓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원두커피가 아예 모습을 감춘 것은 아니었다. 1950-60년대에 걸쳐 당시의 풍물을 반영한, 서양화가 김환기의 산문 [까페]와 [피카소와 돋보기]를 보면 배전두를 백화점에서 사다가 분쇄기에 갈고, 이것으로 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일부 계충에서는 원두커피가 여전히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1970년대와 DJ 문화
-1970년대 다방의 모습-
1970년대에는 음악다방이 등장했다. 차 한 잔 값이 100원 정도 하던 시절, 음악다방은 마땅히 갈 곳 없고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던 사회 초년생들이나 대학생, 젊은 직장인들에게 거의 유일하고 가장 인기 있는 휴식처 역할을 했다.
음악다방의 주인공은 단연 DJ였다. 유리창 너머 뮤직박스 속에서 신청곡을 받아 LP판 레코드를 찾아 전축에 얹어 음악을 들려주던 DJ들. 그들의 인기를 좌우하는 것은 음악을 들려주는 사이사이 집어넣는 코멘트와 사연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 경외스러웠던지, 그 시절 젊은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DJ를 꿈꾸기도 했다.
70년대의 대표적인 다방이라면 서울 동숭동의 '난다랑'을 들 수 있다. 난다랑이란 상호는 다방의 원해 이름 '다랑'에 '난'자를 붙인 것으로, 이곳은 원두커피를 판매하여 전문 커피숍의 바람을 일으켰던 곳이다. 지금은 커피전문점이라는 말이 그다지 낯설게 들리지 않을 만큼 대중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난다랑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테이블마다 커피 설명서를 붙여 놓고 손님들에게 원두커피에 대한 지식을 알렸던 점과, 고객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판다는 경영방침에 따라 군고구마까지 구비해 놓은 점이 크게 어필했던 것이다. 지금도 '난다랑'이라고 하면 통유리로 밝고 확 트인 객장에 소품 하나까지 고급을 지향했던 업소로 고객들은 기억하고 있다. 한편 지나친 고가정책이 대중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 1980년대의 다방문화
1980년대에는 커피 자동판매기가 봇물처럼 늘어났고(1985년도 15만대) 88올림픽 이후 더 늘어나 모든 자판기의 70%가 커피 자판기였을 정도였다. 이에 발끈한 다방주인들은 자판기 때문에 생긴 손해 배상을 청구 해달라며 소송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더 죽어나는 건 변두리 다방이었다. 변두리 다방은 마지막 카드를이었다. 카드의 내용은 다방안에 칸막이가 있는 특실을 설치해 손님과 여자 종업원 간의 음란한 행위를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 또 일부 다방에서는 근무 중에도 손님과의 외출을 허용하는 티켓제를 실시했다.
※티켓 다방
티켓 다방이 확산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1997년 11월 21일 우리나라는(김영삼 정부)는 IMF시대를 맞게 된다. IMF사태로 커피 시장은 크게 위축됐으며 커피 전문점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티켓다방이 크게 확산된 것은 IMF의 여파가 크다 도심지의 다방은 농촌으로 파고들어 티켓다방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티켓다방은 큰 매출을 올렸으며 매출액 상당부분은 커피값이 아닌 이른바 불법영업인 티켓비가 차지하였다. 티켓다방의 주 활동은 여종업원들이 차를 배달하며 시간제로 출장윤락을 하는 일반적인 사례였으며 반대로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을 종업원(오봉돌이)으로 고용하여 가정주부 등 여성 고객들을 상대로 술시중이나 윤락을 하게 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의 티켓다방은 확산도 부족해 번성을 누리게 된다. 보통 20~30대의 여성 종업원들이 종사 했으며 이른바 티켓비를 받고 업무 외적인 용무로 여성 종업원을 출장 보내는 일종의 변태 영업이었다. 이런 티켓다방 문화는 사회의 큰 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악덕 다방주인들의 미성년자(여성)를 고용해 매매춘을 일삼고 각 종 유흥업소에 팔려 다니면서 여러사람들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난무 했다.
⑤ 2005년 된장녀와 고추장남자의 논쟁
된장男女, 고추장男女,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된장녀는 최근 생겨난 인터넷 비속어다. 외모와 학벌 등을 무기로 남자에게 의존해 명품 선물을 받고 고급 레스토랑과 커피 전문점이나 들락거린다는 일부 몰지각한 여성을 ‘X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하한 신조어이다.
인터넷에선 이 ‘된장녀’란 말이 여성비하라 하여 남녀차별 논쟁이 일더니 급기야 ‘고추장남’이라는 궁상떠는 남성을 비하하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각각의 상대어로 ‘된장남’과 ‘고추장녀’도 생겨나면서 바야흐로 인구에 회자되는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인터넷에서 ‘된-장-녀’를 검색해보면 한마디로 ‘비호감’ 절정에 달하는 요소를 고루 갖춘 여성형이다.
-중략-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는 경기불황 속에서 아버지 세대와 자신의 세대가 동시에 처한 노령화, 청장년실업 등 삼중고 속에서도 양극화된 사회에 길들여진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허영과 사치에 들떠 자신들 대부분이 속해 있을지도 모르는, 아니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없는 고추장남과 고추장녀를 궁상떠는 족속으로 묘사하고, 격에 맞지 않는 된장녀, 된장남을 속으로는 선호하면서도 비아냥거리는 무기력한 시대정신을 탓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된장녀’, ‘된장남’, 심지어 ‘고추장녀’, ‘고추장남’의 모습은 현재의 한국사회의 평범한 일상을 반영한 삶의 방식들인지도 모른다.
⑥ 스타벅스 커피 무엇이 문제인가?
한 잔의 커피에 담긴 부조리
원두 시세 하락에도 스타벅스의 커피값은 왜 그대로일까…
“케냐산이 바라보이는 무랑아 지역에서 소규모로 커피농사를 짓는 친구의 아버지는 그 흔한 네스카페도 사서 마실 형편이 되지 못하여 커피원두 찌꺼기를 우려낸 물을 마신다는 것이다. 그는 커피원두의 판매단가가 생산비용에도 미치지 못하여 많은 커피재배 농가들이 목축업으로 전업을 모색하거나 점점 더 궁핍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출저 한겨례21 기사中-
  • 가격2,3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4.05.20
  • 저작시기2014.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1824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