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과제] 조선 궁궐의 이해 - 경복궁 (景福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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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과제] 조선 궁궐의 이해 - 경복궁 (景福宮)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조선 궁궐의 이해
- 경복궁 -



1. 들어가며

2. 경복궁의 역사

3. 경복궁을 돌아보며
 1) 근정전
 2) 사정전
 3) 경회루
 4) 강녕전
 5) 건청궁

3. 마치며

본문내용

왕비가 거처하면서 궁 안 생활을 총지휘하던 곳이다. 1918년에 강녕전과 교태전을 뜯어 창덕궁으로 옮겨 사라진 것을 1995년 복원하였다. 교태전 뒤편에 계단식 화단을 쌓아 아미산을 조성하고, 4기의 장식적인 굴뚝과 관상용 수석들을 배열해 정원을 만들었다.
아미산 정원은 뒷산인 북악의 정기를 침전까지 이어 주며, 왕비의 후원답게 은밀하면서도 기품 있게 꾸며졌다. 특히 강녕전은 다른 전각과는 다르게 용마루가 없었고, 가운데에는 월대가 있는데 월대는 좀 더 높은 곳에서 달을 보기 위한 곳이라고 한다.
5) 건청궁
고종이 경복궁 중건을 마무리 하면서 내탕금을 들여 지은 곳이다. 특히 이곳은 고종이 친정을 선언할 때 독립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여지기도 한다. 또한, 을미사변때 명성황후가 시해된 곳이기도 하다. 그 앞에는 향원정이 있는데 향원지라는 네모난 연못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종 10년에 건청궁을 지을 때 함께 세워졌다. 지금의 민속박물관 남쪽 연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건청궁 안쪽에 못을 파고 그 안에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정인 '향원정'을 짓고 나무로 구름다리를 걸어 '취향교'라 하였다.
지금은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가게 되어있지만, 옛날에는 이 다리를 북쪽에 놓아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게 되어 있었으며, 지금도 섬의 북쪽에는 에는 옛 다리의 흔적이 남아있다. 향원정은 연못을 파고 그 안에 섬을 만들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6) 광화문
태조때 창건되어 정도전에 의해 사정문으로 명명되었으나, 세종7년에 집현전 학사들에 의해 광화문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운이 좋게 수문장 교대식과 시간이 맞아 수문장 교대식을 관람 할 수 있었다. 광화문 앞에 육조의 관아들이 늘어서 있어 이를 육조거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뒤에 보이는 북악산과 어우러져 상당히 아름답다.
3. 마치며
경복궁 관람은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예전에 다른 궁이나 유적지에 갈 때에는 아무 의미도 모르고 갔다가 사진만 찍고 돌아왔는데, 이번 경복궁 관람은 하나하나 역사적 의미를 곱씹으며, 설명을 들으며 관람 할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경복궁의 약 25% 정도만이 원래의 모습이고 나머지는 복원하거나 재건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모습 그대로 재건했다고는 하나, 그것이 원래의 의미를 갖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한 듯 했다. 하지만 직접 걷고 눈으로 감상하며 경치와 함께 감상한 경복궁은 상당한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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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6.04
  • 저작시기2014.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2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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