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한국 교회의 토착화(민중신학의 등장) - 선교의 역사와 민중신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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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교회사]한국 교회의 토착화(민중신학의 등장) - 선교의 역사와 민중신학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선교의 역사
(1) 선교의 정의
(2) 전통적인 선교 개념
(3) WCC의 도전
(4) 국내 기독교의 성장
2) 민중신학에 대하여
(1) 민중신학의 기원
(2) 민중신학의 내용
ㄱ. 신학의 주제로서의 ‘민중’
ㄴ. 반신학(反神學)으로서의 민중신학
ㄷ. 민중적 예수 이해
ㄹ. 새 공동체로서의 민중 교회론
(3) 민중신학에 대한 평가 및 비판

3.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부분을 지적하고 고치려한 부분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그것 또한 왜곡된 해석임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분은 모든 사람에 대하여 차별이 없는,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중심에서 돌보시고 이끄시며 구원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전통신학이 그러한 민중에 대하여 놓친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위로부터의 성경적 내용들마저 잘못된 것은 아니다.모든 신학함의 중심은 하나님이며 그것은 위로부터 시작되는 신학을 말한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다. 예수님께서는 민중의 편에서 가르치고 생활했으나 반드시 민중과 함께 하지 아니 하였으며 민중을 신뢰하지도 아니 하였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요6:51)으로 자신을 말할 때 민중들은 예수의 설교가 어렵다고 다 떠났으며 마지막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것도 실은 민중이었다. 따라서 민중도 개인일 때는 양과 같이 순할 수 있으나 다수가 모여 민중화 될 때에는 짐승같이 사나울 수도 있다. 결국 민중신학에서는 역사적인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민중을 위해 처형 당한 예수의 사건에만 집중함으로 초월적이며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전호진, 『교회와 이데올로기』, 성광문화사, pp23-24.
다섯째, 그릇된 성경해석의 문제이다. 민중신학은 성경의 모든 내용을 정치차원으로 끌어 내려 예수를 사회운동가로, 기독교도 가난한 대중들의 사회운동으로 간주한다. 또한 그들은 구원을 정치 경제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성경의 사용도 출애굽기 등 몇 몇 본문에만 편중하여 전체적인 복음이 되는데 실패한다. 또한 성경의 해방적 사건을 우리 역사의 사건들과 동일범주의 사건으로 취급함으로 결국 기독교가 포교 되기 이전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하여도 성경의 계시 사건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나아가 그들은 성경을 다른 역사적, 사회학적 서적들과 같은 자료로 취급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성경을 구속사적 배경에서 하나님의 계시로 취급하지 않고 ‘민중신학은 하나의 파라다임적 전거’로 받아져서 교회사와 한국 민중사와 함께 하나의 민중 신학의 참고서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김의환, 『현대신학개설』, 개혁주의신행협회, p277.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 복음주의적, 개혁주의적 신학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해석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 절대불변의 무오한 신적 권위의 말씀임을 고백한다.
여섯째, 교회론에 대하여 잘못 해석하고 있다. 민중신학이 주장하는 삶의 현장에서 찾아지는 교회는 가견적 교회도 필요 없고 성직자도 필요 없다. 단지 민중의 권익을 위한 현장으로서의 교회만 존재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회는 그런 교회가 아니다. 기독교의 교회는 “성도들의 회중,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아지고, 보전되며, 통치될 뿐만이 아니라 성례와 하나님의 말씀을 방편으로 하여 매일 그 수가 증가되는 바 지상의 믿는 경건한 사람들로 정의 될 수가 있다. 교회는 성자 하나님이 자기의 피로써 산 존재이다(행20:28).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들이 교회가 되게 하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도록 하나님이 정하셨다(엡1:4). 복음을 믿음으로 해서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과 영원한 축복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견적 교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교회는 민중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용화, 『민중신학평가』, 기독교문서선교회, p172.
3. 결론
10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선교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 우리 한국 기독교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놀라운 것이었다. 2천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포교가 이루어지고 사회를 변화시키며 토착화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암울했고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가 그 중심에서 더 확고한 역할을 해 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를 못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등장한 것이 민중신학이라 생각을 한다. 그들은 기존 기독교가 다 채우지 못하던 항아리의 한 구석을 채우려고 노력하였으나 너무 급진적이었고 나머지 채워진 부분에 대하여 인정을 하지 않으려 하였기에 항아리는 불편한 동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그 양자의 모습은 확연히 변화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8,90년대에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실천하는 신앙을 위하여 지식에 목말라 했던 그들의 욕구를 채우고자 노력했던 민중신학은 지금에 와서 쇠퇴의 길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삶의 현장에 뿌리내리고 교회라 부르기를 원했던 민중신학은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자유주의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구원을 찾을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도 그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근본인 복음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한다. 복음의 진리는 영원히 불변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토착화가 잘 이루어진다면 분명 교회는 더욱 부흥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교회는 굳게 복음을 지키며 모든 택함 받은 믿는 무리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줄 것이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자질이 부족한 목회자들과 반기독교 세력들에 의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듯이 보이나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잡고 있는 이상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부흥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리라 확신한다. 교회는 바로 설 것이며, 이단 사설들은 잦아들 것이고 구원의 기쁨에 찬양하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김성태, 『현대 선교학 총론』, 이레서원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Ⅱ』, 생명의말씀사
나용화, 『민중신학평가』, 기독교문서선교회
전호진, 『교회와 이데올로기』, 성광문화사
김의환, 『현대신학개설』, 개혁주의신행협회
서창원, 『민중과 그리스도교 신앙』, 개혁주의 신행협회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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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6.21
  • 저작시기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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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2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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