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한문학에 나타난 작가의 현실인식 『금오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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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시습 한문학에 나타난 작가의 현실인식 『금오신화』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1

Ⅱ. 본론…………………………………………………………………………1

 1.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생애……………………………………………1
  1) 시대적 배경……………………………………………………………1
  2) 작가의 생애……………………………………………………………2

 2. 『금오신화』에 투영된 현실의식……………………………………3
  1) 여성인물에 투영된 절의(節義)정신…………………………………3
  2) 주체적인 역사의식……………………………………………………4
  3) 지도자로서의 애민(愛民)의식………………………………………5

 3. 김시습의 찬(贊)과 전(傳)과 감계론적 역사인식……………………5
  1) 김시습의 찬(贊)………………………………………………………5
  2) 김시습의 전(傳)………………………………………………………7

 4. 김시습의 한시(漢詩)와 현실피판 의식………………………………8
  1) 유교의 인의(仁義)사상………………………………………………8
  2) 영사시와‘차조고금(借古照今)………………………………………9

Ⅲ. 결론…………………………………………………………………………11

<참고문헌>…………………………………………………………………………11

본문내용

條一短蓑 (생계소조일단사) 생계는 쓸쓸하여 짧은 도롱이 하나 뿐.
漢家若無星象動 (한가약무성상동) 한나라 별 동함이 없었다면
千秋定不累完名 (천추정불누완명) 천추에 확실히 이름 더럽히지 않았으리. 『매월당집』 권2, 영사조 「조이조수」.
이 시는 신숙주가 강태공, 엄자릉 엄광. 후한의 광무제가 왕이 아니었을 때 막역한 사이로 광무제가 역적을 죽이고 백성을 구하려 하였지만, 엄광은 은거를 고집할 뿐 한의 중흥에는 무관심하였다.
두 노인을 소재로 한 「조어도(釣魚圖)」를 선보였을 때, 이를 비판하고자 지은 시이다. 이 시에서는 강태공이 무왕을 도운 , 엄자릉이 광무제의 협력을 거절한 일을 얘기하며, 그들을 고기와 새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말하였다. 강태공은 상(은)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려 명리를 추구했고, 엄광은 지나치게 명리를 멀리하여 광무제의 협력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김시습의 비판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김시습은 이 시를 통해 또한 신숙주의 변절을 풍자하기 위해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假惜漢家多小輔 (가석한가다소보) 애석하다 한 나라의 많은 재상들
醇於莽不知 (순료어망부지훈) 왕망에게 취하고도 취한 줄을 알지 못 하네.
龍何遊浪瑞何皇 (용하유랑서하황) 물에 용이 어떻게 놀아 상서는 어떻게 나타냈다
盡妖坑卒莫明 (진타요갱졸막명) 모두 요망한 구덩이에 떨어져 끝내 밝히지 못 했네.
井丹書迷國脈 (정단서미국맥) 깊은 우물의 단서는 나라의 맥을 흐리게 하고 蠻天白雉眩情 (만천백치현여정) 오랑태의 흰 꿩은 여론을 현혹했네. 『매월당집』 권2, 영사조, 「왕망」일부.
왕망은 전한(前漢) 말 동평릉 사람으로 이원왕후의 조카였다. 평제가 즉위하고 원후가 정치를 왕망에게 위임하여 그의 섭정이 이루어졌다. 왕망은 매년 개혁을 단행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왕보다 큰 힘을 키우다가 결국 평제를 시해하고 왕위에 올라 국호를 신(新)으로 하였다. 위의 구절들은 이 시의 일부로, 여기에서 김시습은 왕망을 추종하는 세력의 분별력 없음에 개탄하였다. 그리고 전한 말에 유포된 유언비어로 흐려진 여론에 대하여 거론하였다. 이는 부당한 정권탈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용도였기에 이를 들춰내어 현재 정권―즉, 세조 정권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시습의 한시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의 당대에 수많은 정치적 변동이 있었고 이로 인해 김시습의 방외 문학적 시세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세조의 왕위찬탈이라는 사건은 김시습이 더욱 더 다양한 방향으로 사상을 전개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배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시습의 인의사상을 바탕으로 한 시는 주로 현실에 대한 비판, 특히 국가의 부정부패와 무능력함과 더불어 이로 인한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비판함으로써 진정한 儒者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진정한 유가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백성을 위한 태도를 지녀야한다는 것이다.
영사시는 고전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비판하는 ‘차조고금’의 전통이 잘 드러나 있는 장르이다. 김시습의 詠史詩를 보면 그가 역성혁명에 대해 갖고 있는 역사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를 다시 이으려는 광무제를 돕지 않았던 엄자릉을 조롱하여 왕권지속 우선의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후세 성왕으로 존숭되는 주 무왕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신하로서 임금을 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그의 확고한 역사인식을 잘 보여주며, 이는 다시 한 번 세조의 찬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통해 투영된 작가의 절의정신과 민족 주체적 역사인식, 애민의식을 살펴보았고, 다수의 찬(贊)과 전(傳)을 통해 충신을 숭상하고 간신을 비판하여 거울삼으려는 감계론적 역사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시습의 한시 작품들을 통해 ‘인의사상’의 강조와 ‘차조고금’의 방식을 통한 현실비판의식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김시습을 정리해 보면, 결국 폐도(廢道)가 횡행했던 세조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절의(節義), 인정(仁政), 애민(愛民) 사상들이 충만한 인의(仁義)가 실현된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시습이 유교가 최고의 도(道)로 숭상받던 조선시대에서 평생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유·불·도를 넘나들어 자칫 사문난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괴이한 행적에도 불구하고, 매월당 사후에 국가에서 문집을 편찬하고, 그의 문학과 정신이 세간에 끊임없이 회자되었던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물론 김시습의 카멜레온 같이 변화무쌍했던 삶과 문학을 ‘인의(仁義)’라는 이름 하나로 모두 묶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고 시대와 끊임없이 불화했던 매월당의 방외인적 면모를 살펴봄으로써 되풀이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주요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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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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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 「雪岺 金時習 佛敎時에 대한 一考察-無生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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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환, 「금오신화의 인물형상과 작가의식」,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6.
이혜순, 「금오신화」, 『완암 김진세선생 회갑기념논문집』, 집문당, 1990.
최일범,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와 철학사상」, 『사상』30호, 사회과학원, 19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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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7.11
  • 저작시기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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