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스토리 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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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재 스토리 텔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문화재에 담긴 우리나라 역사
(1) 석가탑

(2) 성덕대왕신종

(3) 서출지

(4) 제비원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산동에 있는 신라 때의 못인 서출지이다. 1964년 7월 11일에 사적 제138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이 7,000제곱미터, 못 둘레가 약 200m임을 외국인에게 말해준다. 서출지를 선택한 이유는 연못 위의 연꽃이 수려하며 주변의 자연경관이 뛰어나기 때문임을 알려준다.
< 서출지 >
연꽃이 수려한 서출지를 바라보며, 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라 소지왕이 488년 남산기슭에 있었던 천천정으로 거동하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그 중 쥐가 사람의 말로써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라고 하므로 이상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가 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가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고 있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주므로 왕에게 그 봉투를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거문고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분향하는 중이 궁주와 서로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궁중의 간계를 막았다는 뜻에서 못 이름을 서출지라 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음력 1월 15일에 까마귀에 제삿밥을 주는 오기일의 풍속이 생겼다.
이야기가 끝난 뒤, 서출지 주변의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산책하는 시간을 갖는다. 산책을 하며, 자연을 만끽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깨달음이 있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보람찬 여행이며, 깨달음을 준 장소는 평생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4) 제비원
다음으로 찾아볼 곳은, 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에 위치한 제비원이다. 먼저, 이천동 석불상을 관람한다. 이는 고려시대의 석불로 자연 암석에 조각하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얹은 마애불임을 설명한다. 인자하게 뻗은 긴 눈과 두터운 입술, 그리고 잔잔한 미소가 어려 있는 표정으로 토속적인 느낌이 강한 고려시대 불상 양식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음을 알려준다. 예로부터 안동 지방에서는 ‘제비원 미륵’으로 불리어졌으며, 보물 제 115호로 지정되었음을 말해준다. 높이 9.95m, 너비 7.2m의 암벽을 동체로 하고 그 위에 2.43m 높이의 머리 부분을 조각하여 올려놓았음을 설명한다. 전체 높이는 12.38m임을 알려준다.
<이천동 석불상>
다음으로, 사찰인 연미사를 찾아간다. 불상 뒤편에 있는 조그만 절이다. 절에서 불교의식을 배워보는 뜻 깊은 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과 우주, 종교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불교의식을 배워보는 시간이 끝난 뒤, 연미사에서 제비원에 얽힌 전설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신라시대, ‘고창’이라고 불린 이곳에는 여관(당시에는 원이라고 했다)이 하나 있었다. 이 여관에 여덟 살 때 부모를 여의고 심부름을 하는 ‘연’이라는 예쁜 처녀가 있었다. 연이는 인물이 예쁠 뿐 아니라, 마음이 고와서 항상 지나는 길손들에게 후대와 적선을 다했다. 방에 불도 따뜻하게 지펴주고, 밥도 후히 담아 주었으며, 빨래까지 빨아주는 연이는 밤늦게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곧바로 자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글을 익히고, 내일은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보다 친절하게 도와줄까 하는 궁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불심도 대단하여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마치고 염불을 해서 지나가는 과객들로 하여금 그 알뜰한 정성과 고운 마음씨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웃 마을 총각들도 모두 남모르게 연이를 사모하는 것이었다.
이 원의 이웃 마을에 김씨 성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남을 동정할 줄 모르는 성미여서 거지를 보는 대로 내쫓는 고약한 인간이었다. 이렇게 인심 고약한 김씨 집의 총각도 연이에게 장가가고 싶은 마음이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런 부잣집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총각도 이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연이 처녀만은 감히 호락호락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이 총각이 비명에 죽어 저승에 가게 되었다. 염라대왕이 인사를 받고 한참을 기웃거리며 명부를 뒤적이다가 겨우 이름을 찾아서는 능글맞게 이르는 말이, “아니, 자네는 아직 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이왕 왔으니 인정이나 좀 쓰고 갈 마음이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에 총각이 대답하기를, “지금 전 가진 것이 없는 걸요.”하는 것이었다. 대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을 생각하더니, 웃으며 총각을 다시 불렀다. “이봐, 총각! 자네는 세상에 적악한 사람이라 다음에는 소로 환생할 것이다. 자네의 창고는 텅 비어 있지만 자네가 사는 건넛마을의 원에 살고 있는 연이는 착한 일을 하여 창고에 많은 재물이 쌓여 있은 즉, 그걸 좀 꾸어 인정을 쓰고 가렸다. 이 말에 그 총각은 많이 놀랐지만, 다시 살아서 돌아간다는 기쁨에 연이의 재물을 꾸어 쓰고는 다시 세상에 돌아왔다. 돌아온 즉시 총각은 연이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자기의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 이에 연이는 그 재물을 모두 부처님을 위해 쓰리라 마음먹었는데, 마침 석불이 비바람에 시달리고 있어 도선국사로 하여금 석불을 중심으로 하여 큰 법당을 짓도록 하였으며, 이 공사가 막대한 것이어서 5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법당을 짓던 마지막 날, 기와를 덮던 와공이 그만 잘못하여 높다란 지붕으로부터 떨어지니 온 몸뚱이가 마치 기왓장이 깨진 것처럼 산산조각이 되었고, 혼은 제비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에 이 절을 ‘제비사’ 또는 ‘연미사’라 부르고, 이곳을 제비원 또는 연비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연이는 그 나이 서른여덟이 되던 해 동짓달 스무 사흗날에 처녀의 몸으로 죽게 되었다. 그 날 저녁에는 온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지금의 돌부처가 생겼다고 한다. 돌부처는 연이의 죽은 혼이 변하여 생긴 것이다.
< 연미사 >
3. 참고 문헌
-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지식백과).
- 문화재청 사이트(www.cha.go.kr).
- 처용이 있는 풍경(삼국유사 사진기행), 김대식 저 |대원사|2002.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세트, 유홍준(교수) 저 |창비(창작과비평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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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7.14
  • 저작시기2014.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29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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