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의 원인, 경과 그리고 현재까지의 영향력 [1차 대전 이후 전쟁의 양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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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차 대전의 원인, 경과 그리고 현재까지의 영향력 [1차 대전 이후 전쟁의 양상 변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문
Ⅱ. 1차 대전 이후 전쟁의 양상 변화
Ⅲ. 2차 대전의 발발 원인
Ⅳ. 주요국의 대응
Ⅴ. 전쟁 경과 (유럽편)
Ⅵ. 전쟁경과 (태평양 전선)
Ⅶ. 전쟁결과
 ① 냉전체제 성립
 ② 전쟁의 양상변화
 ③ 전쟁 하에서 과학 변화의 요인
 ④ 과학 발전의 이면
 ⑤ 국제연합의 탄생
 ⑥ 중동 분쟁
 ⑦ 인간사, 정신사에 미친 영향

본문내용

준다. 그는 당시의 정신사적 연구와 지성주의, 물질주의, 합리주의를 모두 비판하였고 자연과학적, 인과적 사고도 거부했다. 그는 역사를 인과성 대신 ‘숙명’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했고 미래는 과거와 현재에서 인식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인류의 각 문화는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등 인간의 연령기와 같은 생물학적 발전과정을 거쳐서 숙명적으로 몰락한다고 파악하였다. 그는 역사에서 진보를 부인하고 상대적 가치만을 인정했다.
20세기의 저명한 고대 사학자인 영국의 아놀드 토인비는 20년간에 걸쳐 동양과 서양의 문명발달사를 비교 연구하여 유명한 「역사연구」10권을 완성하여 사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토인비는 마이네케와 슈펭글러의 문화형태학 방법을 도입하여 이를 독창적으로 재구성하여 인류의 문명을 도전과 응전이라는 시각에서 연구, 분석하였다. 토인비는 인류의 문명은 부단한 도전과 응전에 의해 성쇠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여러 사회의 주기적 흥륭과 쇠망관계에서 판단할 때 서구는 현재 역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고 서구문명은 현재 역사적 몰락의 벼랑에 서 있다고 주장하였다. 토인비는 비록 슈펭글러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생물학적 역사파악이나 문명들 상호간의 관계를 부인하는 태도를 거부했다. 그는 역사발전에 있어서의 인간정신의 역할과 책임성을 강조했고 문명의 계승과 재생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는 문명론을 대표할 수 있는 ‘도전과 응전’ 이론을 내세워 비관주의적 종말론적 사상을 극복하였다. 그러나 그는 문명을 단위로 하여 역사에 접근했고 문명들의 비교분석을 통해 도식적으로 설명하여 했으며 사료비판에도 소홀했고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도 적지 않은 착오를 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카뮈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인간경험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실존주의자들은 역사를 완전히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으며 역사학에 있어서 그동안 주도적이었던 정치사의 우월성을 부정하고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의 미시사가 중시되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2차 세계대전이 재편한 것은 인간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관념만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은 그때까지 유지되던 세계의 세력판도를 뒤집어놓았고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대부분을 결정지었다.
1. 경제
총력전은 명백히 기술을 진보시켰다. 하지만 현대의 산업경제는 끊임없는 기술혁신 위에 세워진 것이고 그러한 기술혁신은 확실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아마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전쟁들 - 특히 2차 세계대전 - 은 전문적 기술지식을 보급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고 확실히 산업조직과 대량생산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전쟁들이 성취한 것은 전반적으로 하나의 변혁이라기보다는 변화의 가속화였다.
전쟁은 경제성장을 촉진했는 가? 한 가지 점에서는 명백히 그렇지 않았다. 생산적 자원의 손실은 노동인구의 감소 말고도 상당했다. 가장 피해가 컸던 소련의 경우, 전쟁의 순경제적 영향은 전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거대하고 적응력이 전혀 없는 군수산업과 굶주리고 격감한 국민과 대규모의 물질적 파괴뿐이었다.
다른 한편, 미국 경제에게는 전쟁들이 명백히 유익했다. 양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의 성장률은 엄청나게 높았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1년에 약 10퍼센트의 비율로 성장 했는데, 이는 전무후무하게 빠른 속도였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싸움터로부터 거리가 먼 동시에 동맹국들의 주된 군수공장이라는 사실로 득을 보았고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생산을 조직적으로 확대해가는 경제역량으로도 득을 보았다. 아마도 양차 세계대전의 가장 지속적인 경제적 영향은 단기 20세기 동안 미국 경제로 하여금 전 세계적인 우위를 누리게 한 데에 있을 것이다.
2. 냉전체제
세계경제와 세계정치의 불확실성보다 훨씬 더 명백한 것은 1950년 이후의 인간생활의 격변을 반영하는 사회적, 정신적 위기였다. 그 위기는 18세기 초에 근대인들이 고대인들과 유명한 싸움에서 이긴 이래 근대사회가 입각해온 신념과 가정(假定)의 위기였다. 그 가정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공유했던 합리주의적, 휴머니즘적 가정으로서, 그것을 거부한 파시즘에 맞선 양자의 짧으나마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동맹을 가능케 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이 단명이 예견되었던 동맹은 파기되고 인류는 매우 독특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상태로 돌진했다. 전 세대가 전지국적인 핵전쟁의 그늘 밑에서 자랐다. 실제로 어느 쪽도 상대방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믿은 사람들조차 비관주의적이 되지 않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상호확실파괴’에 대한 공포만이 계획된 문명자멸을 행하라고 언제라도 내릴 수 있는 신호를 어느 쪽도 내리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대어 진행되는 영구적 핵대결 속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치적으로나 과학기술적으로나 잘못될 수 있는 일이 갈수록 많아졌다. 그러한 신호를 내리는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지만 약 40년 동안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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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눈으로 본 제 2차 세계대전, 김진영, 가람기획,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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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론(Vom Kriege), 칼 폰 클라우제비츠, 갈무리, 2006
전쟁의 역사, 버나드 몽고메리.
20세기 지구촌전쟁, 김신복 외 2인 공저, 병학사, 1996
세계의 분쟁 바로보기, 오츠카 가즈오 외, 다시, 2003
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전쟁사, 법률시대.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어니스크 볼크먼, 이마고출판사
2차 세계대전사, 존 키건 지음, 청어람미디어 출판
새벽에서 황혼까지:서양 문화사 500년 2권, 자크 바전 지음, 민음사 출판
극단의 시대:20세기 역사 上, 에릭 홉스봄 지음, 까치 출판
한국인의 눈으로 본 제 2차 세계대전 : 유럽전쟁, 김진영
위키디피아
연표는 밀리터리 관련사이트에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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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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