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가재미』의 시세계 분석 - 번져라 번져라 서정(抒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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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태준『가재미』의 시세계 분석 - 번져라 번져라 서정(抒情)이여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序論
 - 시인 문태준과 『가재미』

本論. 작품을 통한 분석 및 비평
 1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2 자아와 세계의 일치(동일화)
 3 물과 수평의 상징성.

結論 : 의의 및 평가

본문내용

한 울림을 주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문태준 시들은 독자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텍스트로 존재하면서도 마치 핏줄을 나눈 형제처럼 동일한 속성을 띤다. 본 고는 앞서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의 시들을 바탕으로 그들이 공유하는 핏줄의 정체를 더듬어보았다.
시집의 표제시인「가재미」는 암으로 죽어가는 여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탁월한 이미지의 비유로 형상화하였다.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다른 시에서도 ‘슬픈 그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의인화된 대상에 투영되기도 하며, 어머니와 함께한 옛 추억을 향수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머니는 시인의 육체적, 정신적인 고향이다.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을 겪고 태어난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가지는 그리움이다. 이러한 그리움의 이미지, 죽음의 체험은 그의 시의 일부분을 형성하였다.
생명을 부여받은 생명체는 젖을 뗀 후 홀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존재의 ‘고향’을 잃은 근원적 슬픔은 이러한 세계 속에서의 소외로 심화된다. 이는 그의 시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울음’과 ‘독방’ 등의 슬픔, 고독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그는 이러한 ‘슬픔’과 ‘고독’을 작고 지나치기 쉬운 대상들에게 전이시킨다. 이러한 대상과 자아의 동일화는 기존 서정시의 주된 원리이며 근대적 세계관에 대한 저항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과 세계의 분리적 사고가 만들어낸 근대의 산물인 과학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는 인간을 더욱 고립시켰다. 속도의 강요과 경쟁 속에 개성은 상실되고 너와 나의 관계 속에 ‘수직’의 선을 그었다.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지배하려 노력하는 세상에서 ‘울음’을 보이는 행위는 금기시된다. 남에게 약해보이는 순간 나는 타인의 지배하에 속하는 패배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태준의 시세계는 이러한 근대적 사고를 거부한다. 그는 끊임없이 ‘울고’, ‘슬퍼하고’, 더 나아가 그 슬픔을 대상에게 이입시켜 대상과 동화된다. 그의 시에서 동일화되는 대상인 ‘새, 물고기, 벌레, 나무’ 등은 작고 하찮게 여겨지는 미물이다. 신이 부여한 세계의 지배권을 가진 인간이 마땅히 ‘다스리고 지배되어지는 것’들이다. 문태준의 시의 미학은 이들을 단지 대상을 재현하는 수단으로서 시에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 자아의 분신으로, 독자적인 존재로 ‘나’와 수평의 위치에 두는 겸손의 미덕에 있다. 우주의 광활함과 끝없이 펼쳐지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존재 역시도 ‘벌레’처럼 작고 하찮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고 하찮것에도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의미를 새로 부여한다.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동일화’의 대상으로, ‘크고 절대적인’ 것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근대적 사고를 거부한다. 이러한 자아의 수평적 시선은 ‘물’과 ‘수평’의 이미지의 동경으로 이어진다. ‘물’은 형체가 없으면서도 움직임이 있다. 대상은 물 속에서 자신의 형체를 잃고 물과 하나가 된다. 이는 ‘수평’ 역시 그러하다. ‘너’와 ‘나’의 관계가 지배가 아닌 수평의 관계가 놓이면서 비로서 이해와 소통의 가능성이 열린다. ‘나’가 ‘죽음 앞에 놓인 그녀’의 죽음을 대신하거나 함께할 수는 없지만 나란히 같이 옆에 눕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수평, 동일화의 태도로 존재의 슬픔과 고독을 극복하려한다.
이러한 문태준 시의 세계관이 서론에서 제기한 ‘무엇이 현대인으로 하여금 문태준 시에 매력을 느껴 열광하게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환적 가치의 실용성이 없다면 인간 존재의 가치를 상실해버리는 이 세상에서, 너무 빠른 것은 슬픔을 낳는다. 마음을 멀리 두고 빠르게 날아가는 ‘멧새’는 곧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주위를 둘러볼 겨를 조차 없는 우리들과 닮아있다. 이러한 마음의 슬픔과 불안, 소통을 잃은 외로움의 정서 속도에 지쳐 갈 곳마저 잊어버린 채 홀로 남겨진 비극을 맞지 않기 위해서 ‘근대의 정신’에 저항한다. 주위의 대상에서 실용성을 찾지 않고 마음을 찾는다. 문태준의 시를 찾는 이들은 그의 시 속에서 하찮은 미물에게도 ‘인간’의 감정이 있을 수 있음을, 그들과 인간 사이의 벽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물어 ‘슬픔’을 극복하는 가능성을 보지 않았나 싶다. 존재의 고독과 외로움이 극복할 수 없는 숙명적인 무엇이더라도, 다만 시를 잃는 순간만은 자신을 시적 자아와 동일시화하여 스스로를 위로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음이 메말라 가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물’을 적시어 주는 것, 그가 시에 감흥하는 이들이 지향하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감정’이 사치가 되는 세상에서 ‘서정시’에 열광하는 것은 그만큼 ‘감정’이 풍부했던, 너와 나의 소통을 갈구했던 그 어느 날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의 증거일 것이다. 21세기에 ‘서정’을 퍼트리는 일 자체가 문태준이 ‘종이를 갉아먹는’ 것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문태준 「가재미」시집의 시세계에서도 아쉬운 점을 찾을 수는 있다. ‘감정’과 ‘소통’이 가지는 근원적인 한계의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시에 드러난 세계관의 인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시에서 ‘우는’ 대상은 적극적으로 ‘울음’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아에게 대상에게 슬픔과 고독은 존재의 필연적인 숙명과도 같은 것으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재미’의 시가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이해의 한계 앞에서도 적극적으로 같이 ‘가재미’가 되어 눕는 ‘소통’을 시도한 점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부재하는 세상에서 그의 감정의 소통물은 자연물에 한정되어있다. 이는 자아의 감정이나 의식을 대상과 소통하는 소극적인 방법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현실 세계의 복잡함과 소통 단절의 상황에서 잠시 눈을 감고 고통을 잊을 수는 있으나, 근원적으로 그 슬픔을 없앨 수는 없음을 안다. 분명 세상은 한 개인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문태준의 시에서 새들은, 물고기는, 나무는 끝없이 울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울음 속에서 경계가 없는 고요의 세계 ‘물’과 ‘수평’을 지향한다는 것에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해본다. 끝.
<참고문헌>
문태준.《가재미》. 문학사상사. 2006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4.08.22
  • 저작시기2014.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3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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