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식민지 시대의 동학희곡
3. 해방이후의 동학희곡
4. 70년대의 동학희곡
5. 80년대의 동학희곡
6. 90년대의 동학희곡
7. 결론
2. 식민지 시대의 동학희곡
3. 해방이후의 동학희곡
4. 70년대의 동학희곡
5. 80년대의 동학희곡
6. 90년대의 동학희곡
7. 결론
본문내용
고 있는 대표적 민중의 전형이 곰배, 곱추, 버들이이다.
이들 인물 중 이 작품의 가장 구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표적 인물이 곰배다. 곰배는 동학농민군에 가담했던 광대 출신으로 자신의 딸 버들에게 광대들은 조선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는 사람이며, 북소리는 사람의 심장소리라고 가르쳐 주는 등 동학혁명 패배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광대라는 사실에 늘 자부심을 가지고 딸에게도 그 자부심을 전달해 주려는 인물이다. 곰배는 총과 죽창으로 싸움을 하는 것이라는 동학군 쫌팽이에게 싸움은 총이나 죽창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곰배라는 인물은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현상적 혁명의 선봉에 섰던 전봉준 같은 현상적 개벽론자들보다는 좀 더 온건한 최시형과 같은 정신 개벽론자들과 궤를 같이하는 인물이다. 그는 직접 총과 죽창을 들고 싸움을 하지는 않았지만 동학군 뒤에서 북을 치며 사기를 진작했으며 동학군이 패배했을 때는 모두가 두려워 거두기를 포기한 동학군의 시신을 수습하다 끝내는 관군에게 참형을 당하고 만다. <칼노래>의 작가가 곰배라는 인물을 통해 형상화 해내고자 했던 것은 사람 살리는 세상을 꿈꾸며 그 꿈을 위해 동학혁명의 뒤안길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민중들의 모습이다. 이 작품이 동학혁명을 적극적인 평가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여전히 이어나갈 정신혁명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바로 버들이로 비유되는 혁명을 이어갈 후손들이 과거에나 현재에나 여전히 이 땅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7. 결론
동학희곡은 시대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지면서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창작되고 공연되어 왔다. 우리 희곡사상 동학과 같이 한 가지 단일한 제재를 가지고 끊임없이 창작, 공연 되었던 희곡의 제재는 일찍이 없었다. 물론 문학창작에 있어 어느 시대 어느 작가에 있어서나 반복 모티브라는 것이 있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6.25, 4.19, 5.18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문학적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희곡문학계에서의 단일 역사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움직임은 아직껏 미미한 편이며 또한 반복 모티브들의 출현과 동학이라는 단일한 제재의 반복 출현은 분명 그 층위를 달리한다.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동학이라는 제재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학이라는 사상 자체가 담고 있는 인간중심주의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통용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사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식민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극심한 정치적 변동기를 겪어온 우리의 현대사는 민중 중심에서 벗어난 기득권자들의 역사였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극작가들은 동학이라는 역사적 제재를 가지고 가장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민중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역사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학희곡은 적극적 저항문학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역사극은 직접적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는 대신 과거를 이야기함으로써 현재를 말하며 현재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 저항문학이 지배세력의 탄압으로 그 지속이 쉽지 않았던 반면 역사극으로서의 동학희곡은 역사극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지배세력의 탄압으로 현실 도피적인 문학이 성행할 때조차도 당대 사회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80년대까지의 대다수의 동학희곡들은 동학 자체의 사상이나 종교적인 측면의 조명보다는 1894년에 있었던 농민전쟁으로 명명되기도 하는 동학혁명이라는 특정 시기의 역사적 사건만을 집중적으로 형상화시키며 사회의 모순에 항거하는 민중문학 내지 저항문학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이는 상연을 전제로 창작되는 희곡이라는 문학 장르의 특성상 동학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적인 측면의 형상화보다는 무대에서 좀 더 확실히 극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혁명이라는 부분을 통해 동학을 이야기 하는 것이 손쉬웠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동학혁명 이후 우리가 겪어온 시대 상황은 혁명을 대놓고 말하기 곤란한 시대적 상황들의 연속이었음으로 1894년에 있었던 갑오 동학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민중들에게 저항문학의 제재로 사용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저항문학으로서의 동학희곡은 반제국주의, 반식민지주의, 애국투쟁문학으로, 그리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반독재 항거의 문학으로, 대다수 인간들의 인간다운 삶을 염원하는 휴머니즘 문학으로 발전되어 왔다. 동학희곡은 그 희곡이 발표되었던 시기에 따라 다양한 재제와 양식들을 표방하면서 변모의 양상을 겪어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동학희곡이 표방한 주제는 반외세, 민주주의, 인간 중심주의였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반외세나 민주주의 역시 가장 인간다운 삶을 염원하던 인간 중심주의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동학희곡이 가지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이 논의될 수 있다.
또한 역사극으로서의 동학희곡은 인간의 삶과 당대의 시대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역사극 장르에 대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역사극으로서의 동학희곡은 주권을 상실한 수난기에 처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고, 민중의 삶에 대한 각성을 제기하여 민중의식을 확산시켰으며, 또한 합리적 사회건설을 지향함으로써 시대적 소산으로서의 인간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동학희곡에는 여타의 다른 제재 역사극에 비해 시대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작가의 의식이 뚜렷이 투영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극으로서의 동학희곡이 다른 역사극에 비해 어느 정도의 역사성을 구현하고 있긴 하지만 그 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대다수의 동학희곡들이 현재와 과거를 단순히 유비 시키는 방법을 통해 자기 시대의 정신 역시 단순히 그대로 옮겨 놓는 방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학희곡이 역사극으로서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동학이란 제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객관적 공통 특징들을 일반화된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게 될 때 동학희곡은 통일이후에도 분단을 아우를 수 있는 민족문학으로, 도 세계문학으로서 보편성을 갖게 될 것이다.
이들 인물 중 이 작품의 가장 구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표적 인물이 곰배다. 곰배는 동학농민군에 가담했던 광대 출신으로 자신의 딸 버들에게 광대들은 조선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는 사람이며, 북소리는 사람의 심장소리라고 가르쳐 주는 등 동학혁명 패배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광대라는 사실에 늘 자부심을 가지고 딸에게도 그 자부심을 전달해 주려는 인물이다. 곰배는 총과 죽창으로 싸움을 하는 것이라는 동학군 쫌팽이에게 싸움은 총이나 죽창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곰배라는 인물은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현상적 혁명의 선봉에 섰던 전봉준 같은 현상적 개벽론자들보다는 좀 더 온건한 최시형과 같은 정신 개벽론자들과 궤를 같이하는 인물이다. 그는 직접 총과 죽창을 들고 싸움을 하지는 않았지만 동학군 뒤에서 북을 치며 사기를 진작했으며 동학군이 패배했을 때는 모두가 두려워 거두기를 포기한 동학군의 시신을 수습하다 끝내는 관군에게 참형을 당하고 만다. <칼노래>의 작가가 곰배라는 인물을 통해 형상화 해내고자 했던 것은 사람 살리는 세상을 꿈꾸며 그 꿈을 위해 동학혁명의 뒤안길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민중들의 모습이다. 이 작품이 동학혁명을 적극적인 평가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여전히 이어나갈 정신혁명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바로 버들이로 비유되는 혁명을 이어갈 후손들이 과거에나 현재에나 여전히 이 땅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7. 결론
동학희곡은 시대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지면서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창작되고 공연되어 왔다. 우리 희곡사상 동학과 같이 한 가지 단일한 제재를 가지고 끊임없이 창작, 공연 되었던 희곡의 제재는 일찍이 없었다. 물론 문학창작에 있어 어느 시대 어느 작가에 있어서나 반복 모티브라는 것이 있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6.25, 4.19, 5.18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문학적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희곡문학계에서의 단일 역사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움직임은 아직껏 미미한 편이며 또한 반복 모티브들의 출현과 동학이라는 단일한 제재의 반복 출현은 분명 그 층위를 달리한다.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동학이라는 제재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학이라는 사상 자체가 담고 있는 인간중심주의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통용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사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식민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극심한 정치적 변동기를 겪어온 우리의 현대사는 민중 중심에서 벗어난 기득권자들의 역사였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극작가들은 동학이라는 역사적 제재를 가지고 가장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민중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역사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학희곡은 적극적 저항문학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역사극은 직접적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는 대신 과거를 이야기함으로써 현재를 말하며 현재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 저항문학이 지배세력의 탄압으로 그 지속이 쉽지 않았던 반면 역사극으로서의 동학희곡은 역사극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지배세력의 탄압으로 현실 도피적인 문학이 성행할 때조차도 당대 사회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80년대까지의 대다수의 동학희곡들은 동학 자체의 사상이나 종교적인 측면의 조명보다는 1894년에 있었던 농민전쟁으로 명명되기도 하는 동학혁명이라는 특정 시기의 역사적 사건만을 집중적으로 형상화시키며 사회의 모순에 항거하는 민중문학 내지 저항문학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이는 상연을 전제로 창작되는 희곡이라는 문학 장르의 특성상 동학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적인 측면의 형상화보다는 무대에서 좀 더 확실히 극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혁명이라는 부분을 통해 동학을 이야기 하는 것이 손쉬웠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동학혁명 이후 우리가 겪어온 시대 상황은 혁명을 대놓고 말하기 곤란한 시대적 상황들의 연속이었음으로 1894년에 있었던 갑오 동학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민중들에게 저항문학의 제재로 사용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저항문학으로서의 동학희곡은 반제국주의, 반식민지주의, 애국투쟁문학으로, 그리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반독재 항거의 문학으로, 대다수 인간들의 인간다운 삶을 염원하는 휴머니즘 문학으로 발전되어 왔다. 동학희곡은 그 희곡이 발표되었던 시기에 따라 다양한 재제와 양식들을 표방하면서 변모의 양상을 겪어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동학희곡이 표방한 주제는 반외세, 민주주의, 인간 중심주의였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반외세나 민주주의 역시 가장 인간다운 삶을 염원하던 인간 중심주의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동학희곡이 가지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이 논의될 수 있다.
또한 역사극으로서의 동학희곡은 인간의 삶과 당대의 시대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역사극 장르에 대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역사극으로서의 동학희곡은 주권을 상실한 수난기에 처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고, 민중의 삶에 대한 각성을 제기하여 민중의식을 확산시켰으며, 또한 합리적 사회건설을 지향함으로써 시대적 소산으로서의 인간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동학희곡에는 여타의 다른 제재 역사극에 비해 시대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작가의 의식이 뚜렷이 투영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극으로서의 동학희곡이 다른 역사극에 비해 어느 정도의 역사성을 구현하고 있긴 하지만 그 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대다수의 동학희곡들이 현재와 과거를 단순히 유비 시키는 방법을 통해 자기 시대의 정신 역시 단순히 그대로 옮겨 놓는 방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학희곡이 역사극으로서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동학이란 제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객관적 공통 특징들을 일반화된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게 될 때 동학희곡은 통일이후에도 분단을 아우를 수 있는 민족문학으로, 도 세계문학으로서 보편성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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