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교육]해석에 개입하는 허구성-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대상으로 (양식 측면의 의미부여, 인물 해석의 측면, 글읽기에서 쓰기로, 글일긱와 의식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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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학교육]해석에 개입하는 허구성-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대상으로 (양식 측면의 의미부여, 인물 해석의 측면, 글읽기에서 쓰기로, 글일긱와 의식의 형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양식 측면의 의미부여

2. 인물 해석의 측면

3. 글읽기에서 쓰기로

4. 글읽기와 의식의 형성

본문내용

唐詩를 비롯하여, 각종의 비기와 역서, 도참서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폭넓다. 이는 ‘책’이 황제의 의식을 結晶하는 데 기여하는 준거들이다. 시문으로 수작을 하는 장면의 교양(권1, 122쪽)이라든지 빈번하게 나타나는 중국의 고사 인용 등은 이 작품의 특징적 문체를 이룰 정도이다. 근대문명을 비판하는 전거 또한 노자의 도덕경이다. “도덕경에 이르기를, 백성의 헛된 욕심을 돋우는 편리한 물건이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진다고 했거니와 이는 대개 사람의 지식이 늘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 고통과 죄악도 커진다는 뜻이 되겠다.”(권1, 136~137쪽) 이러한 비판은 실학파의 학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비록 이씨(李氏)의 원건릉(元健陵=英正祖) 간에 이르러 한 무리의 몰락한 선비들이 실학(實學)이다, 북학(北學)이다, 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나 다시 살펴보건대 그 또한 공맹(孔孟)에 바탕한 한 갈래의 공리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반계(盤鷄), 성호(星湖), 다산(茶山)은 방대한 저술로 현실의 개혁을 부르짖고 순암(順庵), 연려실(燃藜室), 옥유당(玉堂), 냉재(冷材) 등은 지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려 했으며 초정(楚亭), 담헌(湛軒), 형암(炯庵), 연암(燕岩) 등은 우수한 청(淸)의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역설했지만, 심란한 것은 그들의 논고(論考)일 뿐, 끝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세상이 그들 편에 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마저도 실제적인 경륜과 과감한 개혁 의지가 부족했던 때문이다(권1, 152-153쪽).
예수교에 대한 비판 역시 작중인물이 읽은 전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닌가, 거기서 황제는 전에 없이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권1, 164쪽)고 되어 있는데, 이는 르네 지라르가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주장하고 있는 심리적인 모방의 사례라는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이는 이 작품이 근대의 비판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는 전거에 해당한다.
사람을 평하는 잣대 또한 전거가 ‘책’과 ‘글씨’로 되어 있다. 신기죽을 만나 그가 읊은 초사 한 구절을 듣고, 그를 기용하기 위한 인물평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제가 비록 배운 것은 없으나 낮에 선생의 필법을 보니 해서(楷書)는 안(顔)씨의 근례비(勤禮碑)에서 체를 받았으나 오히려 힘차고, 행서(行書)는 황산곡(黃山谷)의 송풍각시권(松風閣詩卷)의 풍이 있으나 오히려 더 기이하였소이다(권1, 175쪽).”
이 작품에서는 글쓰기 또한 의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서술자는 이 글에 대해 황제에게 적대적인 이들의 견해를 제시하고, 이를 다시 황제를 위한 시각으로 평가함으로써 다른 층위의 역시각(la vision contraire)을 만들어 이중의 비판을 이끌어낸다.
이 권북천표(勸北遷表)에 대해서도 황제의 적대자들의 견해는 지나친 데가 있다. 황제를 편집광으로 모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기죽 역시 알코올 중독에 기인된 과대 망상증 환자로 보는 그들은 이 권북천표를 그 증거로 들고 있다. 합리적이란 수식의 그 왜소한 사고에 어찌 신기죽의 웅대한 포부와 기개가 이해되기를 바라겠는가(권1, 188쪽).
황제에 나오는 인물들은 황제를 비롯하여 그의 신하라고 하는 이들 모두가 글에 미친 이들이다. 글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한 방향으로 부단히 강화해가는 것이 이들의 글읽기 방식이다. 잘못된 글읽기가 사람의 의식을 왜곡하고, 그것이. 왜곡된 의식을 공유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일종 ‘상상의 공동체’ 안에서 제반 행동이 일사불란하게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 텍스트는 텍스트연관성이 밀도있게 구축되어 있지만, 바흐찐의 의미로 대화적 소설이라 하기는 어렵다.
소설에서 “대화적 관계란 상이한 견해가 상이한 주체에 의하여 두개의 상이한 발화 속에 담겨져 하나의 발화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질 때 형성된다(서정철, 2002: 362).” 이는 바흐진의 개념으로는 언어학의 지향점을 종단언어학(translinguistique)으로 설정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바흐찐은 실체로서의 소설에 나오는 모든 언어가 대화적이라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만 현대의 화용론(pragmatique)에 적용되는 원리와 유사한 방법으로 언어가 운용되어야 한다는 전제이다(앞의 책, 360쪽). 황제처럼 서술자의 서술적 권위가 전면적일 경우, 대화적 관계는 서술상에 나타나기보다는 층위와 층위를 겹치는 허구적 구성 방법으로 드러난다. 그런 뜻에서 “중요한 것은 순수한 언어학의 기준에 의하여 포착할 수 있는 개인어나 사회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한 작품 안에서 서로 대립적이고 나란히 놓여 있는 말들을 포용하고 있는 대화적 관점이다(앞의 책, 361쪽).” 이러한 관점은, 거듭하거니와, 허구의 중첩이라는 방법으로 구체화된다.
서술상에서가 아니라 텍스트와 텍스트의 층위를 겹쳐 놓음으로써 텍스트상의 대화관계가 성립될 때라야 개방텍스트가 되어 글읽기와 글쓰기가(lecture / ecriture)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읽기와 쓰기의 통합을, 허구 개념[상상력]을 개입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재조정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황제는 대화적 관계를 거부한다. 인물로서 ‘황제’ 자신은 서사적 정체성을 부단히 만들어 가면서, 세계[현실]와의 대화는 끊임없이 거부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황제는 이처럼 서사적 정체성의 형성과 거부를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근대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되고, 독자의 독서 과정에서는 ‘탈근대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현대 혹은 근대라는 시대에 황제를 내세움으로써 텍스트의 안과 밖을 대화관계로 맞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다면성의 용광로 한 가운데서 독자는 ‘주체성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는 이중화된 허구를 자신의 안으로 이끌어들여 문화적 실천을 감행하게 된다. 그런데 황제의 이야기가 ‘실록’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해서 ‘황제’의 책읽기, 그리고 황제의 글쓰기로 마무리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텍스트의 수용과 생산의 전과정이 그렇게 구체화되기 때문에, 한 인격체의 자기형성에 하나의 전범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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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9.22
  • 저작시기2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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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38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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