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의 분열 - 고신의 분열, 기장의 분열, 합동과 통합의 분열(분열 배경과 분열 결과 및 분열에 대한 성경적 검토), 요약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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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의 분열 - 고신의 분열, 기장의 분열, 합동과 통합의 분열(분열 배경과 분열 결과 및 분열에 대한 성경적 검토), 요약 및 평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고신의 분열
 1. 분열 배경
 2. 분열 결과
 3. 분열에 대한 성경적 검토

Ⅱ. 기장의 분열
 1. 분열 배경
 2. 분열 결과
 3. 분열에 대한 성경적 검토

Ⅲ. 합동과 통합의 분열
 1. 분열 배경
 2. 분열 결과
 3. 분열에 대한 성경적 검토

Ⅳ. 요약 및 평가

본문내용

개에 관한 견해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교권주의자들은 일제시대에 자신들이 행한 친일적인 행위, 특히 신사참배에 대하여 공적인 회개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출옥성도들이 요구한 공적인 회개에는, 조금씩의 정도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정기간의 자숙과 사직, 그리고 진퇴를 위한 시무투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공적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더 이상 교회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마음에서부터가 아닌 강제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것”이기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회개하지 않았다. 이에 신사참배 문제로 투옥되었던 한상동 목사 등은 출옥 후 신사참배 및 일제 하에서의 배교 행위를 회개하자는 자숙안을 제기했으나, 오히려 신사참배 경력을 가진 대다수 목사들로 이루어진 총회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고신측이 1952년에 총노회를 조직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3주간의 자숙이었다. 이는 일제 시대 때 지은 죄에 대한 교회의 회개가, 비록 한국교회 일부에서나마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형룡 박사는 교회의 전도사역과 교회의 일치가 먼저이고 회개는 다음이라는 견해를 가졌으나, 교회의 회개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권징이 되어 참된 교회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권징과 회개를 통하여 순결한 교회가 되지 못한 채 교회의 일치를 주장하는 것은 선악이 뒤섞인 순수하지 못한 교회를 인정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지상의(유형적인) 교회는 완전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성경에서도 권징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완전할 수 없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해서는 다스리고 회개하도록 해서 점점 천상의 교회를 닮아가도록 하는 것이 참 교회의 역할일 것이다. 고신측은 총회에 남아 그들과 함께 회개하고 참 교회를 세워나가기를 바랐지만, 공적 회개를 거부하는 교권주의자들로 인하여 축출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제2차 분열은 기장의 분열이었다. 기장의 분열 역시 외부적으로 볼 때에는 총회신학교 설립에 따른 조선신학교의 장로회신학교와의 병합 문제 및 이에 대한 반발로 인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기장의 분열의 중심에는 조선신학교와 김재준을 어우르는 자유주의 신학사상이 있었다. 조선신학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부분은 있다. 순수한 한국인들에 의하여 세워진 최초의 신학교라는 면에서의 역사적인 의미와 세계 수준의 신학 수립이라는 신학교육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신학교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1940년대 보수주의 신학의 폐허 위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한국교회에 퍼트린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측은 병립할 수 없다. 물론 당시 김재준의 진술을 볼 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렇기에 그의 기독교 신앙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자유주의 사상은 한국교회에 확산되었고 이후 무분별하게 수용되어 결국은 기독교와 공존할 수 없는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구별되고 분리되어야 한다. 총회가 행정적인 잘못에 기초하여 조선신학교의 폐교를 결정했고 이로 인하여 기장측이 스스로 총회를 이탈하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성별(聖別)의 과정이었다.
장로교의 제3차 분열은 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이었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존재한다. 3천만 환 사건에 대한 박형룡 박사의 교장직 사임, WCC 관련 문제, 경기노회 총대 선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일들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즉, 교회 내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에서 비롯된 일들이기 때문이다. 한경직 목사로 대표되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측은 WCC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박형룡 박사를 위시하여 NAE와 관계를 맺고 있는 보수적인 측은 WCC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양 측의 대립과 주도권 경쟁으로 인하여 장로교 총회는 다시 한 번 분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자유주의적 영향이 있는 국제적 교회 단체에 멤버로 가입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교회 분열을 정당화할 이슈가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어디를 가든 자기 신앙을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WCC는 비성경적인 단체이다. “세계 교회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규모가 큰 진보적 국제 기독교 단체에 참석해 보자는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자체가 잘못이다. 동향을 파악한다고 비성경적인 단체와 협력하는 것은 바른 목적을 위해서 잘못된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울 왕은 나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번제를 드렸고(삼상 13:8-12),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제사 드린다는 “좋은” 목적으로 아말렉의 소유를 모두 진멸하지 않았다(삼상 15:15). 하지만 사울은 “좋은” 목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잘못된 방법으로 인하여 책망을 받은 것이다. 목적이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바로 되지 못한 곳에는 애초에 가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도 안다. 하물며 신앙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악”이 선해지는 것보다 “선”이 악해지는 일이 더 쉽기 때문이다.
결국, 보수라고 할 수 있는 NAE 측과 진보의 WCC 측 간의 총회 주도권에 대한 격한 대립이 있었지만, 그 밑바탕에는 비성경적 단체인 WCC와 관련된 신학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제1~3차에 걸친 장로교회의 분열은 신학적 흐름에 따른 분열이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행한 신사참배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회개 요구와 이에 불응하며 남아있는 친일 교권주의자들에 의한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간의 WCC를 둘러싼 대립까지, 한국 장로교의 분열은, 정치적인 요인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각 교회가 자신들의 신학에 근거한 “참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한 과정에서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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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07
  • 저작시기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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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40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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