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사] 집의 역사 (개항 후~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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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상생활사] 집의 역사 (개항 후~오늘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항 후
- 양옥의 도입
- 세창양행 사택

2. 식민지시대
- 문화주택
- 영단주택
- 토막

3. 해방 후
- 해방촌

4. 박정희 시대
- 벌집촌
- 달동네

5. 오늘날 집의 모습
- 아파트의 도입
- 주상복합건물

본문내용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 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구조로 돼 있다.
5. 오늘날 집의 모습
- 아파트의 도입과 정착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촉발된 도시의 주택문제는 필연적으로 주거의 집합 화와 고층화를 유도하게 되었다. 택지의 부족과 대량 건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주거의 집단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화와 더불어 시멘트, 철근, 유리 등의 근대적 건축재료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철근 콘크리트구조와 같은 기술이 도입됨으로써 주거를 고층화 시킬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아파트 형식의 도입은 이미 일제 말기에 조선주택영단의 사업에서 이루어 졌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혜화동에 건설된 목조 아파트는 이 땅에 시도된 최초의 아파트 형식이라고 볼수 있다. 해방이후에는 1964년 마포 아파트의 건설이 아파트 문화의 시작을 알렸다. 저층 단독주택에 길들여진 당시 사람들에게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은 크게 환영받을 수 없었다. 고층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마당을 사용 할수 없다는 불편함, 게다가 설비의 미숙함으로 선뜻 들어 살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주택 구입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에게는 달리 선택할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아파트는 무주택 서민들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식되었다. 그 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의 아파트 단지개발이 촉진되고 이들은 신흥 시가지로 계획된 도시 외곽 에 많은 땅을 사들여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기에 이르렀고, 한정된 토지에 더많은 가구를 만들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고층 아파트 단지를 양산 하였다. http://cheonggye.seoul.go.kr/
- 주상 복합
우리나라의 주상복합 건물은 1960년대 후반부터 도심부 재개발의 개념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세운상가아파트로 시작된 도심부 주상복합건물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복합용도개발의 일반적인 유용성 외에 개발 가능 택지의 부족으로 인한 서울시 주택공급의 일환을 제기됨으로 써 활발하게 건립되어 왔다. 1994년을 기점으로 서울시는 상업지역에만 건설 할 수 있던 주상복합건물을 준주거지역에까지 확대하게 되었다. 주상복합건물은 주거부문의 고층아파트, 업무시설, 상업시설, 기타 부대시설이 동시에 기능적, 형태적으로 복합되는 이유로 대부분 대규모의 고층건물이며, 독특한 형상을 갖고 있다

키워드

집의역사,   개항 후,   ,   역사,   양옥,   주택,   집의 역사
  • 가격2,5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4.10.11
  • 저작시기2018.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40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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