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 평양대부흥운동 _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회개운동, 평양대부흥운동의 영성의 본질, 평양대부흥운동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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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기독교] 평양대부흥운동 _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회개운동, 평양대부흥운동의 영성의 본질, 평양대부흥운동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회개운동

2. 평양대부흥운동의 영성의 본질
1) 말씀과 기도중심의 운동
2) 성령의 사역에 의한 삶의 변화
3) 한국 교회와 한국 기독교인의 신앙적 정체성의 확립

3. 평양대부흥운동의 결과
1) 기독교인 개개인을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듬 (Coram Deo)
2) 한국적인 민족 교회의 형성과 발전
3) 인권의 회복, 여권의 성장 및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식 고조

본문내용

회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신학적 의미를 잘 계승해야 한다. 종교다원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인 경향을 보이는 현대 사회 속에서, 과연 한국 교회는 가장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면서도 한국적인 특성과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소위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의 형성에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가? 복음과 문화라는 차원에서 현대의 한국 교회는 복음의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가치를 한국 적인 기독교 문화로 승화시켜야 하는 문화적이고 선교적인 책임을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인권의 회복, 여권의 성장 및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식 고조
국제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한국 교회를 비정치화 시켰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다른 측면에서 깊이 고찰해 보면, 결국 한국 교회는 이 평양대부흥운동을 통하여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교인들이 철저한 회개를 통해 진지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했으며, 이 회개는 개인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가정과 사회적 성화까지 포괄하고 있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한반도에는 전도와 선교사역이 활성화되면서 교회가 증가하였다. 또한 1907년을 전후하여 기독교적인 관점을 정립한 조선의 인재를 양성하려는 기독교 학교의 설립이 더욱 가속화 되어 기독교 학교가 급격히 증설되었다. 예를들어 1907년 평양 대성학교가 안창호에 의해서 세워진 후 이승훈의 오산학교(五山學敎)와 그 영향을 받은 가명학교(嘉明學敎) 신흥학교(新興學敎) 등 기독교적이고도 민족의식이 충일한 학교들이 연이어 세워졌다. 또한 안창호에 의해서 실력양성론을 지향하는 신민회가 1907년 4월에 조직되었다. 여기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부흥운동을 경험했던 젊은이들이 1907년 이후 대폭 증가된 기독교 학교에 진학하여 기독교적이고 민족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이들이 12년 후인 1919년에 발발했으며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항일 독립 운동이었던 3.1 운동에 가담하는 주요 세력으로 대두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3.1 운동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1910년대에 등장한 민족적인 종교세력으로 분석되며, 3.1 운동의 초기 조직부터 한반도 확산에 끼친 기독교의 영향력이 다른 어느 종교보다 컸다는 것이 이것을 웅변적으로 증명해 준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받고 버림받았던 사람들의 인권이 신장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존의 조선 사회를 짓누르고 있었던 양반, 중인, 상인 그리고 천민의 사회적 신분제도는 부흥운동을 경험했던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더 이상 용인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남존여비의 사고로 여성의 인권이 열악했던 조선 사회 속에서도, 부흥운동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깨닫게 된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임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여성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평가해서, 평양대부흥운동 기간을 거치면서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가 구습의 족쇄를 끊고 개방화되고 근대화되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내부에서는 평양대부흥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분열되었던 여러 교회들이 연합하는 교회 연합의 정신도 실현되었다.
21세기의 한국 교회가 평양대부흥운동을 통해서 배워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평양대부흥운동은, 기독교인의 신앙적 각성과 더불어 본질적인 면에서 기독교인다운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를 촉구함으로 당시 한국 사회가 짊어 지고 있었던 민족적 문제에 대해서도 복음적인 책임감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한국 교회가 평양대부흥운동의 정신을 이어가는 맥락에서 인권의 증진과 사회적 책임의 감당을 위해서 수행해야 할 긴요한 과제는 무엇일까? 평양대부흥운동을 교회와 신학의 만남이라는 시각으로 조명하는 본 주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이슈에 대해서 필자는 21세기 한국 교회의 과제를 “통일”을 위한 헌신이라고 강조해 두고자 한다. 한국 개신교 역사 120년의 절반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진행되었다면, 그 나머지 절반의 역사는 한국의 분단과 통일의 과정이라는 토대 위해서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 시의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 민족 운동이나 신사 참배 반대 운동과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정당했다면, 분단과 통일 준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화두를 신학적이고 목회적으로 풀어나가는 데에 지혜를 모아 전략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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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18
  • 저작시기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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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42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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