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독후감 [오리엔탈리즘][오리엔탈리즘 형성][오리엔탈리즘 역사][21세기 오리엔탈리즘] _ 에드워드 사이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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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독후감 [오리엔탈리즘][오리엔탈리즘 형성][오리엔탈리즘 역사][21세기 오리엔탈리즘] _ 에드워드 사이드 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

2. 줄거리 요약 및 분석

3. 텍스트화된 동양

4. 서구 가치체계의 문제점과 동아시아 발전의 동인

5. 허구로서의 동양

6. 작품에 대한 비판적 접근

7. 21세기의 오리엔탈리즘

8. 결론

본문내용

교, 문명, 사회학,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개별 학자들이 있고, 학문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성과를 산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클리포드 기어츠의 인류학이다. 그의 이슬람에 관한 관심은 매우 명확하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가 연구하는 고유의 사회와 여러 문제에 의해 활력을 부여하는 것이지 , 오리엔탈리즘의 의례나 교의에 의해 생명력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한편 전통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학문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학자나 비평가도, 낡은 이데올로기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도 있다. 쟉크 베르크나 막심 로댕송이 활기차게 연구를 한 것은 그들이 갖는 방법론적인 자각이었다. 그들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① 눈앞에 있는 소재에 대한 직접적인 감수성② 스스로의 방법론과 그 실천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점검, 곧 스스로의 연구를 교조적인 선입관에 의해서가 아니고 소재 그 자체에 대하여 계속 감응하고자 하는 부단한 시도이다. 구조주의 인류학에 의한 최근의 여러 발견에 대한 베르크의 관심, 사회학과 정치학에 대한 로댕송의 관심, 경제사에 대한 오웬의 관심은 지도적인 교정책이다. 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연구가 구체적인 인간의 역사와 경험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는 잊어서는 안된다.‘동양’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학자나 비평가나, 지식인, 인류는 인종적인, 민족적인, 국민적인 구별 이상으로 인간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공통의 기도를 보다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인문과학에서 학자들은 더 이상 오리엔탈리즘이 그 역사상의 전성기에 제공한 인종적, 이데올로기적, 제국주의적인 스테레오타입을 사용하지 않아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8. 결론
과연 서양과 동양의 구분은 무엇인가? 서양에게 동양은, 동양에게 서양은 과연 어떤 의미란 말인가? 과연 양쪽은 결코 화해할 수 없단 말인가?
미국을 정점으로 하여 끊임없이 책동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그 올가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비서구지역의 서글픔.. 에드워드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오리엔탈리즘의 실체에 대해 다양하게 밝혀내고 있다. 서구에서 말하는 '동양' 또는 '동양적인 것'이란 동양의 실체에 가깝기보다는 서구인들의 입맛에 의한 편견과 왜곡으로 빚어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다분히 흥미위주이며, 상업주의적이며, 침략주의적 차원에서 비롯된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여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라는 것. 하여 수백 년에 걸쳐 동양의 역사와 성격 및 운명에 줄거리를 부여했다는 것도 그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모습이다. 발전을 위해서 언제나 ‘적’이 필요했던 서구의 역사에서, 그것은 동양에 대한 동료애적 관심이나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연구와는 거리가 먼, 그저 침략하고 약탈하기 위한 명분 아닌 명분일 뿐이었다. 거기에 자꾸만 살을 붙여 오리엔탈리즘은 거대한 편견의 집합체가 되어버렸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헌팅턴이나 네이폴, 프리드먼과 같은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서구라는 무의식의 공감대가 만들어낸 하나의 집단폭력의 광기다. 서구라는 이기화된 문명의 틀이 이미 그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씌워둔 ‘자본과 자유주의’라는 허울 좋은 온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9.11 사태를 통해 이슬람에 대한 관심히 높아지며 그동안 암암리에 묵과되어 왔던 이슬람세력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큰 허구였는지가 많이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도 역시 이슬람은 왠지 모르게 우리에게 호감을 주는 지역이 아니다. 어쩌면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큰 병폐는 스스로 동양이라 일컫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구가 만들어 서구가 증폭시켜온 오리엔탈리즘, 그 편견의 광기에 어느새 휩쓸려 버린 동양속의 오리엔탈리즘, 제민족과 제종교를 배반하고 서구의 앞장이가 되어버린 일부 이슬람 지도부속의 오리엔탈리즘, 이 성대한 잔치에 돌을 던지며 또 새롭게 펼쳐지는 ‘옥시덴탈리즘’이라는 편견의 틀. 언제까지 세계는 이 허황된 망령들 속에 사로잡혀 있어야 할 것인가?
서로의 차이가 서로를 적대하는 구실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관심의 계기로 작용하고, 서로의 차이가 서로에 대한 우열의 구분이 아니라, 합리적인 교류의 필요성으로 귀결되는 그런 세계는 올 수 없는 것인가? 모두가 염원하는 ‘세계시민’의 꿈 말이다. 그것이 과연 이상일지, 허상일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많은 이들이 허울뿐인 세계화를 부르짖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 말은 참으로 요원한 말로 들린다.
구분은 헌팅턴의 주장처럼 어떤 문명간의 그 문화의 이질성에서 경계지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차피 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들이 왼손으로 밥을 먹어도 ‘적’인 것이고, 그들이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도 ‘적’인 것이다.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은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일인데도, 친구를 적이라 계속 우겨대고 제손에 움켜쥔 것이 아직도 작다고 투정하는 그 철없는 이들에게 왜 우리가 친구인지를 가르쳐주는 것. 손을 한번 내밀기만 하면 금방 알수 있는 그 쉬운 일을, ‘자본’의 홀림에 빠져 언제나 총을 내밀며 다가왔던 그들에게, 그들이 철없이 저지른 그 무수한 만행들을 일깨워주는 것. 서양이 동양을 자신들의 잣대로 제멋대로 제단하여 ‘오리엔탈리즘’을 상정한 것이라면 그 허황된 망령의 틀을 깨부수는 것이 우리가 천착해야 할 ‘오리엔탈리즘’이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2의 십자군’이 되어버린 어리석은 서구에 보내야 할 일갈이다.
한쪽으로 편중된 지식은 그 내용의 우수함을 떠나 진실을 가려버린다.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이 책 한 권으로 그동안 편중된 사고가 고쳐지고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그런 무모한 생각 자체가 진실을 더욱 왜곡할 뿐이니까. 그러나, 편중된 지식에 약간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던 서구의 정의를 비판하는 사이드의 의견들을 읽다보면, 당연하게 여겼던 기존의 생각들의 균열이 가면서, 명쾌하고 시원스런 느낌까지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 알려고 하지 않았던 많은 가려진 일들을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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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4.02.23
  • 저작시기2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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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4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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