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정치와 국풍문화 [블루 사무라이의 시작][섭관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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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귀족정치와 국풍문화 [블루 사무라이의 시작][섭관정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가. 섭관정치와 국풍문화의 형성과 전개
1) 섭관정치
2) 섭관정치의 전성
3) 견당사의 폐지
4) 국풍문화의 형성
5) 정토교의 발전
나. 장원의 발달과 무사의 성정
1) 장원의 발달
2) 지방정치의 문란
3) 무사의 성장
4) 겐지의 대두
다. 원정기의 정치와 문화
1) 원정의 시작
2) 원정과 무사
3) 호겐, 헤이지의 난
4) 헤이시정권의 탄생
5) 원정기의 문화

3. 결론

본문내용

사계급의 발흥, 지방의 경제력 향상으로 지방문화가 등장하였다. 문학으로 섭관가의 전성기를 회상하는 역사 문학으로는『에이가모노가타리(榮花<華>物語)』와 오카가미(大鐘) 불교의 융성, 말법사상의 보급으로는 불교관계의 내용을 담은『후소략키 (扶桑略記), 군기물(軍記物)의 선구적 작품으로는 『쇼몬키(將門記)』『무쓰와키 (陸奧話記)』를 들 수 있으며 불교의 설화, 궁정, 세속의 일화를 모은 설화 문학 등장하였는데 대표적으로 『곤자쿠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들 수 있다. 회화로는 에마키모노(繪卷物) 제작되었으며 겐지모노가타리에마키(源氏物語繪卷)는 귀족의 궁정 생활을 묘사하였다. 서민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반다이나곤에코토바(伴大納言繪詞), 시기상엔기에마키(信貴山綠起繪卷)가 있다. 쵸쥬기가(鳥獸戱畵)에서는 동물을 의인화 하여 상류귀족과 승려를 풍자하였다.
건축으로는 이와테현(岩手)의 히라이즈미(平泉)의 츄손지(中尊寺), 분고(豊後)의 후키지가 있으며, 서민의 예능이 귀족의 주목을 끌었다. 대표적으로 구구쓰(傀儡), 덴가쿠(田樂), 산카쿠(散樂)등의 잡예가 유명하였다. 중앙의 문화가 유력한 지방호족이나 무사에 의해 지방에 도입었다고 할 수 있다.
원정기에서 헤이시 정권에 걸친 12세기의 문화의 특징을 보면 국풍(나라특유의 풍속)문화를 바탕에 두며 새로운 모습도 나타났다. 귀족문화 최후의 꽃을 피우고 무사계급의 대두로 다음의 시대에 전개되는 무가문화의 맹아와 무사계급의 발흥과 지방의 경제력의 향상으로 문화가 지방에도 보급되어 지방문화가 나타났다. 문학적인 면으로는 섭관가의 전성기를 회상하는 역사문학에 후지와라씨의 입장에서 서서 그 영화를 찬미한《에이가모노가타리》, 예리한 비판적 정신으로 묘사한《오카가미》. 이제까지의 역사세에는 없는 참신함이 엿보이고 원정기의 기풍을 보이고 있다.
또 불교의 융성, 말법사상(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천오백 년, 또는 이천 년 후에 불법(佛法)이 쇠퇴하고 시대가 어지러워진다는 사상)의 보급을 반영한 《후소략키》와 같이 불교관계의 내용을 담은 역사서가 쓰여졌다.
군기물의 선구적 작품《쇼몬키》,《무쓰와키》를 들 수 있으며 불교의 설화, 궁정세속의 일화를 모은 설화문학. 인도, 중국, 일본의 설화를 편집한 《곤쟈쿠모노가타리슈》를, 회화에는 모노가타리와 설화의 다양한 장면 반영하였다. 에마키모노도 제작. 겐지모노가타리에마케는 귀족의 궁정생활을 묘사한 걸작으로 유명하며, 반다이나곤에코토바와 시기상엔기에마키는 서민의 모습 생생하게 표현. 동물을 의인화하여 상류귀족과 승려를 풍자한 쵸쥬기가도 유명하다. 중앙의 문화가 유력한 지방호족과 무사에 의해 지방에도 도입되어 독자의 문화를 개화시켰다. 이와테현(일본 혼슈 동북부에 있는 현)의 히라이즈미(일본 이와테현에 있는 정(町)의 츄손지와 분고의 후키지 대당과 같이 미려하고 정교한 건축물이 다수 만들어지고 또 히로시마현의 이쓰쿠시마 신사에는 다이라노 키요모리를 비롯한 헤이시 일가가 봉납한 헤이케노쿄가 소장되어 있는데 헤이시 문화의 진수를 모은 일품이다. 서민의 예능이 귀족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도 이 때이며 예능에서는 구구쓰, 덴가쿠, 산가쿠 등의 잡예가 유행하였다.
3. 결론
조선의 세도가문처럼 한 가문의 50여년에 걸친 독제정권이었던 섭관시기와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 이루워진 원정기 시대에는 헤이안 중 후기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치열했던 시대에서 우리는 일본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는데 이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재력을 불리기 위해 만든 장원제도와 귀족들의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거나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무사 계급의 정계 진출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장원과 무사는 장원제도가 증가하면서 국가가 실질적으로 거둬들이는 조세가 감소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국가는 장원 억제 정책을 펼쳤으나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독자적 무력 세력을 키워나감에 따라 실제적으로는 하나로 뭉쳐있었던 일본 중앙집권체제가 수많은 독자적인 세력으로 분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서 섭관시대와 원정기 시대가 꼭 퇴보만 거듭 되풀이 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중세로 이어진 봉건적 성격의 장원제도를 토대로 무사들이 강성했던 사무라이 시기가 이 후 도래하게 되었고 일본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지금의 시대에도 일본이라 하면 사무라이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무사들의 성격이 짙게 깔린 나라를 만들어질 수 있게 하는데 토대를 쌓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격동기, 다른 나라에서 일본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모두 이 시기에 기초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 어지러웠던 시대 안에서 꽃핀 국풍문화와 국풍문화를 토대로 새롭게 나타난 원정기 문화는 일본 시대를 통틀어 지금까지도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는 다케토리모노가타리를 비롯해 수많은 산문과 와카, 소설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던 시기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일본의 고대와 중세로 이어지는 헤이안 중기에서부터 후기의 모습을 조사해 보았다. 조사를 통해서 일본의 사무라이의 기초를 닦은 그들의 삶과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더라도 자신의 국가에 맞는 모습으로 수용, 발전시켜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낸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섭관 시기와 원정기 시기는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와 국풍문화의 기초를 닦은 중요한 고대와 중세의 연결고리로서 존재하고 있었음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 참고문헌
1. 일본인이 쓴 일본의 역사(상) , 이노우에 키요시 저, 차광수 옮김, 대광서림, 1995
2. 일본의 봉건제, 피터듀스 저, 양필승.나행주 옮김, 신서원, 1991
3. 일본역사, 연민수 편저, 보고사, 1998
4. 일본 문화사, 홍윤기 저, 서문당, 1999
5. 헤이안 일본, 모로 미야 저, 노만수 옮김, 일빛, 2008
6. 일본사, 존 W. 홀 저, 박영재 옮김, 역민사, 1986
※ 참고사이트
1. 네이버 블로그 - KHJ태니커 인류가 쌓은 모든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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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5.26
  • 저작시기2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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