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영화사 - 표현주의와 나치즘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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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영화사 - 표현주의와 나치즘을 중심으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독일 영화사 개괄

 1. 초기 영화
 2.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영화
 3. 나치 시대의 영화
 4. 전후영화: 폐허영화와 향토영화
 5. 뉴 저먼 시네마
 6. 뉴 저먼 시네마 이후

Ⅱ. 독일 표현주의 영화 시대: 1919~1925

 1. 개념
 2. 탄생배경
 3. 특징과 대표작
 4. 독일 영화의 전성기와 표현주의 영화의 변화
 5. 표현주의 영화의 한계와 영화사적 의의

Ⅲ. 나치시대의 독일 영화
 
 1. 나치당의 집권
 2. 나치시대의 영화산업
 3. 나치 시대 영화의 특징
 4. 나치 시대 영화의 영화사적 의의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갖게 된다. 쉬스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가증스러운 범죄들을 저지르고 이것은 유태인에 대한 반감을 낳게 되어 이 영화가 널리 상영된 이후 유태인들에 대한 폭력이 심화되었다.
② <영원한 유태인>
유태인을 기독교 국가들을 떠돌며 타락행위를 퍼뜨리는 집 없는 인종으로 묘사하는 식으로 유사한 신화를 이용하고 있는 기록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나치게 반유태인적이라는 이유로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③ <로스실트 가>
유태인 은행가 가문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영화의 한 장면은 국제 금융을 통제하려는 유태인들의 음모를 입증하려는 맥락에서 제시된다.
(3) 군국주의적 영화들
나치의 선전은 전쟁에 대한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군국주의 영화들은 동지적인 격려로 가득 찬 군인의 삶을 보여주었다. <세 명의 하사관>(1939)에서 나치는 군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군인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을 미화함으로서 혈통과 국토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을 조장했다.
또한 괴벨스가 전쟁기간 동안에 총력을 기울여 제작한 콜베르그는 이러한 통념을 더욱더 부추겼다.
♠콜베르크♠
독일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1943년에 대규모 역사물로 기획된 작품이다. 물자 부족으로 인해 완성된 것은 2년 후였지만 이 영화에 바친 괴벨스의 노력은 대단해서 엑스트라 동원을 위해 20만에 달하는 군인들을 전선에서 빼내어 출연시켰을 정도였다. 그 결과 전쟁 초기에 도입되었던 새로운 아그파 컬러 생필름으로 찍힌 초호화 영화가 탄생하였다.
<콜베르크>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러시아에서 있었던 실화를 극화해 만든 것으로 비록 패배했지만 용기만은 대단했던 프러시아의 주민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괴벨스는 당시 패전의 기미가 짙던 독일을 평범한 주민들이 일어나 구해주기를 바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개봉에 앞서 베를린이 소련에 함락됨으로서 <콜베르그>는 영원히 상영되지 못했던 것이다.
(4) 장르 영화
나치 시대에 괴벨스에 의해 만들어진 엄청난 수의 작품들은 확고한 이데올로기나 공적인 간섭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물론 몇몇 작품들이 나치 선전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영화들은 그 시대 전체 영화에서 규정이 아닌 예외로 극히 미미한 부분만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이른바 <비정치적> 작품들이었다. 멜로 드라마나 범죄물, 전기 영화 이외에도 그 시대 영화의 거의 절반 이상은 영화계 프로들이 감독한 코미디와 뮤지컬 등이 차지했다. 이들 영화의 대부분은 흠잡을 데 없는 독일 영화의 고전으로서, 경우에 따라선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작품들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상생활을 묘사함으로서 나치도 순수한 오락물에 대해서는 표현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쨌든 분명한 점은 이런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나치 시대의 영화들이 우리의 생각보다는 좀더 다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① <암피트리온>
고대 로마를 재현한 거대하고 추상적인 백색 세트가 나오는 희극영화로 시대성을 고려하지 않는 연출을 보여준 영화이다.
② <캘리포니아의 황제>
나치 시대의 영화들 중 가장 이례적인 작품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우연히 금광을 발견하여 1849년 미국의 황금광 시대를 불러 일으켰던 요한 수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영화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 어디에서도 몇 년 후 전쟁을 치르게 되는 독일과 미국의 긴장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③ <청춘>
여러 가지 선전영화를 만들었던 바이트 할란의 작품으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양식과 엄격한 도덕성은 당시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4. 나치 시대 영화의 영화사적 의의
나치 시대는 독일 영화사에서 암흑기로 분류되는 시기이다. 그만큼 표현주의 영화의 등장으로 절정에 이르렀던 독일 영화가 나치 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침체되었다는 뜻이다.
비록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선전선동영화가 주가 된 것은 아니었으나 이 시기 나타난 장르 영화들은 전후를 거쳐 뉴 저먼 시네마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저 시대에 부응하는 단순하고 평범한 영화들에 거쳤을 뿐이었다.
또한 적게나마 제작되었던 선전선동영화들은 전후 독일에 진주한 연합국들에게 독일 영화의 인프라를 모조리 파괴하게끔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독일을 지배하였던 나치의 이념을 전파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선전선동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합국들은 나치의 이념으로부터 완전히 독일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 독일 영화 산업 인프라를 파괴했고 결국 한동안 독일에선 제대로 된 영화가 제작되지 못하였다. 그러는 동안 독일 국민들의 탈
나치화, 재교육을 명목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대거 유입되면서 독일 영화계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나치 시대는 표현주의 영화가 가져다 준 독일 영화의 국제적 위상과 영화 산업의 인프라를 모조리 파괴해버린 독일 영화사 최악의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가 있었기에 전후를 거쳐 뉴 저먼 시네마라는 새로운 독일 영화의 전성기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모든 일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듯이 말이다.
Ⅳ. 참고문헌
<세계 영화사 강의: 초기 영화에서 아시아 뉴 웨이브까지> 임정택,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1
<세계영화사: 영화의 발명에서 무성영화 시대까지 1880s-1919> Thompson, Kristin, 시각과 언어, 2000
<세계영화사: 음향의 도입에서 새로운 물결들까지 1926-1960s> 크리스틴 톰슨, 데이비드 보드웰 [공], 서울: 시각과 언어, 2000
<세계영화 100년 사> Pre dal, Rene, 이론과실천, 1999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제프리 노웰-스미스, 서울: 열린책들, 2005
*참고 사이트
http://chonnam.chonnam.ac.kr/%7Esunim/dtkul_03/movie.htm
http://suny.yonsei.ac.kr/%7Ematd/seminar/7th/repor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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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3.13
  • 저작시기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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