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와생활문화 공통] 전통생활문화의 주제와 관련 있는 곳을 찾아 직접 답사하고, 답사 후 느낀 소감과 현대적 의미를 정리 :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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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통사회와생활문화 공통] 전통생활문화의 주제와 관련 있는 곳을 찾아 직접 답사하고, 답사 후 느낀 소감과 현대적 의미를 정리 : 생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전통마을 선정 동기

2. 우리나라 전통마을 현황
1) 전통문화 관광
2) 전통마을 현황

3. 전통마을 답사를 위한 사전 준비, 진행과정
1) 마을 소개
2) 주변 환경과 소개

4. 전통마을 현장에서 새롭게 느끼거나 알게 된 생활문화 내용
1) 자연재료를 이용하여 집짓기
2) 빛과 바람의 이용
3) 겨울의 온돌과 여름의 마루

5. 전통마을의 고전과 현대문화 비교 분석과 문제의식 제기

6. 답사 후 느낀 소감과 현대적 의미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대지와 집의 규모를 제한하였고, 대체로 이러한 규제를 지켰다고 믿어지는 것은 우리문화에 내재화되어 있던 비우사상(庇雨思想)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의 집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5실5허(5실 : 집이 작고 사람이 많이 살 때, 집이 크고문이 작을 때, 담벽이 두텁고 높을 때, 집이 작고 육축이 많을 때, 하수구가 동남쪽으로 흐를 때, 5허 : 집이 크고 사는 사람이 적을 때, 집 문은 큰데 집이 작을 때, 담벼락이 허술할 때, 샘과 부엌이 적처에 있지 않을 때, 집터가 너른데 집이 작을 때)의 내용을 보면, 집이 너무 작고 낮은 것이 농경사회의 대다수가 겪었던 가난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비우사상에 근거하고 있음도 알 수 있게 한다. 즉 개화기까지도 터 값은 무료이고 집값만을 흥정했던 기록을 보면 땅이 문제가 아니고 남의 도움을 받아 상부상조로 목재를 잘라와 기틀을 만들고 진흙을 짓이겨 흙벽을 만들고, 허리를 굽힐 정도로 짧은 동량을 써서 소박하게 집을 지었다. 전통주택을 짓는 마음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은 자연과 조화롭게 자연의 하나인 인간이 집에 깃들어 살도록 한 사람이 차지하는 공간이 작을수록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5실 5허의 상징성이 중요했던 것이다.
성주한개마을의 마을 만들기는 입향조를 중심으로 생기와 감응을 얻을 수 있는 풍수지리적인 사상체계가 작용하였고, 대종가와 소종가,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가 호혜적이어서 마을 전체가 공동체적이고 공생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다시 공동체 안에 관심을 가져서 호혜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담 벽을 허무는 것’으로 상징화되는데 이러한 것이 사실은 전통적인 마을 만들기였다.
풍수지리사상에 근거한 우리나라의 지세론은 반드시 산을 등지고 냇물을 앞으로 거느리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아늑하게 좁혀드는 지형보다는 환하게 벌어지는 형을 좋은 택지로 여겼고 평지보다는 높은 곳에 집을 지었다. 이것이 한국 촌락의 기본형태가 평야가 아닌 산을 배경으로 하고 발달한 이유이다. 집터는 산세가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인 곳에 잡았고 이러한 곳을 발복하는 집터로 알았다. 그리하여 택지풍수는 왼쪽에 냇물이 흐르는 곳을 좌청룡, 오른쪽에 길이 나 있는 곳을 우백호, 집 뒤에 둔덕이 있는 곳을 후현무, 집 앞에 질펀한 미나리꽝이나 논이 있는 곳을 전주작으로 하였다. 이렇게 하면 남쪽이 낮아 물도 잘빠지고 볕도 잘 들며 가까이 물이 있어 농사에 유리하고, 밖으로 드나드는 길이 있어 물자가 풍부하며, 산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이상적인 길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실학사상체계에서는 지리, 생리, 인심, 산수가 좋아야 한다고 하였다.
조상들은 산천에 흠집을 내는 일을 극도로 삼갔다. 사람이 살 집은 온전한 터에 지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사는 사람이 산천 정기를 타고나서 뛰어난 인물이 되려면 집터의 지기(地氣)를 손상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터를 평평하게 고른다고 산자락을 파헤치는 일을 해서는 산천정기를 받을 수 없다고 믿었다. 따라서 한옥은 짓는 터전을 훼손시키지 않고 산천의 정기를 받기 위해 터를 돋워 쓰며 자연과 어우러지는 전개를 당연하게 여겼다.
한국인의 자연관은 자연을 거역하지 않고 수용하거나 동화되게 하였다. 초가집의 지붕도 환경 공생적이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박넝쿨의 생산 공간으로 사용함으로써 자연에 환원시켰고, 가을이면 고추, 호박, 가지, 무를 썰어 말리는 건조장으로 활용하였다. 이는 지붕을 짚으로 이어서 통풍이 가능하여 식품을 말리기에 적절하였고, 지붕은 햇볕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또한 마루 아래는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의 휴식처였다. 초가지붕은 방수성과 쾌적성이 뛰어난데 짚의 표면의 각피는 유성(油性)이라 물이 묻으면 흡수되지 않고 줄기를 따라서 흘러내리며 풍압에 비례하여 표면의 수분증발이 빨라지고 겹쳐진 틈으로 통풍도 잘되게 되어있다. 기와는 수분을 포화점까지 보유하고 있다가 서서히 증발시키는 성질이 있어 포화점까지는 침투시키지 않으므로 지붕재로 쓰이지만 물기를 지붕공간의 안팎으로 오랫 동안 서서히 내뿜음으로써 지붕 밑 공간을 오랫동안 고습도로 유지시키는 문제점이 있는 재료이다. 기와지붕은 부잣집의 상징이고 내구성과 외관은 장중하나 쾌적성은 초가지붕에 못하다. 그러나 기능이 다한 후에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처마 밑에는 제비가 둥지를 틀어 사람과 한집에서 공생하였다.
또한 한국의 문은 닫아 놓아도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빗소리가 들려서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와 동화되어 살 수 있고, 달빛의 자연조명으로 실내는 은은한 어스름을 만들었다. 아래 윗방 사이의 장지문은 두런두런 소리가 들려 눈에 안보이게 가려 놓은 것일 뿐 옷 벗는 소리, 들고 나는 소리, 소근대는 소리가 다 들려 그 소리를 해석하여 반응할 줄 알도록 더불어 사는 지혜가 발달되도록 하였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전통생활문화의 주제와 관련 있는 곳을 찾아 직접 답사하고, 답사 후 느낀 소감과 현대적 의미를 정리해 보았다. 현재 전통민속마을 내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당시 생활양식에 따라 필요한 요소들을 구축하고 제거하는는 것의 반복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다. 마을이 변화하는 현재의 모습들도 역사의 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적인 요소들 보다 과거의 전통생활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보전해나가고 있다는 것에서 전통민속마을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을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역사환경으로 가치가 있어 보전해야 하는 요소들을 찾아 보전대상으로 삼고 이들을 중심으로 보전사업을 진행하여야 한다.
참고문헌
주거학 연구회, 친환경 주거, 2003.
신영훈, 우리문화 이웃문화, 문학수첩, 1997.
한필원 외, 농촌마을 공간구조의 변화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1990.
고원규, 조선후기 서울의 공간구성과 공간인식, 서울학연구, 2006.
권숙인, 역사와 전통을 주심으로 한 관광의 생산: 아이즈복고회의 사례를 중심으로, 국제·지역연구, 1998.
김재식,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전통문화의 존재양식 : 탈춤과 마당극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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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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