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과 문화-지미 헨드릭스 생애,지미 헨드릭스 앨범,지미 헨드릭스 평가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대중음악과 문화-지미 헨드릭스 생애,지미 헨드릭스 앨범,지미 헨드릭스 평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지미 헨드릭스......................................... p. 3

2. 연혁................................................................. p. 3

3. 생애.................................................................. p. 3

4. 앨범.................................................................. p. 4

5. 영향.................................................................. p. 6

6. 평가.................................................................. p. 7

7. 참고자료....................................................... p. 7

본문내용

지미 헨드릭스 등의 영국 쪽의 음악인들도 참여하여 페스티발에 무게를 더해 주었다. 특히 특이한 인물은 인도 출신의 시타 연주자인 라비 샹카인데 당시 히피들과 사이키델릭 음악에서 추구했던 동양적 정신 수양법(주로 요가)을 감안하자면 그야말로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이 낳은 최대의 영웅은 제니스 조플린과 지미 헨드릭스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피드백 효과를 극도로 살린 분열적인 사운드로 각광을 받았는데 특히 그의 이빨로 기타를 물어뜯는 연주와 '기타 화형식' 등의 해프닝은 훗날 하드록/헤비메탈 계열의 기타리스트들에게 반복적으로 재현되곤 했다.
우드스탁 페스티발
몬트레이 팝 페스티발의 대성공 이후 몇 년간 페스티발의 붐이 일어났다. 그 정점이자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 아마도 우드스탁 페스티발일 것이다. 1969년 8월, 뉴욕주 베델시 근처의 막스 야스거의 개인 농장에서 벌어졌던 이 공연은 본래 근처의 다른 곳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당국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서 야스거의 농장에서 개최되었다고 한다. 당시 모인 관객의 인파가 40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그 규모는 정말 대단했다. 비영리 공연이었던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과는 달리 처음부터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기획되었던 이 공연은 공연 기간에 내린 폭우 때문에 거대한 진흙탕으로 변해버렸던 야스거의 농장, 식량과 화장실의 부족 등 최악의 상황에서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랑과 평화라는 히피시대의 이상을 상징하는 단어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미국 사회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월남전이었고 야스거의 농장에 모인 음악인들과 젊은 관객들은 전쟁의 반대와 평화의 보장이라는 이상에 한 뜻을 이루었다. 그래서 기존의국가가 아닌 자신들 만의 상상적인 국가의 선포를 외치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려는 자구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 공연에는 조안 바에즈, 알로 거슬리 등 포크 계열의 거물들과 지미 헨드릭스, 그레이트풀 데드,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의 사이키델릭/블루스 록 계열의 뮤지션들의 참여했다. 특히 전설적인 여성 포크 뮤지션 조안 바에즈는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제니스 조플린이 보여주는 주술적인 열정과는 다른 지적이고 깊이 있는 곡의 해석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드스탁의 이상주의는 4개월 후에 벌어진 롤링스톤즈의 알타몬트 공연에서 완전히 깨진다. 공연 중 장내 정리를 맡았던 폭주족 '헬스 엔젤스'에 의해 관객이었던 한 흑인 청년이 폭행, 상해 당한 것이다. 이후 히피 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감이 커지고 당국의 규제가 심해지면서 한동안 록 페스티발이 자취를 감춘다.
3. 우드스탁 94
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있은 지 25년 만에 개최되었던 우드스탁 94 공연은 69년 당시 젊은이 였던 우드스탁 세대들이 중년으로 성장한 것을 기념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직도 60년대의 록 르네상스가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획되었다. 69년 당시 참여했던 크로즈비 스틸즈 앤 내쉬, 조 카커 등이 다시 참가하였고 60년대 세대의 실질적인 대부였던 밥 딜런(하지만 그는 69년의 우드스탁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 참가하여 지난 세대를 대표했고 메탈리카를 위시하여 블라인드 멜론, 크랜베리즈, 스핀 닥커즈 등이 참가하여 69년 이후의 록/팝 음악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일종의 자유 공동체적인 성격을 보여준 69년의 '오리지널' 우드스탁과 비교해 보자면 단순한 연합 공연의 성격이 짙었고 일부에서는 기획이 지나치게 상업주의에 물들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사반세기의 시간 차이는 단지 몇몇 뮤지션의 얼굴에 주름살을 늘려 놓은 데 그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곧 이어 발매된 공연 실황 앨범과 비디오 테이프를 비롯한 각종 이벤트성 상품을 볼 때 비난을 피해가기 힘들었던 기획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발을 복원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기대였을 것이다. 99년에도 "우드스탁99"라는 이름으로 한번 더 비슷한 이벤트가 벌어졌는데 키드록, 림즈 비스킷, 콘 등 하드코어 성향을 지닌 뮤지션들이 중심축을 이루었으나 94년 만큼의 기대와 호응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 참고문헌
책: 저 자-조정아, 『팝음악의 결정적 순간들』, 2005년, p.123~125
저 자- 남무성, 『paint it rock』, 2009년, p.168~175
저 자- 하세민, 『음악사를 빛낸 기타맨 1』, 1998년
사이트: 위키피아 백과사전
http://navercast.naver.com/design/icon/2839
  • 가격2,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4.12.08
  • 저작시기201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5265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