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열녀 이데올로기의 비판적 고찰> 조선전기 유교적 이데올로기,정립과 행동양식,가문의식과 열녀 이데올로기,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열녀의 세 가지 굴레.열녀함양박씨전,연암 박지원의 사상과 작품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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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시대 열녀 이데올로기의 비판적 고찰> 조선전기 유교적 이데올로기,정립과 행동양식,가문의식과 열녀 이데올로기,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열녀의 세 가지 굴레.열녀함양박씨전,연암 박지원의 사상과 작품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1.1. 연구 성과 및 서술방향

2. 본론
 2.1. 조선전기
  2.1.1. 조선조 이전의 열녀 형상화 양상
  2.1.2. 조선전기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열(烈)이념’의 정립
  2.1.3. 조선전기 작품에 나타난 열녀의 행동양식
 2.2 조선후기
  2.2.1. 양란 이후,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상
  2.2.2. 조선후기 열녀의 세 가지 굴레- 법과 제도, 가문의식, 그리고 양란
   2.2.2.1. 법과 제도
   2.2.2.2. 가문의식과 열녀 이데올로기 확산 도구로서의 텍스트
   2.2.2.3.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2.2.3 ‘향랑’을 소재로 한 텍스트들 속에 반영된 시대상과 의식
 2.3. 연암 박지원의 사상과 작품분석
  2.3.1. 연암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2.3.2. 연암소설의 주제와 사상적 기반
  2.3.3. 연암 박지원의 사장(事狀)과 그 의의
  2.3.4. 열녀함양박씨전

3.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자기 나름대로 추측하여 기술하였다. 박지원이 거명한 다른 열녀전에서는 박씨의 유서를 인용하면서 모두 박씨가 죽은 남편에 대한 예를 지키기 위해 자결했다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박지원은 박씨가 과부로서 살아갈 고통스러운 나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결하였다고 기술했다. 이는 다른 작가의 시각과는 현격하게 다른 것이었다.
이처럼 〈열녀함양박씨전〉은 여성의 삶을 기록하는 상이한 기술 방법과 여성의 삶을 평가하는 상이한 평가 시각을 병렬로 대조하는 구조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박지원의 서술시각은 남편을 따라 순절한 함양 박씨에 대한 칭송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우세하다. 연암은 이 작품을 통해서 조선 봉건 사회가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 열녀는 두 번 남편을 갖지 않음. 열녀는 절개 곧은 여자.
’라는 윤리 규범을 내세우고, 벼슬길에 적서(嫡庶)를 차별함으로써 암암리에 여성에게 강요되고 있는 개가금지의 사회적 폐단을 비판하였다. 아울러 종사를 선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던 사대부들의 인습적인 문학양식인 열녀전 또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로 볼 때 연암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동기는 그가 안의 현감 시절에 경험했던 함양 박씨의 순절사건 뿐만 아니라 연암이 젊은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인본주의, 여성의 인간성 긍정 등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3. 결론
본 발표에서는 조선 사회의 역사적 전개와 열녀전 작품의 분석을 통해 열녀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2.1의 조선전기에서는 유교적 이념이 정착되는 과정을 다루었고, 전기의 열녀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작품 <홍절부전>, <절부안씨전>의 분석을 통해 아직까지는 유교윤리가 일반 백성들의 삶을 통제하는 수준에는 못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2.2. 조선후기 부분에서는 양난 이후 급격하게 변한 사회상을 통해 사회질서 정비를 위한 수단으로 열녀가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열녀전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와 열녀의 사회적 의미를 그 당시 실제 법과 제도를 통해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향랑전>을 통해서 조선후기에 열녀에 대한 사회적 변화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첫째는, 조선전기와는 달리 열녀의 신분이 미천한 여인에게까지 이어짐을 보여줌으로써 조선후기에 이르러 유교사상이 민중들의 생활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고, 둘째는, 위의 조선전기 작품 <홍절부전>, <절부안씨전>에 나오는 열녀들은 단순히 개가를 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며 살았다는 정도로 끝나나, <향랑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후기 사회에서 열녀가 되려면 죽음이 필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2.3에서는 박지원의 작품 분석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관과 그가 생각한 열녀 제도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는 당대 소외된 계층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썼는데 이는 그의 열린 사고와 당시 부패한 조선사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소설 <열녀함양박씨전>은 열녀에 대한 관점이 무조건 죽음을 강요하던 이전과는 달리 그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열녀제도에 대해 비록 온건하긴 하지만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위의 발표들을 종합해 볼 때 열녀전은 유교윤리를 강화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남성의 시각에서 쓰여진 불합리한 역사의 기록이었다. 그 과정에서 열녀가 되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채 단지와 할고 등의 끔찍한 방법으로 죽어갔지만, 가정과 나라의 평안을 위해 그녀들의 희생은 윤리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유교사상과는 맞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여성의 천성’ 강명관, 『열녀의 탄생 - 가부장제와 조선 여성의 잔혹한 역사-』, 2009, p.501.
이라고 주장하며 열녀의 희생을 합리화시켰다. 따라서 열녀전의 보급은 여성들을 죽음으로 인도하고, 그것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조선후기에 이르러 열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이것은 도리어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만다. 이것은 그 만큼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살하는 여성들이 많았음을 의미하는데 , 지식인들 역시 이것을 염려하여 여성의 무차별적인 자살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연암 박지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도 결국 여성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남은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여성 하종의 의미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책, p.531.
이처럼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열녀가 되기를 강요받으며 수절과 정절, 끝내는 죽음까지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열녀담론’이 그 시대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그릇된 지배 이데올로기가 가져오는 폐단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역사의 한 단편인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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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옥, 「열녀전승의 역사적 전개를 통해 본 여성적 대응양상과 그 의미」, 『여성학논집』, 이화여자대학교한국여성연구원, 1995.
박주, 「『열녀의 탄생 - 가부장제와 조선 여성의 잔혹한 역사-』(강명관 저, 돌베개, 2009, 855쪽)」, 『여성과 역사』 제11집, 한국여성사학회, 2009.
이대형, 「조선전기 열녀전 연구」, 연세대학교 논문집 제26집, 연세대학교, 1994.
이혜순, 「조선조 열녀전 연구」, 『성곡논총』 제30집 1권, 성곡학술문화재단, 1999.
정출헌, 「<향랑전>을 통해 본 열녀 탄생의 메카니즘」, 『조선시대의 열녀담론』,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2.
홍인숙, 「조선전기 열녀전 연구」, 이화여대 석사학위 논문, 2000.
강명관, 『열녀의 탄생- 가부장제와 조선여성의 잔혹한 역사』, 돌베개, 2009.
김영, 『조선후기한문학의 사회적 의미』, 집문당, 1993.
이수봉, 『백제문화권역의 효열설화연구- 호서지방을 중심으로』, 백제문화연구원, 1984.
한국고전여성문학회, 『여성학 논집』,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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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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