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레포트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레포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저술
2.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1) 자유/자율
2) 국가의 형성
3) 공화국과 비르투
4) 정부와 정치제도
5) 종교
3. 마키아벨리즘
1) 마키아벨리즘의 유형
2) 마키아벨리즘의 기원 문제
3) 마키아벨리즘의 현대적 의미
(1) 좌파와 마키아벨리즘
(2) 마키아벨리즘의 현대성
4) 마키아벨리즘의 시사점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자유민주주의는 마키아벨리즘이 호전적인 국가로 표출되는 것은 저지할 수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이야 말로 근대국가를 존재케 한 이념적 기초 가운데 하나이므로 우리가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존재하는 한 결코 그것은 제거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마키아벨리즘에 내재된 권력의 자의성을 이성과 법을 통하여 어떻게 적절히 제어하는가를 성찰하는 일 될 것이다.
4) 마키아벨리즘의 시사점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오늘날 정치에 주는 시사점은 과연 무엇인가. 오늘날은 비록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처럼 절대군주국이 침입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 약소국은 강대국과의 외교문제에 있어서 침략을 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하는 국제관계에서는 또한 영원한 우방국가도 없고 적국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마키아벨리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냉철한 현실적 판단력과 통찰력으로 정치 감각을 익히고 무리 없이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고 권익을 찾고 자주성을 지니는 일 일 것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국민의 신임과 지지를 기반으로 국내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고 국제정세에 휩쓸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특히 군주가 경멸이나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은 오늘날의 정치상황에 있어서도 따끔한 충고가 아닐까 한다. 정작 직분에 충실하지 못하고 사치와 부의 축적만을 일삼는 지도자는 결코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경멸을 받는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통합은 어려워지고 정부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국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력향상을 위한 무조건적인 비도덕성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가 그렇듯 마키아벨리가 정치에서 그 수단이 선이건 악이건 별개의 문제로 놓고 그 별개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비난 할 수는 있겠으나, 그러나 현실에서 정치권력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가를 논했다고 규탄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할 때, 오늘날 정치적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대처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Ⅲ. 결론
마키아벨리가 논고에서 주로 논하고 있는 것은 로마 공화정이지만 그가 피렌체 공화정은 물론 당대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논할 때 드러나는 것처럼 그는 항상 자신이 태어난 조국 피렌체의 통치자들이 저지른 과오와 실책 그리고 부패한 피렌체의 쇄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무릇 모든 사상이 자전적이듯이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역시 자전적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자율성을 대외적으로는 자주성, 대내적으로는 자유로운 정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인간의 주체성으로 파악했지만 이 모든 세 요소는 자신과 자신의 조국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실패작이었다. 피렌체는 자주성을 잃고 끊임없이 프랑스, 에스파냐 등 주변강대국의 침략과 개입에 시달이고 있었다. 자신이 봉직하던 피렌체의 자유로운 공화정 역시 에스파냐의 개입에 의해 붕괴되고 메디치 왕정의 복귀로 귀결되었으며 시민들은 전제정치 하에서 영위하는 삶을 노예상태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부패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체념은 금물이기 때문에 그는 메디치 왕정하에서도 활동적인 공직으로 복귀하고자 군주론을 메디치 군주들에게 헌정했으며, 그의 최대의 소망은 여전히 비록 우리 메디치가의 군주들이 나에게 돌을 굴리는 일을 시키는 것으로 시작 할지라도 그들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칩거 생활을 하는 동안 시대와 운명의 악의에 의해 당신이 실천할 수 없었던 가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좋은 사람의 의무이기때문에 논고를 집필하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앞부분에서 마키아벨리의 생애에 대하여 서술할 때 마키아벨 리가 피렌체 교외에 칩거하면서 일단의 인문주의자 및 공화주의자들과 교제한 사실 - 논고를 집필하게 된 배경 - 까지만 언급했는데, 그 후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군주론을 헌정한 로렌초가 요절하고 그의 사촌인 줄리오 추기경이 1520년 피렌체의 지배권을 승계하게 됨에 따라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궁정에 재차 소개되었다. 그리하여 동년 11월 피렌체의 역사에 대해 저술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피렌체사를 집필하는 한직을 떠맡기도 하였다. 그러나 메디치 왕정은 1527년 프랑스군의 로마약탈, 이로 인한 교황의 도주,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인민의 봉기 등으로 인해 마침내 붕괴되고 1527년 5월 16일 피렌체에는 바야흐로 공화정이 복원되었다. 이는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에게는 그가 애타게 기다리던 절호의 기회가 운명의 반전에 의해 닥쳐온 것으로, 진정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었으리라. 마키아벨리는 의당 공화정의 복원과 더불어 예전처럼 활동적인 공직에 복귀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로운 공화주의자들에게 마키아벨리는 한낱 늙고 하찮은 메디치가의 가신에 불관한 인물로 비쳤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기란 거의 불가능 했다. 다행히 마키아벨리에게 마지막 남은 비르투 마저 소진시켜버린 절망적인 체념은 오래가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마키아벨리는 곧 병을 얻었고 1527년 6월 21일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를 단순히 권모술수 정치 옹호자로 보는 것은 잘못이고 오히려 그는 현실주의적 정치사상가로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영광이나 권력의 추구가 단순히 도덕윤리적인 규범에 의해 제약받을 것이 아니라 군주의 냉정하고 계산적인 행동을 요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폭력마저도 계산적인 이익에 종속시킬 것을 말한 것이다. 그는 정치영역을 도덕윤리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구분하고 정치를 권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획득, 유지, 팽창의 차원에서 고찰한 것이다.
<참고문헌>
마키아벨리, 강정인, 안선재 옮김(2003) 로마사 논고, 한길사
마키아벨리 니콜로, 강정인 옮김(2006) 군주론, 까치
시오노 나나미(2002)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한길사
곽차섭(1996) 마키아벨리즘과 근대 국가의 이념, 현상과 인식
강정인 편역(1996) 마키아벨리의 이해, 문학과 지성사
김영한(2002) 서양의 지적 운동, 지식산업사
권은혜, 덕에 대한 근대적 이해 - 르네상스에서 18세기 까지, 서강대 대학원, 2002
  • 가격1,8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4.12.10
  • 저작시기201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5389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