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의 인식,일제해방기의 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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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역사의 인식,일제해방기의 역사인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식민사학
2. 민족주의사관
3. 신민족주의
체제 및 구성
내용의 요점
사학사적 의의
<참고문헌>

본문내용

상황에서 신민족주의사학은 소중한 역사경험이며, 방향제시로써 되씹어 볼 현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마. 손진태의 [한국민족사개론]
남창 손진태는 해방 후 신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한국민족사개론]을 간행하였고, [국사대요], [우리민족이 걸어온 길], [국사강화] 등을 저술하였다. 또한 [국사교육의 기본적 제문제], [국사교육 건설에 대한 구상 - 신민족주의 국사교육의 제창] 등을 통하여 국사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하였다.
체제 및 구성
남창은 지배계층 위주의 봉건적 사관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계급사관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신민족주의 사관을 확립하엿다. ‘계급의 생명은 짧고 민족의 생명은 길다’ 며 계급투쟁보다는 민족균등의 입장을 강조하였다.
[한국민족사개론]에서 남창은 한국의 역사를 민족사로 규정하고, 역사연구를 통해 민족을 발견하고자 한 그의 역사인식은 제목에 그대로 표현되었다. 여기에는 민족의 형성단계부터 통일신라대까지의 고대사만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체제 및 구성의 특징을 보면 첫째, 우리 민족이 공동생활과 공동의 역사생활을 통한 단일민족으로 민족적 친화와 단결, 자주독립의식이 다른 민족에 비해 훨씬 강한 민족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둘째, 시대구분은 왕실중심주의가 아닌 민족의 성장과정과 정치경제형태의 변화를 기준으로 하였다. ‘민족의 태동기’, ‘민족형성의 시초기’, ‘민족통일 추진기’, ‘민족결정기’,‘민족의식 완성기’, ‘민족의식 침체기’, ‘민족운동의 전개기, 민족사상의 폭발기’로 규정함.
셋째, 귀족주의와 민족주의 본질적으로 서로 용납할 수 없음을 민족적차원에서 비판, 구명하려 하였다. 그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을 독점하고 있는 지배계급의 각성을 요구하여, 신민족주의 사과의 핵심적 요소인 ‘계급평등’을 실현하고 하였다.
넷째, 민족사 발전의 동인을 대외적으로는 외민족과의 갈등에서 찾았다. 이에 따라 각 왕조의 대외관계사에 큰 비중을 두어 서술하였다.
다섯째, 역사연대를 서기(西紀)로 통일하였다. 저술 당시 연대표기를 단기(檀紀)로 통일했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볼 때,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의 요점
남창이 고대국가의 흥기와 멸망원인을 구명함으로써 얻고자 했던 것은 소수 특권계급의 지배로 인해 민족 내부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되며, 비록 평화시에도 민족 내부 정치세력의 분열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민족적 교훈이었다. 그는 역사적으로 전민족적 희생 위에 이루어진 고대의 전제적인 왕실 중심, 귀족전제정치를 비판하면서, 민족국가 건설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주권과 토지와 기타 경제적, 문화적 모든 권리를 민족 본위로 시정하여야 할 것을 주장한였다. 그래야만 비로서 민족 내부의 평등과 남녀평등의 이상사회가 실현될 것이라고 하였다.
사학사적 의의
남창은 구한말 민족운동을 민중의 감정에 호소한 센티멘탈리즘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으로 규정하였다. 이는 민족의식의 통제와 민족적 자부심을 조장하는 운동으로서, 당시 사회에서는 절대 필요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더 이상 센타멘탈리즘으로서는 민중이 호응하지 않으며, 민족의 사상적 통일 단결을 위해서는 종래이 계급관념을 근본으로부터 파괴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해방후 극한 좌우대립 상황을 극복하고 민주주의적 민족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지배계급과 민중이 평등한 사회의 건설을 강조한 새로운 역사해석이론인 신민족주의로 발전시킨 점에서 한국사학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그는 영미식 민주주의, 소련식 민주주의의 장단점을 가려서 우리 민족에게 적절하고 유리한 민주주의적 민족주의, 즉 신민족주의를 창조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신민족주의는 국제적으로는 모든 민족의 평등과 친화와 자주독립을 요청하고, 국내적으로는 모든 국민의 정치적.경제적, 교육적 균등을 요청한다고 하였다. 그는 농민. 상공어민 및 노예 등 피지배계급을 민중으로 규정하고 역사 주체자로서의 민중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리기 위해서 한국사를 왕실사나 귀족사가 아닌 한민족의 민족으로서의 생활사를 탐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민족사개론]은 이러한 민족전체의 균등한 행복을 추구하는 신민족주의 사관의 입장에서 서술된 역사서이다. 여기서 남창은 민족사를 통론하여, 지배자중심. 귀족중심 사회를 비판하고 우리 사회가 계급대립이 없는 단결된 민족적 민주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민족사의 정치적.경제적 형태와 민족균등의 발전을 중심으로 하여 통일신라를 민족결정기로 보는 독자적인 시대구분법을 시도하였다. 그러면서 삼국시대 이래 조선까지 1800여 년을 온전히 귀족지배 정치시대의 반복과정으로 이해하였다. 귀족사회의 특성을 권력구조의 변동이나 사회계급구조의 변화, 토지제도나 상공업과 같은 경제구조에 대한 종합적 구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배계급과 민중과의 갈등 내지 협조만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역사이해는 한국사의 주체적 발전을 무시하고 정체사관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을 우려도 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약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장하고자 한 것은 귀족지배정치가 근본적으로 반민족적이라는 것이다. 귀족계급은 민족의 희생위에 권력과 부력을 누리고 민중을 궁핍하게 함으로써, 국내계급의 단결을 방해하였고 빈번한 이민족침입을 초래했으며 급기야 멸망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남창은 왕조의 흥망 자체는 민족생활과 별개의 것이나, 그것이 민족에게 주는 영향은 교훈과 가장 직접적이고 중대하다고 여겼다. 그 흥망의 이유와 원인을 살펴서 다시는 그러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남창은 이념갈등을 지양하고 역사주체자로서의 민중이 발견과 계급단결을 통해서 민족국가의 건설방향을 찾고자 하였다.
<참고문헌>
진덕규외 5명, 《한길역사강좌3 한국현대사와 역사의식》, 1989, 한길사
김영범외 16명, 《한국민족 운동사 연구》, 2003, 나남출판
조동걸한영우박찬승 엮음,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下, 창작과비평사
신형식 저. 한국사학사 [조선상고사감],[한국민족사개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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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3.11
  • 저작시기2015.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58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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