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와논술E형]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조사 정리 후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 (샤를리에브도 Charlie Hebdo 테러사건과 논쟁,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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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와논술E형]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조사 정리 후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 (샤를리에브도 Charlie Hebdo 테러사건과 논쟁,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견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들을 조사하여 정리
 1.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
 2.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3. 표현의 자유

Ⅲ.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대한 나의 의견(표현의 자유에 대한 견해)

Ⅳ. 결 론

[참고 자료]

본문내용

, 영국, 독일 등 지배국에 따라서 다른 나라들로 구분이 되었으며, 서로 반목하고 싸우면서 영토를 빼앗기고 이주를 당했다.
그러다가 불모의 사막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미국까지 가세한 서방의 중동 침탈과 지배는 더 견고해졌다. 냉전의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싸움에 휘말려 더욱 복잡해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적대적이며 감정적인 비극도 여기서 탄생하였고, 애초에 서방에 의해서 만들어진 국가였기에 그 국경이 무의미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오늘날 갑자기 나타난 이슬람의 ‘IS’가 더 이상 세계지도에 그려진 중동의 지도는 그 의미가 없을 정도로 급격히 팽창할 수 있었다.
미국과 유럽은 말로는 민주화, 그리고 인권을 앞세우지만 자기 영향력하의 국가에는 왕위세습이건 인권문제건 침묵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동에서 서방의 지배에 위협적인 국가(리비아, 이라크, 이란, IS 등)에는 무자비한 철퇴를 가하고 있다.(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미국이 명분으로 내세운 ‘대량살상 무기’는 전쟁에서 이긴 미국의 대대적인 수색에도 불구하고, 발견되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침탈과 지배과정을 통해서 공존한 전제적 왕권, 특권적 귀족들의 지배구조는 중동의 일반 민중들의 생활의 민주적인 발전을 왜곡하였다.
그리고 제국주의에 반대를 하는 민족주의적 사상은 봉건적 사상에 머물러있는 교조주의적 이슬람과 힘을 합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인권 향상과 민주화로 나가야 할 이슬람의 종교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와는 반대로 과거로 회귀하고 마는 비극을 낳고 만다.(이란이 제국주의 축출에 성공한 혁명을 달성한 후에도 인권문제는 개선이 되지 않았으며, 현 IS내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억압을 받고 노예제가 부활하는 등의 심각한 인권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이 발생을 하게 되었지만, 파리 시내 ‘샤를리 에브도’ 잡지사에서 행한 무고한 시민을 향한 테러는 엄연히 잔인무도한 폭력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테러를 유발한 정신적 테러, 즉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모독’ 또한 잔인무도한 폭력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피해자이며 가해자이다. 과거 식민지 지배를 통해서 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그들을 대우해야 할지의 고민도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폭력에는 그 원인과 결과가 있다. 결과만을 놓고 볼 때에 승자는 항시 강자의 몫이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유럽은 물질적 만족에 의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잊고, 이슬람을 대우 해왔다. 사랑의 전도대상이 아니라, 약탈의 대상이었다. 테러를 당한 현재는 돌이킬 수가 없는 유럽의 극우세력과 이슬람의 극우만이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하지만 사태의 본질을 되돌아보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사건이 이슬람에 대한 인종혐오증으로 발전될까 걱정스럽다.
이번에 “나는 샤를리다”, “나는 샤를 리가 아니다”, “자유다” 참... 말하나 가지고 장난들을 친다. 가진자들의 말장난에 대해 사람들은 자유의 표현이라고 한다.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자유였던가? 그들은 강자의 틀 안에서 약자를 해석하려는 버릇이 있었다.
약자는 언제나 적이 되고, 배척의 대상이 된다. 미국을 보면, 아직도 백인에게만 주어지는 자유가 있다. 한국에서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지는 자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사랑은 내가 피해를 봤을 때, 진정 빛을 발한다. 여유가 있고 힘이 있을 때 만 빛을 발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위선과 기만이다.
자유는 깨어 있는 자들의 엄청난 노력과 억압의 굴레에 대해서 대항하는 열매다.
가만히 있는 다면, 항시 역사는 강한자의 개념에서 해석이 되어 질 것이다.
Ⅳ. 결 론
이상으로 과제를 수행하였다.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여 ‘나는 샤를리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표현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자유에 대한 근원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논란을 넘어 해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자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권리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자유든지 무한정의 자유는 없다. 왜냐하면 나의 무한 자유가 타인에게는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 역시도 마찬가지이고, 이를 무한정으로 사용하다보면 누군가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표현의 자유로 표적이 된 사람은 인간답게 살 권리에 침해를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샤를리 에브도 만평으로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가 발생했고, 이슬람교 역시도 테러의 대상이 되어서 이슬람사원에 방화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서로를 파괴하는 참혹한 폭력이 악순환하여 반복되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표현의 자유에 한정해서 생각해 보면, 나는 표현의 자유가 그 한계를 벗어나서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85년에 한 영화 제작자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면서 유럽연합의 최고 법원인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를 한 사례가 있었다. 1994년 유럽인권재판소는 “모독이 극단적일 때, 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고 판결한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표현의 자유 보장은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무모하고 불필요하게 모욕적이어서 사회적 토론이라고 볼 수가 없는 표현은 절대적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모욕적으로, 충격적으로 증오를 자극하는 표현은 예리한 흉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참고 자료]
존 모리얼, 타마라 손 저, 이종훈 역, 신자들도 모르는 종교에 관한 50가지 오해(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휴, 2015
슬라보예 지젝 저, 배성민 역,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이슬람과 모더니티), 글항아리, 2015
전경옥 저, 풍자 자유의 언어 웃음의 정치(풍자 이미지로 본 근대 유럽의 역사), 책세상, 2015
르몽드(월간지) 편집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한국판), 르몽드(월간지), 2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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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4.03
  • 저작시기2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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