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과 통일로 본 독일의 현대 정치사(독일의 분단과 통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분단, 동서독 체제 경쟁과 분단의 고착화, 개혁과 변화, 통일과 국민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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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분단과 통일로 본 독일의 현대 정치사(독일의 분단과 통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분단, 동서독 체제 경쟁과 분단의 고착화, 개혁과 변화, 통일과 국민통합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분단과 통일로 본 독일의 현대 정치사

I.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분단

II. 동서독 체제 경쟁과 분단의 고착화

III. 개혁과 변화

IV. 통일과 국민통합

본문내용

침내 40여 년 동안 동독을 통치해 온 사회주의통일당을 항복시켰다.
1989년 10월 17일 당수인 호네커(Erich Honecker)가 모든 직위에서 물러
났고, 11월 9일 동서독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개방하였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을 개방하고 여행의 자유를 허락하면 그칠 줄 알았던
동독 국민의 저항은 장벽의 붕괴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오히려 더욱 거세
진 저항과 함께 동독인은 개혁에 대한 기존의 요구를 넘어 통일을 요구하
기 시작하였다. 동독 국민의 통일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표명된 후 이에 대
한 서독 정부의 반응은 신속하였다. 1989년 11월 28일 서독의 콜 수상은
'동독의 민주 정권의 수립'을 전제로 한 동서독 연방의 구성을 포함하는 소
위 '10개항 프로그램'을 제안하여 동독 국민의 통일 요구에 응답하였다.
통일 논의가 시작되는 동시에 동독의 정치 체제 또한 급격한 변화를 초
래하였다. 1989년 12월 초 동독의 의회인 국민의회(Volkskammer)는 헌법
개정을 통하여 사회주의통일당의 '영도적 지위' 조항을 삭제하였으며, 사회
주의통일당의 간부 당원이 전원 사퇴하여 사실상 사회주의통일당의 권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1989년 12월 8일 사회주의통일당은 당명을 사회주의통
일당/민주사회당(SEDDS)으로 변경하면서 회생을 시도하였으나, 그 가
능성은 점점 희박해졌다. 결국 사회주의통일당은 정부, 의회, 당, 대중 단체
등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통일이 기정 사실로 정해지자, 경제 문제가 중대한 이슈로 등장하게 되
었다. 사실 동독 국민이 통일을 주장한 데는 경제 문제가 크게 작용하였다.
즉, 동독 국민은 경제의 파탄 속에서 하루할리 통일되어 서독의 부(富)와
풍요로움을 누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동독 국민의 이러한 요구에 맞추어
체결된 것이 동서독 '화폐, 경제 및 사회통합에 관한 조약(Vertrag ter
die Wahrungs, Wirtschafts- und Sozialunion)'이었다. 이로써 동독에서는
그 동안 유지되어 오던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해체되고 대신 서독의 사회
적 시장경제 체제가 도입되었다. 서독과 동독 간의 화폐 경제 사회 통합
이후 동서독은 정치, 법률, 행정 등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통합에 관한 합
의를 이끌어 내었고 마침내 '통일조약(Einigungsvertrag)'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통일에 중요한 내부적 조건들은 해결되었다.
독일의 통일 문제는 동독 사회주의통일당의 몰락, 동서독 간의 통일조약
체결 등으로만 완전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독일의 통일 문제
는 전적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의 권한과
책임하에 있었지, 독일 민족이 직접 거론할 사항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서
독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이후 동독에서는 연일 수십만
명의 군중이 거리로 나와 '우리는 한 민족(Wir sind ein Volk)'이라는 구
호 아래 통일을 요구하게 됨에 따라 그 동안 동독의 사태를 주시해 왔던 미
U, 소련, 영국, 프랑스 4개국 정부도 독일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표명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의 통일에 대한 전승 4개국 정부의 입장은 이들
각 국가와 독일과의 역사적 관계, 전후에 있었던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
정도, 그리고 이들 국가들이 세계 정치무대에서 차지하는 비중 정도 등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주변국의 상이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통일에 대한 독일 민족의 열망, 그리고 통일을 위한 서독 정치가의 외교적
노력으로 인하여 이들 국가들은 모두 결국 독일 민족의 자결권을 인정, 통
일을 수용하였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마침내 통일되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통일
이후에는 많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분단 40여 년 동안 존재
하였던 서로 다른 정치 경제 문화의 이질감으로서, 한순간의 제도 통합
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경제
적인 문제였다. 통일만 되면 풍성한 서구의 삶을 영위하리라고 생각하였던
구동독 국민들은 물론 통일과 함께 여러 형태의 분담금을 지불하는 등 상
당액을 구동독 지역에 쏟아 부어야 하는 구서독인들 모두 실망하였다. 또한
구동 서독 주민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차이로 인한 내면적 갈등은 통
일이 된 지 15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남아 있다. 아직까
지도 구동 서독 주민 간 '보이지 않는 벽'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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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5.07.11
  • 저작시기2015.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76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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