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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식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그 캐릭터의 감정이 관객의 마음에 고요이 스며들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바로 명배우다.
안소니 홉킨스는 바로 그런 명배우라고 생각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FBI요원이었던 스탈링은 어떤 연쇄사건의 수사를 맡게된다. 그 건은 여인들이 엽기적으로 살해당하는 연쇄적인 살인사건이었는데 그 범인을 ‘버팔로 빌’이라고 칭하게 된다. 이 사건은 실마리가 없어 미궁에 빠지게 되는데 이 사건의 실마리를 위해 스탈링은 감옥에 수감중인 한니발 렉터박사를 만나게 된다. 한니발 렉터는 정신과 의사로서 그에게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여 버팔로 빌을 잡게 될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편 버팔로 빌은 주의원의 딸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으키게 되고 렉터박사는 그에 대한 단서를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대가로 더 나은 환경에 대한 처우를 요구한다. 그 거래가 성사되는 도중 렉터박사는 방심을 틈타 도주한다.
스탈링은 지금까지의 정봐와 단서를 취합하여 결국 버팔로 빌의 거주지를 알아내는데에 성공하고 의원의 딸을 구출해내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렉터박사의 전화를 받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정말 인상깊었던 점은 한니발 렉터라는 캐릭터다. 위의 줄거리가 전개되는동안 한니발렉터의 비중이 그렇게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사건이 전개되는 프레임밖에 위치해있다. 단지, 그 전개되는 흐름 밖에서 사건을 관조하며 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으로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가진 연출력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명감독의 좋은 작품들이란 항상 장면과 장면이 물 흐르듯이 이어져서, 보는이에게 하여금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만든다.
그런 모습들은 마치 개연성 있는 일상의 연속을 보여주듯하여 관객들이 극에 몰입하는데 있어 빨려들 듯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라는 표현을 이런 작품에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어렸을적에는 영화를 볼 때 감독의 역량같은 것이 잘 보이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래도 머리도 크고 안목이 생겼는지 감독의 이런 면모들을 나도모르게 살펴보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생산자가 소비자를 대하는 최소의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어설픈 감독의 어설픈 영화는 확실히 부자연스러움과 장면과 장면의 개연성을 스스로 생각하며 보아야 한다. 그런 불편함은 극의 몰입을 방해하여 관객이 영화안으로 뛰어드는 것은 막아버린다.
그래서 이런 점들은 내가 영화를 볼 때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영화의 정신학적인 측면이다. 렉터박사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영화 내내 사람들의 심리의 기저에 깔린 무의식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움을 발휘한다. 그와 스탈링의 관계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표현되지만 렉터박사는 스탈링에게 상당한 호감과 호의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의 범죄적, 혹은 심리적인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영화에 등장하는 ‘양’의 의미는 무엇인가? 제목인 ‘양들의 침묵’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스탈링은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어린시절 목장에서 어린 양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해주려했지만 구해주지 못했다. 스탈리은 이것에 대한 죄책감이 트라우마로 형성되어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버팔로 빌에게 붙잡혀 있던 의원의 딸이 양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양이 등장한 것은 그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상징으로 쓰인 것이라 추측해본다. 아마 영화에서 이 ‘양’이 상징하는 좀 더 디테일하고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심리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에 이런 표면적인 것밖엔 파악하지 못해 안타까운 일이다.
마지막에서, 결국 스탈링은 버팔로 빌 사건을 해결하고 렉터박사에게 전화를 받는다. “ 클라리스, 양들이 울음소리는 멈추었나?” 아마 이것이 심리적인 트라우마의 회복을 암시하는 대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물론 나의 추측이라 자신있게 말하진 못한다.
이 영화의 제작배경에는 아무래도 심리학적인 배경이 깔려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런 상징적인 은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며 영화를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여흥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될 것같다
안소니 홉킨스는 바로 그런 명배우라고 생각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FBI요원이었던 스탈링은 어떤 연쇄사건의 수사를 맡게된다. 그 건은 여인들이 엽기적으로 살해당하는 연쇄적인 살인사건이었는데 그 범인을 ‘버팔로 빌’이라고 칭하게 된다. 이 사건은 실마리가 없어 미궁에 빠지게 되는데 이 사건의 실마리를 위해 스탈링은 감옥에 수감중인 한니발 렉터박사를 만나게 된다. 한니발 렉터는 정신과 의사로서 그에게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여 버팔로 빌을 잡게 될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편 버팔로 빌은 주의원의 딸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으키게 되고 렉터박사는 그에 대한 단서를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대가로 더 나은 환경에 대한 처우를 요구한다. 그 거래가 성사되는 도중 렉터박사는 방심을 틈타 도주한다.
스탈링은 지금까지의 정봐와 단서를 취합하여 결국 버팔로 빌의 거주지를 알아내는데에 성공하고 의원의 딸을 구출해내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렉터박사의 전화를 받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정말 인상깊었던 점은 한니발 렉터라는 캐릭터다. 위의 줄거리가 전개되는동안 한니발렉터의 비중이 그렇게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사건이 전개되는 프레임밖에 위치해있다. 단지, 그 전개되는 흐름 밖에서 사건을 관조하며 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으로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가진 연출력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명감독의 좋은 작품들이란 항상 장면과 장면이 물 흐르듯이 이어져서, 보는이에게 하여금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만든다.
그런 모습들은 마치 개연성 있는 일상의 연속을 보여주듯하여 관객들이 극에 몰입하는데 있어 빨려들 듯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라는 표현을 이런 작품에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어렸을적에는 영화를 볼 때 감독의 역량같은 것이 잘 보이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래도 머리도 크고 안목이 생겼는지 감독의 이런 면모들을 나도모르게 살펴보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생산자가 소비자를 대하는 최소의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어설픈 감독의 어설픈 영화는 확실히 부자연스러움과 장면과 장면의 개연성을 스스로 생각하며 보아야 한다. 그런 불편함은 극의 몰입을 방해하여 관객이 영화안으로 뛰어드는 것은 막아버린다.
그래서 이런 점들은 내가 영화를 볼 때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영화의 정신학적인 측면이다. 렉터박사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영화 내내 사람들의 심리의 기저에 깔린 무의식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움을 발휘한다. 그와 스탈링의 관계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표현되지만 렉터박사는 스탈링에게 상당한 호감과 호의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의 범죄적, 혹은 심리적인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영화에 등장하는 ‘양’의 의미는 무엇인가? 제목인 ‘양들의 침묵’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스탈링은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어린시절 목장에서 어린 양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해주려했지만 구해주지 못했다. 스탈리은 이것에 대한 죄책감이 트라우마로 형성되어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버팔로 빌에게 붙잡혀 있던 의원의 딸이 양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양이 등장한 것은 그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상징으로 쓰인 것이라 추측해본다. 아마 영화에서 이 ‘양’이 상징하는 좀 더 디테일하고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심리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에 이런 표면적인 것밖엔 파악하지 못해 안타까운 일이다.
마지막에서, 결국 스탈링은 버팔로 빌 사건을 해결하고 렉터박사에게 전화를 받는다. “ 클라리스, 양들이 울음소리는 멈추었나?” 아마 이것이 심리적인 트라우마의 회복을 암시하는 대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물론 나의 추측이라 자신있게 말하진 못한다.
이 영화의 제작배경에는 아무래도 심리학적인 배경이 깔려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런 상징적인 은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며 영화를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여흥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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