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체제의 유럽과 아시아 분할과정에 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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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얄타체제의 유럽과 아시아 분할과정에 대한 분석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Ⅰ. 3국의 협상
1. 문제 제기
2. 연구 목적
Ⅱ. 분할과정
1. 전시 분할과정
2. 전후 분할과정
3. 영국, 미국, 소련 - 삼국의 입장
Ⅲ. 분할 내용
1. 유럽
1) 독일 전후처리문제
2) 폴란드의 영토분할
3) 희생당한 체코슬로바키아
4)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관계
5) 논의와 분석
2. 아시아
1) 한국의 분할내용
2) 일본 : 미국의 원폭투하
3) 중국 공산화
4) 베트남 정복전쟁
Ⅳ. 논의와 분석
1. 분할이 가져온 영향
Ⅴ. 결론도출
-출처

본문내용

일되었지만 베트남도 북위 17도 선을 경계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분단되었고, 중국은 여전히 중국과 대만으로 나뉘어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중도에서 두 세력이 충돌하는 바람에 원치 않는 분단을 맞게 되었다. 분단된 나라들 중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1950년의 한국전쟁과 1960년 베트남전쟁은 얄타체제의 분할이 가져온 큰 비극이었다.
3) 또 다른 식민지화
소련 지배하의 위성국가들은 식민지 국가와 같은 존재였다. 동유럽의 사회화는 소련의 군사력에 의한 반강제적 조치였고 1946년 5월에 있었던 체코슬로바키아 선거에서 공산당의 득표는 38%에 그쳤다. 공산당이 전쟁 전부터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매우 낮은 수치였고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이 공산주의체제를 원치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 많은 동 유럽인들은 자국의 정치체제나 이념에 대해 의견을 반영시킬 수 없었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의 주권을 빼앗았고 비밀경찰에 의한 공포정치를 통해 시민들을 위협하였다. 또한 동유럽 국가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엄격한 검열을 통해 문화적으로 획일성을 띄도록 하였다. 동유럽에서는 소련에 대해 저항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56년에 있었던 헝가리 학생-민중 봉기 1956년 10월 23일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 시민들은 복수정당제에 의한 총선거와 헝가리 주재 소련군의 철수, 표현과 사상의 자유, 정치범의 석방 등 16개의 항목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소련은 ‘소련 지배권으로 부터의 이탈’로 판단하고 전차 1000대와 군사 15만 명을 투입해 시민들이 세운 나지 정권을 힘으로 무너뜨렸다.
였다. 거리로 뛰쳐나온 헝가리 인들은 소련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를 펼쳐보였으나 소련은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반항하는 자는 누구든 죽였다.
4) 경제발전의 저해
1947년 미국이 마셜플랜을 발표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그것을 수락할 것을 결정하고 폴란드도 동요를 보였다. 그러나 소련은 두 나라에 압력을 가해 그 수락을 단념시키고 9월 동유럽과 프랑스·이탈리아 공산당대표를 폴란드에 집합시켜 코민포름을 결성했다. 경제 원조를 받지 못하게 된 동독과 동유럽 국가들은 스스로의 역량으로 전후 복구를 해야 했고, 경제발전도 저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공산주의체제의 특성상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기에 소련을 비롯한 위성국들은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경제발전 속도가 더디거나 제대로 경제를 발전시키지도 못했다. 한국 분단당시 북한의 공업은 남한에 비해 많이 발달되어 있던 상태였으나 현재 북한은 현재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며 수많은 북한 인민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북한은 90년 대 이후 기아지수가 나라로 세계 2위에 선정되었다. - 세계식량정책연구소(IFPRI)
노동당 최고 간부출신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황장엽씨는 1994년에 북한에 있었던 심각한 자연재해이후 1995년에
는 50만 명이 아사하였고 1996까지는 100만 명이 아사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Ⅴ. 결론도출
지금까지 얄타체제하 세계분할과정에 관한 논의 및 분석을 통해 위 체제 및 결과를 검토해 보았다. 얄타회담의 본 취지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헤게모니를 인정하며 세계평화를 위해 형성된 해방된 유럽의 선언이었으나 실질적으로 두 강대국의 영토 분할을 위한 체제에 불과했다. 그러한 과정은 제1차 대전 이후부터 지속되었던 ‘냉전’을 표면화시키기에 충분했으며 또한 그 당시 미국과 소련의 영토획득을 위한 경쟁은 여러 약소국들의 분단 및 식민화를 초래하였다. 이는 세계열강의 무분별한 분할이 낳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동유럽에 위치했던 위성국가들은 소련에게 식민지와 같은 존재였으며 아시아권의 베트남, 중국, 한반도 등 여러 국가들은 주권, 주체성을 상실한 채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다. 이와 같이, 세계평화 및 전후 국제사회의 안정된 분위기 조성이라는 허구적 명분하에 자행되었던 무분별한 영토분할이 세계 여러 국가들에 끼친 많은 피해를 고려해보았을 때 이 체제가 과연 바람직했는지는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이며, 따라서 우리는 얄타체제를 비판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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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국공합작 성립 시기 중국공산당과 코민테른의 관계 第二次國共合作的成立時期中國共産黨與共産國際的關係 박정현 저 pp. 135~162 (28 pages)
중국공산화과정이 주는 교훈 나창주 저 pp. 145~157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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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11.14
  • 저작시기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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