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화과정 중에 나타난 사무라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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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화과정 중에 나타난 사무라이 정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 사무라이 계층의 성립과 정착
사무라이와 일본의 근대화
일본무사도의 계보
▶ 참고도서

본문내용

몰락한 사무라이가 직접적으로 民을 대하고 지도하는 직업을 가짐으로 인해 그들의 사상은 근대 일본인의 사상의 뿌리가 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은 군국주의 국가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사무라이적인 사상은 패전 후의 일본을 재건하는 데에도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위와 같이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사무라이와 일본의 근대화의 관련성을 발견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사무라이가 일본 근대화 과정의 각 단계를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근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무라이라는 계층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일본무사도의 계보
金 素 雲
무사도, 뿌리깊은 생활도인 일본의 무사도는 명분상으로 메이지유신과 때를 같이 해서 종지부를 찍은것으로 되어있다.
봉건체제가 무너지고 이른바 폐번치현으로 정치경제가 바뀌면서 사무라이의 트레이드 마크인 대도(허리에 꽂는 일본도)가 금지되고 무사계급의 의무요 특권이던 아다우찌(복수)마저 국법으로 금지되어, 사무라이는 역사소설이나 시대극의 무대가 아니고는 구경할수가 없게끔 되었다.
사무라이가 없어지면 거기 따라 무사도도 자취를 감추는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실은 무사없는 일본에 무사도만은 여전히 그들의 생활감정속에 계승되어 왔다. 인격도야의 도표이면서도 서양의 기사도나 신라시대의 우리네 화랑도와는 의미를 달리하는것이 일본의 무사도이다. 기사도나 화랑도는 어느계급 어느연령층을 중심으로 한것이지만, 일본의 무사도는 농공상의 일반 서민층을 제외하고는 신분의 고하나 연령에 구애됨이 없이 사무라이전체의 정신윤리에 직결된 광범위하고도 뿌리깊은 생활도의 이기때문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예화 하나가 [목근통신]에 실려있다.
떡을 훔쳐 먹었다는 누명을 쓴 제어린자식의 배를 잘라 결백을 입증한후 떡장수는 같은 칼로 죽이고 저마저 할복자살해 버린 낭인의 이야기다.(목근통신-하가쿠레 일화-) 유명한 하가쿠레에 있는 이일화는 일본국민성의 일면을 설명한 대목이지만, 이런 살벌하고도 피비린내나는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무사도가 결코 특권지배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수 있다.
" 내아들은 사무라이의 자식"이라는 한마디는 무사도의 기개와 긍지가 무위무록의 일개 낭인에게까지 뿌리깊게 박혀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메이지천황의 뒤를 따라 순사한 노기(乃木)대장은 겉모양으로 보아서는 가장 군인답지 않은 군인이었다. 왜구수신. 검소한 생활에 한시를 읊으면서 러일전쟁의 승리자로 개선했을때도 말위에 초연히 앉아 의기양양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군인답지 않으면서도 가장 고무사적 풍모를 갖추었던 그런 인물이니 만큼 세인의 경모가 두터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려니와, 그의 자결이 옛날식 그대로의 '셋뿌쿠(할복)였다는 점이 일본국민의 감동과 숭앙을 한결 더 크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만일에 그가 수면제나 권총으로 자살했던들 일본국민의 그에 대한 이미지는 적지않게 달라 졌을 것이다.
또 하난 적어도 그는 개화기에 독일에 유학해서 신시대의 사상과 풍조를 몸소 체득한 인물인데다 메이지 말기는 구미의 문물이 조수처럼 밀려들어와 일본이 받아들인 새 문명 새문화의 터전이 어느 정도 굳어진 시기이다. 그런데도 노기대장의 자결순사라는 이전 근대적인 충성을 일본 국민중 누구하나 비판적인 눈으로 본 사람은 없었다. 무사가 건재하던 시절의 그 무사도적 기풍과 그 기풍을 흠모하고 경애하는 국민대중의 기호는 유신에서 40여년이 지났어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던 셈이다. 거기서 60년이 또 지나 우국지사 미시마 유키오가 일본에 탄생했다. 미시마의 경우는 그가 유능한 문학인이었다는 점에서 단순치 않은 갖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잇지만, 어느 모로 보아도 의젓한 근대국가요, 동양에서 으뜸가는 선진국이라고 할 일본이, 일면에서는 미시마가 취한 할복자살이란 끔찍한 행동에 경악과 비판의 화살을 겨누면서도 또 하나의 면에서는 마치 순국의 영웅이나 떠받들듯 찬탄과 경앙을 아끼지 않는것은 흥미 깊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미시마의 이번사건이 메이지 시대에 일어났더라면 구단 야스쿠니 신사앞에 세워진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은 미시마의 그것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를일이다
▶ 참고도서
▷ '일본의 역사',이노우에기오시 著, 서종만 譯, 이론과 실천社(1989)
▷ '日本의 歷史', 민두기 編著, 지식산업사(1976)
▷ '日本近代史', 피터 두우스 著, 김용덕 譯, 지식산업사(1997)
▷ '일본근현대사', W.G. 비즐리 著, 장인성 譯, 지식산업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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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5.12.21
  • 저작시기201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9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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