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racism 와 인종차별주의,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인종주의와 인종주의개조론, 인종주의와 영국, 인종주의와 일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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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종주의racism 와 인종차별주의,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인종주의와 인종주의개조론, 인종주의와 영국, 인종주의와 일본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주의

Ⅲ.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Ⅳ. 인종주의와 인종주의개조론
1. 한말의 인종주의적 현실인식
2. 일제하의 인종론적 개조론

Ⅴ. 인종주의와 영국

Ⅵ. 인종주의와 일본

참고문헌

본문내용

우월한 인종들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일본인들은 ‘지력, 금융상의 능력, 체력, 그리고 다른 모든 면에서 서양 사람들에게 뒤떨어진다.’ 서양인의 두개골 모양이 그들의 우월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생리학적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다른 종류의 인종론이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각 종족의 근대화의 능력을 평가 기준으로 하는 인종론이었다. 이러한 인종론에 근거해서 일본인들은 이 세상을 ‘문명권’과 ‘비문명권’으로 나누어 자기들을 인접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분리하는 문화적 계서제를 만들어내었다.
문제는 영국과 달리 일본은 자신과 종속민과 사이에서 피부색은 물론 인종적 차이와 문명의 차이를 크게 강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일본 민족과 조선 민족의 과거, 문화, 그리고 인종적 유산의 공유를 알고 있었고,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내지인과 조선인은 동일 민족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선조가 같다’거나 ‘우리 일본인의 많은 수가 조선에서 이주해 온 것’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히 인정되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을 다른 아시아 근린국들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매우 이상한 인종론도 제기되었다. 타구치 유키치와 다케고시 요사부로 같은 문명과 계몽의 선전가들은 일본인들이 서양 문명의 요소들을 너무나 쉽고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곧 ‘일본인이 아리안족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된다’는 억지를 폈다. 일본인들은 중국인이나 다른 아시아인들에 비해 ‘지적으로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유럽인이나 미국인들과 관련 있는 게 틀림없다’는 주장이었다. 시라토리 같은 국수주의 학자들도 일본이 아시아 대륙에서 ‘인종상으로 완전히 고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역사상으로도 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비할 바 없어서 지나나 인도, 이집트 등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며 일본을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분리시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조선인과 일본인이 얼핏보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의 외양이 비슷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외양상의 유사함을 넘어서는 차이를 발견해야 하였다. 영국인들이 ‘하얀 검둥이’ ‘하얀 침팬지’의 이미지로서의 아일랜드인을 만들어 내었듯이 일본인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멍청해 보이고, 입은 열려있고 눈에는 총기가 없으며 무언가 모자라는 것처럼 보이는’ 조선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옷을 잘 입은 아이누’, ‘두발로 서서 걷는 원숭이’라고 비하해서 불렀으며, 조선인은 ‘더럽고, 게으르고, 무지하고 비위생적이고, 냄새나고, 심한 육체노동에는 적합하지만 복잡한 과제를 행할 능력은 없으며, 복종적이고, 따라서 어린애로 다루어져야 하는’ 열등 인간이었다. 역사적으로 조선인은 ‘글러먹은 민족’이고 ‘놀기 좋아하고, 게으름이 습속이 되어 있고, 혐오스런 풍속습관을 가진 민족’으로 진단되었다.
그렇게 가깝고도 비슷한 일본 민족과 조선 민족이 그렇게 멀고도 다를 수가 있을까의 또 다른 해답은 조선인들이 그 동안 잘못 통치되어 왔다는 것에서 찾아졌다. 일본인들은 일본의 근대성을 기준으로 한 비대칭적 비교를 통해 조선의 후진성을 확인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선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조선인이 덜 ‘문명화’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들의 제도와 관습을 고치고 혹은 일본의 정치적 통제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문명화의 사명에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지배가 영제국처럼 좋은 정부를 제공한다는 구실이 사용되었다. 조선 사람은 아프리카 노예나 인도의 최하위 천민처럼 억압에 대해 저항할 방법이 없으며 어떠한 공적 생활의 경험도 없기 때문에 조선인에게는 공적 정신 혹은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주장되었다. 이러한 무력한 조선인의 이미지를 이용한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였다. 이토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조선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경멸을 표현하지 않고 조선인은 일본인에 비해 열등하지 않으며 육체적, 정신적 능력에서 중국인보다 못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문제는 국익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엘리트의 부패와 후진성에 있기 때문에 급선무는 이들의 부패와 후진성을 싹쓸이하는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공적인 발언과는 달리 그는 사적으로는 조선인에 대해 매우 권위주의적이었고 멸시감을 가지고 대하였다. 그는 야마토 인종이 인류 보편적 흥망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는 없으며 다른 민족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무시하면 우리 나라의 멸망은 뻔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정당한 권리를 가진 다른 민족’은 서양에 국한되었다. 그는 서양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조심하였지만 조선과 같은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교활함을 보였다.
인종적 유사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종속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식민지배를 정당화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는 ‘공동사회’의 건설을 정당화하면서 동시에 결합될 사람의 차이점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을 낳았고, 특유의 동화정책에서 그 해결책을 찾았다. 흔히 일본의 동화정책은 프랑스제국의 동화정책을 따른 것으로 이해되지만 일본의 동화정책은 프랑스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동양적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었다. 원래 동화주의의 배경에는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인 자연법사상과 계몽주의의 인간관이 있었다. 인간에게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일보편의 진리나 자연법을 감지할 수 있으며, 유일보편의 자연법의 기본에서 만인은 평등하며 사람들간의 격차는 탄생이 아니라 교육과 환경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고였다. 이런 가운데서 계몽주의가 나타났고 이 사상에서 혁명과 인권선언만이 아니라 동화주의도 발생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김승우, 반유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기독교교육 모형, 연세대학교, 2011
박성진, 일제하 인종주의의 특성과 적용형태, 한국근현대사학회, 1996
박지향, 영국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의 비교 Ⅰ : 인종주의를 중심으로, 영국사학회, 1998
이종일, 다문화 교육을 위한 제도화된 인종주의 고찰, 한국사회교과교육학회, 2012
이정은, 일본의 강제병합과 문화적 인종주의,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 2010
함재봉, 한국의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 전통과현대,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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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12.25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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