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국가의이해 A형- Henry VIII, the Industrial Revolution, British East India Company- 헨리8세,산업혁명,영국의 동인도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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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어권국가의이해 A형- Henry VIII, the Industrial Revolution, British East India Company- 헨리8세,산업혁명,영국의 동인도회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영어권국가의이해 들어가기

2. Henry VIII (헨리 8세)
1) 헨리 8세의 생애
2) 잉글랜드의 종교개혁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 그리고 앤 불린과의 결혼)
3) 헨리 8세의 업적

3. The Industrial Revolution (산업혁명)
1) 산업혁명의 배경
2) 산업혁명의 과정
3) 산업혁명의 결과

4. British East India Company (영국의 동인도회사)
1) 영국의 동인도회사 설립의 배경
2) 동인도회사의 성격과 활동
3) 영국 동인도회사의 폐지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
당시 인도와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수입되는 후추로 유럽에서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는데, 이러한 인도의 향료 무역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1588년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와 싸워 이긴 이후, 향료무역에 종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영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해로를 통한 동양 약탈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바닷길을 개척하여 인도로 진출은 영국이 앞섰지만 해상무역은 네덜란드가 더욱 발달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영국의 해상 무역은 주로 약탈에 의존하였던 반면에, 네덜란드는 아시아와 체계적인 상업 거래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599년 런던 상인들은 네덜란드인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런던에서 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에서는 인도 무역에 초점을 맞춘 조직을 결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동인도회사이다. 영국 여왕 Elisabeth 1세는 1600년의 마지막 날에 동인도회사에 특허를 내주었고 희망봉에서 마젤란해협 사이의 동방지역의 무역 특허권을 독점적으로 하사하였다.
2) 동인도회사의 성격과 활동 조길태 <친디아 인사이드 : 인도와 영국 동인도회사2 수탈 행태-> 포스코경영연구소 Journal CHINDIA Plus Date 2009 Volume 39 Issue 0 Pages 54-55
영국 동인도회사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곳은 인도 본토가 아니고 향료가 많이 생산되는 인도네시아 북동쪽의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향료 군도였다. 백 년 전 인도 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가마가 향료를 들고 돌아가 60배의 이익을 남긴 후, 유럽인들은 향료를 얻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향료의 주산지였던 향료 군도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향료 군도는 이미 포르투갈에 뒤이어 홀란드의 지배권이 확립되어 있었고, 더욱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선 몇 척이 홀란드에 나포되고 상당수의 인명 피해를 본 후 향료 군도에 대한 관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영국 동인도회사는 향료 군도의 관심을 인도 본토로 돌렸는데, 넓은 영토를 가진 인도의 지배권을 확립한 동인도회사로서는 향료 군도 정복의 실패가 전화위복이 된 경우와 같았다.
인도 본토와 무역을 개시했을 때는 영국 상인에 의해서 가장 많이 팔리는 물품은 향료와 면직물이었다. 특히 인도의 면직물을 사기 위해서 영국 본토에서 빠져나가는 금괴의 양이 너무 커지면서 동인도회사의 무역 자체가 위험해 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영국으로서는 동양의 소비품 구매로 빠져나가는 금괴를 통한 심각한 국부 유출 때문에 영국에서는 동인도 무역의 무용론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그러나 금은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대외무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중상주의 이론가 토머스 문 등의 주장, 또 올리버 크롬웰이 중산층을 육성하고 해상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공포한 항해조례(1651)에 힘입어 영국의 동인도무역은 계속 될 수 있었다.
영국이 인도를 정복한 약 200년 간 지배하는 동안 가장 무차별적인 수탈이 일어난 시기는 동인도회사가 벵골 지방을 장악한 시점이었다. 영국이 플라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인도의 벵골(오늘의 방글라데시까지 포함)과 비하르 그리고 오리사 일부 지방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는 영국이 적극적으로 인도를 경영하겠다는 계기가 되었으며, 벵골지방뿐만 아니라 전 인도를 지배하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 이후 벵골 지방의 수탈이 매우 심각하여 영국의 산업혁명이 바로 이때 벵골 지방의 수탈 에서 비롯된 자본축적의 결과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3) 영국 동인도회사의 폐지 조길태 <친디아 인사이드 : 인도와 영국 동인도회사 3 -토착 면직물산업의 붕괴-> 포스코경영연구소 Journal CHINDIA Plus Date 2009 Volume 40 Issue 0 Pages 58-59
1793년의 특허법에서는 동인도회사의 독점이 인정되었으나 1813년의 특허법은 동인도회사의 인도 무역 독점권을 철폐해버리고 국인 개인에게 무역 활동을 개방하게 되면서, 1833년의 특허법에 따라 동인도회사는 무역 단체가 아닌 영국 왕실의 영향 아래 있는 행정기구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는 영국의 이익 창출을 위한 정책이었는데, 영국의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하나의 거대한 상품시장으로서 인도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영국의 생산업자들과 무역업자들의 의견 반영의 결과였다. 영국과 인도의 무역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는 물품은 면직물로 인도의 면직물은 세계 으뜸이었다. 인도의 질 좋은 면직물과 견직물은 영국에서 짠 직물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팔렸는데, 이에 대해 영국은 자국의 직물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인도의 면직물에 약 80%의 수입관세를 부과하였다.
이러던 중 18세기후반에 들어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기계의 발명으로 품질 좋고 값싼 직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인도의 면직물보다 영국에서 생산된 저렴하고 우수한 직물이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은 면직물의 원료인 인도의 목화를 영국으로 가져와 공장에서 값싸고 질 좋은 면직물을 생산하여 역으로 인도로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서 수 세기 동안 세계제일의 자리를 지켜 왔던 인도의 토착 면직물 산업은 더 이상의 가치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벵골을 장악한지 약 백년 후 세포이 반란이 발발하자 인도의 통치가 위태롭다고 판단한 영국 정부는 동인도회사를 폐지하고 인도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 참고문헌
김보원, 신현택 2016 『영어권국가의이해』 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
김종현 2006 『영국 산업혁명의 재조명』 서울대학교출판부
앨리슨 위어 2007『헨리 8세와 여인들 1,2』 박미영 역 , 루비박스
박지향 2012 『클래식 영국사』 김영사
지소철 2012 『역사의 터닝포인트 산업혁명』 북이십일아울북
유, 야난 <영국 동인도회사의 중·영(中·英) 무역에서의 사상(私商)의 역할> 부산대학교,[2012] [국내석사]
조길태 <친디아 인사이드 : 인도와 영국 동인도회사2 수탈 행태-> 포스코경영연구소 Journal CHINDIA Plus Date 2009 Volume 39 Issue 0 Pages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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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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