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학개론] 외국의 보육역사 - 프랑스(17세기부터 20세기 후반의 보육), 영국(보육시설, 부모와 놀이집단, 1960년대 이후부터 90년대까지), 미국(자선의 시기, 사회복지의 시기, 연방정부의 시기, 다양성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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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보육학개론] 외국의 보육역사 - 프랑스(17세기부터 20세기 후반의 보육), 영국(보육시설, 부모와 놀이집단, 1960년대 이후부터 90년대까지), 미국(자선의 시기, 사회복지의 시기, 연방정부의 시기, 다양성의 시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프랑스
1) 17세기 이전의 보육
2) 18세기의 보육
3) 19세기의 보육
4) 20세기 전반의 보육
5) 20세기 후반의 보육
2. 영국
1) 보육시설
2) 보모와 놀이집단
3) 1960년대 이후부터 90년대까지
3. 미국
1) 자선의 시기(1838~1900년대)
2) 사회복지의 시기(1920~40년대)
3) 연방정부의 시기(제2차 세계대전〜1970년대)
4) 다양성의 시기(1980년대 이후)
4. 일본

참고문헌

본문내용

자녀를 맡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에 이르러서 보육시설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연방정부의 기금으로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헤드 스타트 프로젝트(Head Start Project)를 전개하는 등 정부차원에서 보육책임을 맡고 보육서비스를 주도하게 되었다. 이것은 성인의 빈곤퇴치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이루어졌다.
헤드 스타트는 저소득층 유아를 위한 보상교육으로서 연방정부의 주도하에 종합적인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교육이 모든 아동에게 똑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공공 관심사로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특히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은 교육적 보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실현시켰으며, 여러 가지 연방 프로그램을 통하여 보육시설에 대한 공적 지원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아동에 대한 백악관 회의에서 미국인 가정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육시설 문제를 선정하였다. 19기년에 빈곤층 가정의 자녀와 장애아동 등 모든 연령이 형편에 따라 수업료를 내고 종합적이고 교육적인 보육시설에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종합아동발달법이 하원과 상원을 통과하였으나 닉슨의 거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 이후 1415개의 보육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지만 그 중 몇 개만이 통과되었다.
또한 연방정부의 지원(The Federal Interagency Day Care Requirements: FIDCR)으로 인해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보육에 대한 관심과 통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5년에 사회보호법이 제정됨에 따라 보육은 정부의 사회사업의 일부가 되었다. 여러 가지 법안의 제정으로 보육을 위한 정부기금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기금의 수혜대상은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머물렀으며 정부가 여론과 자본가들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1970년 이후 보육시설에 다니는 유아 수는 30% 이상 증가하였고, 2세 미만의 영아 수는 70%가 증가하였다. 이렇게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영유아의 수가 늘어난 것은 상업적 보육시설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4) 다양성의 시기(1980년대 이후)
1980년대에는 보육사업 분야에 새로운 변혁이 일어나 다시 주정부와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연방정부 대신 주정부가 보육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되고 이에 따라 주마다 보육에 대한 기금과 규제가 다양해졌다. 그리고 지역적 특성이 고려되면서 보육 프로그램이 가정과 유사하도록 규제를 받았다. 또한 부모들이 정부로부터 보육과 관련하여 세금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직장보육시설과 방과후 보육시설이 계속 증가하게 되었다. 결국 자선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던 보육은 정부차원의 사업으로 발전되었다가 다시 지역적인 주정부 책임의 사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4. 일본
일본의 보육제도는 명치시대(1868~1912년)인 1875년에 초등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이동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그들이 데려온 어린 동생을 돌보아주는 시설인 가코(Komori gakko)를 연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1889년에 근대화로 나타나기 시작한 방적 염색 견직공장에서 기혼여성들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공장 안에 직장보육시설을 개설하면서 보육시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또한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자선유치원이 설립되었는데, 이것도 실제로는 취업모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
내무부는 민생의 안정, 청소년 비행방지, 노동자 가정의 생활개선, 군인유족 보호 등의 목적으로 보육사업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민간보육시설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04년부터 보육시설의 이름을 '보육소’로 바꾸었으며, 러일전쟁 중에는 군수산업 분야에 여성노동력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정책과 보육소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대정시대(1912~26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도시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의 생활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1919년에 공립보육소가 설립되기 시작했고 농촌에는 농번기 보육소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소화시대(1926~89년)에는 세계공황이 극심할 때에 민생법의 일환으로 시민관에 보육소를 설치하였으며, 공립보육소에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였다. 1938년에는 복지부가 신설되어 아동국에서 아동보육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군국주의가 점차 확산되면서 국가를 위한 어린이로 키우기 위해 가정과 유치원 및 학교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치원과 보육시설을 일원화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실패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다시 많은 여성이 군수공장에 노동인력으로 흡수됨에 따라 보육시설이 급증하였으며 유치원도 전시보육시설로 전환하여 보육요구에 부응하였다.
전쟁 후에는 혼란과 피폐 속에서 궁핍한 생활 곤란자들을 위한 공공부조시설로 자리잡혀갔다. 1947년에 아동복지법이 제정되어 비로소 보육사업이 복지시설로 인정받기 시작하였으며, 유아의 보육을 위한 시설로 규정함으로써 제도적으로 유아의 교육을 위한 유치원과 구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전례 없이 공공자금이 대량 투입되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현재의 체제와 제도의 기틀이 마련되었던 시기라 볼 수 있다. 즉, 1958년에 소득에 따른 월 보육료의 슬라이딩제(sliding scale)의 산정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에 대한 체계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1965년에는 4세아와 5세아를 위한 보육지침을 마련함으로써 저소득층의 근로여성의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과 초등학교의 준비단계로서의 유치원으로 이원화하는 체제를 확고히 하였다. 1965년 이후부터 보육시설이 급증하게 되었으며, 소규모 보육시설 설치와 영아를 위한 특별보육대책이 제시되었다. 이어서 1974년에는 장애아 보육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었으며, 1981년에 와서는 근로형태의 다양화로 인한 보육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연장보육과 야간보육사업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었다.
참고문헌
노희연 저, 영아보육의 이해, 양성원 2016
김경희, 문혁준 외 저, 보육학개론, 창지사 2016
김연진, 이상희 외 저, 영유아 보육과정, 태영출판사 2015
정정옥 저, 예비 보육교사를 위한 보육학개론, 교육아카데미 2015
성미영, 김진경 외 저, 보육교사론, 학지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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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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