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문서평 - 근대 한국의 제당업과 설탕 소비문화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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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논문서평 - 근대 한국의 제당업과 설탕 소비문화의 변화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신생한국정부는 대응책을 취할 필요가 있
었다.
이승만 정권 내에서는 설탕 같은 소비재로 인한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크게 두 노선으로 나뉘었다. 먼저 1952년 상공부 장관처럼 설탕 같은 상품을 사치품이라고 보고 수입을 억제해야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이러한 입장과 반대로 소비를 억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산화시켜 소비를 장려해야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1951년 휴전회담이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이승만 정권은 미국에 휴전협정에 동의하는 대가로 국방을 위한 상호방위조약과 재건을 위한 경제 원조를 요구했다. 수 차례협상 끝에 미국의 지원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해방 후 미군정과 한국정부는 한국인의 미곡소비를 줄이고자 했다. 그 까닭은
첫째, 미국은 한국에서 식량부족으로 인해 사회가 불안정해져 공산주의가 발호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정부에게 경제원조를 받는 전제조건으로 양곡수집
및 배급제도 시행을 요구할 정도로 공권력을 동원해서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기를 원했다. 식량안정을 위해 미곡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비료 원조를 통해 증산책을 취하는 한편 미곡소비 줄이고 대신 다른 잡곡이나 부식으로 보완하는
수요 감소정책을 병행했다.
둘째, 미군과 주한 ECA(경제협조처)는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반공체제를 구상하면서 일제하에서 한국이 일본 식량공급기지역할을 했던 역할에 주목하였다. 전후 심각한 식량위기에 시달리는 일본의 경제안정을 위해 한국이 일본에 쌀을 수출하면 일본은 식량위기를 해소하고 한국은 무역적자를 개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셋째, 부수적 목표였지만 미곡수요를 줄임으로써 한국인의 미곡위주의 편중된 영양섭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전후 한국의 재건계획을 담은 네이산 보고서는 한국정부가 미곡대신 저렴한 보리, 감자, 콩과 같은 잡곡류 소비를 증가시키고, 과일과 야채 소비를 약간 상승시켜야한다고 했다. 심각한 단백질 결핍을 보충하기 위한 콩, 어류 섭취도 많이 증가시켜야한다고 권고했다.
넷째, 분식을 먹자고 했다. 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보다 더 활기있고 정력이 왕성하다면서 재래의 조선습관을 버리고 분식을 하면 조선 사람이 건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빵은 하루에 한번 만들어서 하루 종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연료나 노동력과 같은 물자절약이 된다고 보았다.
1959년에는 분식을 하는 것이 외화획득이 된다고 했다.
다섯째, 영양과 위생을 위주로 하자면서 영양 및 위생지식을 보급했다. 식생활 합리화의 목표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더 영양가 있게 위생적이고 간소하게 하여 항상 우리가족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타민이 많은 음식과 부족할 때 걸리는 병을 알려주거나, 행주를 뜨거운 물에 ‘비누’로 자주 빨고 삶아서 청결하게 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과거의 인습과 비위생적인 생활이 우리 민족에 습관화되었다면서 이를 타파하자고 주장했다.
여섯째, 생활을 간소화하자는 것이다. 정충량은 농촌여성의 경우 남성과 함께 생산노동에 종사하면서 가사노동까지 하기 때문에 이중삼중의 과업을 수행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농촌여성의 낭비를 막기 위해 식사를 따로 따로 여러 번 하는 일, 관혼상제의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자고 주장했다.
일곱째, 계획성 있게 차림표를 꾸며서 재료, 시간, 노력을 아껴야한다고 했다.
정부는 국민들이 쌀 소비를 줄여야하는 근거로 근대과학을 동원하기도 하고 애국심에도 호소하면서 생활개선운동을 추진했다.
농촌에 거주하는 여학생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자신이 처한 환경 사이에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구현되는 공간으로 도시를 동경하게 되었다. 아울러 학교에
서 설탕을 활용하는 법을 익힌 여학생은 교과서가 지닌 공적 권위에 입각해 장차
자신들이 실천해야할 요리법으로 받아들였다. ‘즐거운 가정’에 나타난 근대적인 생
활양식은 자신들이 지향해야할 이상적 가정생활이 되었다. 이들이 한 가정의 주부
가 되면서 잠재적 설탕수요는 현실적 수요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 결과 1950년대 의무교육을 받은 여성이 결혼을 해 주부가 되기 시작한 1960년
대 이후 설탕소비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한국사에서 설탕을 다룬 기존 연구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당업이라는 생산의 측면을 강조한 연구가 있다. 1950년대 삼백산업의 하나로 제분업, 방직업과 함께 제당업을 취급하면서 삼백산업이 미국 잉여농산물을
사용하였다고 가정하였다. 삼백산업으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국내 농공업간 연결을 단절시켜 국내경제가 왜곡되었다고 보았다.
둘째, 유통 측면에 집중한 무역사 연구가 수행된 바 있으나 물동량에 초점을 맞추어 생산과 소비 현상을 포괄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셋째, 소비 측면에 관심을 가진 생활사 연구가 있다.
이를 통하여 세계적인 설탕무역구조 속에서 각국의 설탕정책 및 제당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설탕가격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는지 그리고 제당업이 어떻게 육성되었는지를 규명했고, 설탕 가공식품이 산업화되는 과정을 추적해 보았으며, 소득이 낮은 식민지 조선에서 설탕소비의 사회적 의미를 고찰을 통하여, 근대 한국의 제당업과 설탕 소비문화의 변화에 대하여 잘 보여준 연구라고 생각한다.
이 연구를 통해 설탕소비가 한국에서 20세기 이후 광범하게 소비문화가 확산되는 과정을 조망할 수 있다. 근대화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서구적 소비문화를 보편화 시킨 상품이라는 설탕의 특성을 통해 한국인의 생활양식이 변화되는 과정을 고찰 할 수 있다.
설탕의 생산, 유통, 소비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민족차별, 한인 내부의 계급차이, 도시·농촌 간의 격차, 가족 내 여성차별과 같은 사회현상을 파악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세계적 무역 분업구조, 국가의 산업정책, 소비자의 요구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면서 근대 이후 개인의 식생활에서 단 맛이라는 쾌락적 요소가 증대되는 현상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오늘날 한국에서 생산 및 유통 등 산업변화와 개인의 소비변화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근대 한국의 제당업과 설탕 소비문화의 변화를 통하여, 앞으로의 설탕 소비문화에 대해서도 잘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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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3.31
  • 저작시기2016.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99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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