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의 사적전개와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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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의 사적전개와 대응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역사왜곡의 사적전개
Ⅰ. 제 1차 교과서 공격(1955~1981)
Ⅱ. 제 2차 교과서 공격 (1982~2000)
Ⅲ. 제 3차 교과서 공격 (2001~2010)

3. 역사왜곡의 대응
Ⅰ. 1960~70년대의 대응
Ⅱ. 1980~90년대의 대응
Ⅲ. 2000년대의 대응

4.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5. 결론

6. 참고문헌

본문내용

로 해소시키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례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리하여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전개된 역사대화의 사례에 관한 검토에 대한 연구와 수행되었다. 그리고 전시의 점령자와 피점령자의 사이에 관계에 대한 연구와 함께 식민지 지배국과 피식민국 사이의 대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2001년에 후쇼샤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문제가 제기되자 시민단체에서도 역사분쟁의 해소를 위핸 노력을 강화하였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84개의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등을 발족시켰고 일본에서는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워크 21’과 같은 NGO 및 역사교육자의회를 비롯한 학계와 교육계의 결속이 진행되었다.
4.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활동
2001년 4월의 후쇼샤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비롯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의 검정통과는 한·일간에 외교 갈등을 불러일으켜 드디어 그해 10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한일정상회담에서 ‘한일역사공동연구기구’를 설치할 것을 합의했다. 그리하여 2002년 3월 5일,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와 ‘한일역사공동연구지원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워원회는 한일 약국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 아래 역사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설치된 민관합동기구였다. 이 위원회는 ‘한일관계라에 대한 양국 간의 학설·해석의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는 분야를 학자·전문가 간에 논의하여, 학설·역사인식에 대해 공통점을 도출하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차이점은 차이점으로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상호 이해와 인식의 심화를 지향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제1기 한·일 역사공동연구2001년 4월,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발생을 계기로 양국의 역사 인식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2001년 10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역사공동연구에 합의하였으며, 2002년 3월에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2002년 3월부터 5월까지 고대사, 중세사, 근현대사 3개 분과회의를 통해 19개 주제에 대해 총 50여 차례 합동회의를 개최하였다. 2005년 3월에는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최종보고서의 초안을 교환하였는데, 이것으로 사실상의 제1기 공동연구를 종료하였으며, 공식적인 종료는 2005년 5월 31일이었다. 2005년 6월 1일 외교부·교육부 등 유관기관 홈페이지를 통해 최종보고서의 전체 내용을 공개하였다.
최종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참가 연구위원은 양측 각 11명이었으며, 한국 측은 별도의 연구협력자 91명이 참가하였다. 연구 주제는 총 19개로 고대사 3개, 중세사 3개, 근현대사 13개이었으며, 논문 수는 한국 측 26편, 일본 측 29편으로 총 55편이었다. 보고서의 규모는 A4 크기로 2,000페이지 이상이었으며, 보고서는 19개 주제별로 양국 연구자가 각각 작성한 논문을 병행 게재함으로써 역사 인식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한·일 역사공동연구는 양국 학자들이 처음으로 역사적인 쟁점사항에 관해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었다. 고대사, 중세사, 근현대사의 공동주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교과서 집필과정에 참고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2005년 6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제2기 역사공동연구’의 틀에 합의하여, 2007년 6월에 제2기 역사공동연구를 공식 출범하였다.
제2기 역사공동연구에서는 기존의 고대사, 중근세사, 근현대사 분과에 교과서위원회를 신설하여 모두 4개의 분과를 두었다. 2007년 6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한·일 합동 전체회의 5회, 분과별 합동회의 62회를 개최하였으며, 2009년 11월 28일 공동연구 결과보고서 초안을 상호 교환하였다. 그리고 2010년 3월 24일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 최종보고서를 공개하였다.
최종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참가 연구위원은 양측 각 17명이었는데, 위원 외 공동연구자로서 한국 측 13명, 일본 측 17명이 논문 집필에 참가하였다. 연구주제는 고대사 3개, 중근세사 3개, 근현대사 10개, 교과서 8개 등 총 24개였고, 논문수는 한국 측 28편, 일본 측 29편으로 총 57편이었으며, 총 분량은 A4 크기로 2,777페이지였다. 보고서는 24개 주제별로 양측 연구자가 각각 작성한 논문을 병행 게재함으로써 역사 인식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한·일간 역사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제1기 역사공동연구에 이어, 제2기 역사공동연구를 통해 한·일관계사에 대한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성과가 있었다. 아직 한·일 관계사에 대한 양국 위원간 인식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고대사, 중세사 분과에서는 임나일본부, 왜구 구성 문제 등 일부 쟁점사안에서 양측의 의견이 일치되는 등성과가 있었다.
5. 결론
그동안 한·일간의 역사분쟁을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역사분쟁을 성공적으로 해소시킨 유럽의 사례들을 주목받고 있다. 독일-프랑스, 독일-폴란드는 공동교과서 및 보조교재를 발간하는데 5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날 유럽통합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의 공유 아래 완전하지는 않지만 역사인식의 극복이라는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졌고, 아울러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바탕으로 후속세대들에게 상대국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자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 형성의 토대가 마련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그간 양국정부와 학자, 시민단체들의 노력이 상호이해와 공동번영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6. 참고문헌
▲ 전환기 일본 교과서문제의 제상, 경인문화사, 2010년
▲ 일본 교과서와 독도 위기, 독도본부 저, 우리영토 출판사 2012년
▲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이길상 저, 푸른숲 출판사 2009년
▲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관련 신문 기사 자료집, 일본 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교육인적자원부), 2001년
▲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에 나타난 역사 왜곡과 정치적 대중화에 관한 연구, 강기철 저, 논문2012년1월
▲ 본교과서 왜곡 자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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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4.14
  • 저작시기2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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