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앙의 혁신과 종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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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신앙의 혁신과 종교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근대 전후의 종교와 신앙
2. 근대화의 추친 및 경향
3. 신흥 종교의 출현과 종류
4. 신도의 국교화
5. 그리스도교의 전개
6. 불교의 근대화
7. 시사점(2줄)

본문내용

연다.
프로테스탄트는 1880년대에 들어가자, 자유민권운동의 고양과 연결되어 도시에서 농촌으로 퍼지고 기독교의 근대적인 시민 윤리는 사회 전체에 문화적, 사상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89년의 제국헌법 제정으로 기독교는 처음 교파신도, 불교와 더불어 공인 종교의 취급을 받게 된다.
청일, 러일전쟁의 시기로부터 프로테스탄트계의 사회운동이 발전하여, 1896년 야마무로 군페이(山室軍平, 1872~1940)는 일본구세군을 만들어 자본주의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악과의 싸움에 정진한다. 또 유니테리언의 아베 이소오(安部磯雄) 등은 기독교 사회주의를 넓혀 1912년, 일본 최초의 노동조합으로서 우애회(友愛會)가 결성된다.
프로테스탄트계의 사회운동은 일본 사회의 근대화에 눈부신 역할을 담당하나 프로테스탄트는 점차로 도시의 중간층, 지식층 종교로서 고정돼 간다. 한편, 가톨릭은 메이지 전기에 기리시탄의 교회 복귀에 힘을 얻어 나가사키현을 중심으로 발전한다. 메이지 후기부터는 외국의 수도회가 연이어서 일본으로 진출하여 교육, 사회사업, 의료 등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활동을 넓히나 사회적인 영향은 프로테스탄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태평양전쟁 중인 1942년, 일본은 로마법왕청(바티칸공국)에 공사를 파견해 외교 관계를 수립한다. 또 하리스토스정교회는 러일전쟁에 의한 반러시아 풍조로 발전을 방해받고 나아가 1917년의 러시아혁명으로 러시아 전도 단체로부터의 원조가 끊어진 탓도 있어 작은 세력에 그친다.
기독교는 일본 사회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하나 그 유일신 신앙과 근대적 개인주의의 윤리는 천황을 아라히토가미로 하고 충효의 국민도덕을 높이 외치는 근대 천황제 하에서 끊임없이 비난과 공격을 받고 국체와 서로 맞지 않는 ‘외교(外敎)’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프로테스탄트도 가톨릭도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국민 생활에 융합되어 크게 퍼질 수는 없었다. 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 시기까지는 종교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어 1941년, 프로테스탄트의 대부분이 통합되고 일본기독교단이 만들어진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도 격화되고, 도다이샤(台社, 모노미노탑), 플리머스브레드린파, 홀리니스파, 제7안식일교파 등이 병역을 거부하거나, 예수 재림신앙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국체에 반한다고 하여 탄압되고 순교자도 나온다.
6. 불교의 근대화
불교의 각 종파는 메이지 초기에 받은 타격으로부터 벗어나 국가신도의 바탕이자 호국불교로서 안정된 지보(地步)를 회복한다. 정부는 불교 각 종을 통제하고 새롭게 사원을 만드는 것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이 때문에 각 종이라 해도 봉건사회의 낡은 습속을 그대로 이어 사원의 대부분은 오로지 장례식과 선조 공양의 법요로, 단신도로 이어진다고 하는 불교의 습속화가 현저하게 된다. 국민의 태반은 집 종교로서 불교 각 종에 연결되어 있지만, 불교는 점차 국민 정신생활로부터 유리되어 간다. 대부분의 말사를 지배하는 본산 등의 대사원이나 현세 이익 신앙의 사원은 번영을 계속하나 불교 전체로서의 교화 활동은 활발하지 않아 승려의 대부분은 의례의 집행자 역할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각 종의 정체 속에서 에도시대 이래, 사령에 의존하기보다는 문도의 보시로 유지되어 온 진종과 재가 신자의 운동이 활발한 일련계 각 종에서는 승려와 신자 사이에 생생한 신앙이 이어져 간다.
진종의 혼간지파(本願寺派、西本願寺)와 오타니파(大谷派、東本願寺)는 1875년, 신교의 자유를 요구하여 대교원을 탈퇴하고 불교의 복권을 주도한다. 니시혼간지는 유럽에서 근대적인 대의제도를 취하는 등 다른 종보다 빨리 교단의 근대화에 임한다. 그러나 동서 혼간지 모두 왕법위본(王法爲本)의 봉건 교학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종교 귀족으로 화한법주를 절대화하는 오래된 체질을 계속 유지한다.
이에 대해서 청일전쟁 후, 퓨리턴의 운동을 모방한 후루카와 이사무(古河勇), 사카이노 고요(境野洋), 다카시마 베이호(高島米峰) 등이 불교청도동지회(佛敎淸徒同志會)를 만들어 니시혼간지교단을 비판하고 사회의 근대화를 주창한다. 히가시혼간지에서는 개혁 운동을 진행하고 있던 기요자와 만시(澤滿之, 1863~1903)가 정신주의를 주창하고 신란 사상을 이성과의 대결로 새로 해석하여 교단 내외에 커다란 사상적 영향을 준다. 기요자와의 사상은 마침내 진종의 근대 교학으로서 전개되나 교단에서는 이것을 이단으로 배척한다.
일련계에서는 다나카 지가쿠(田中智學, 1861~1939) 등에 의해서 근대 천황제 국가의 기초를 니치렌 사상에서 찾는 국가주의적인 교학이 주창되어 일련교학의 주류가 된다. 다나카는 일련종의 승려였으나 교단의 옛 방식에 반발하여 환속하고 재가 운동에 몸을 던져 1914년, 국주회(國柱會)를 만든다. 다나카는 순정 니치렌주의를 주창하고 제국헌법이야말로 왕불명합(王佛冥合)의 나타남이라 설파하여 파시즘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불교의 거의 대부분은 국책에 언제나 충실하고 근대 천황제 국가를 사상적으로 지탱하는 역할을 담당하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소수지만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불도가 이어서 나온다. 법화신앙에 입각하여 사회운동을 행하던 세노 오기로(妹尾義, 1889~1961)는 1931년, 신흥불교청년동맹을 만들어 기성 불교의 청산, 불타정신에 의한 공동사회의 실현 등을 주장하여 탄압을 받는다.
중일전쟁 중인 1940년, 종교단체법이 시행되어 불교는 13종 56파가 13종 28파로 통합되는 등 종교에 대한 통제가 더욱 심해진다. 불교계에서는 황도불교(皇道佛敎)가 주창되고 특히 진종과 일련종은 교의를 공격받는다. 진종에서는 신기불배(神祇不排)의 가르침이 있어 신사에 대한 존승의 염이 엷다고 비난받는다. 일련종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법화경의 화신이라고 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라 하고 나아가 니치렌의 유문 중에서 불법을 범한 천황을 비판한 부분 등을 삭제하게 한다. 또 본문법화종, 니치렌정종의 신자 단체의 창가교육학회(후의 창가학회) 등은 혹독한 탄압을 받는다.
7. 시사점
일본인을 알고 일본 사회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아는 것이 과제이다. 사상은 종교의 세계가 그 사상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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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4.14
  • 저작시기2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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