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의 역사 및 변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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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대문운동장의 역사 및 변천과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최초의 근대식 운동장 경성운동장
2. 해방, 다시 태어난 서울 운동장
3.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4. 문제점 제기
가. 동대문운동장의 의미
나. 동대문운동장 철거와 ddp 건설 과정의 문제점

Ⅴ. 결론

본문내용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넷째, 동대문운동장 철거 이후 건설된 DDP 자체의 문제점이다.
DDP는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들 20위 중 5위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가진다. 건축가들은 DDP를 ‘기억의 장소에 기억을 지워버리는 건축의 폭력’이라고 비판 한 바 있다. 우선 DDP는 동대문운동장의 정신을 전혀 계승하지 않고 있다. DDP는 단지 ‘디자인 서울(Design Seoul)’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스포츠적 요소는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외국인 디자이너가 DDP를 디자인했기에 디자인이 혁신적이기는 하나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공사 초기부터 있어왔다. 더불어 동대문운동장 철거도중 조선시대 군사 훈련원이었던 하도감 터와 성곽, 기타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DDP공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마땅히 공사를 중단한 후 충분한 토의를 통해 서울성곽과 하도감을 온전히 복원시키는 모양으로 공원을 조성했어야 했다. 그러나 일부를 복원시켰지만 DDP에 가려 잘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하도감 또한 본래 성곽 안에 있어야 했지만 DDP 디자인을 위해 성곽 밖으로 이전시키고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 터만 조성해 놓았다.
우리의 유적은 DDP 디자인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즉, 반쪽짜리 복원에 불과한 것이다.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동대문운동장을 완전히 철거까지 했다면, 철거도중 성곽과 유적이 발견되었을 때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게 성곽과 유적을 온전히, 그리고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복원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어 DDP 디자인을 대폭 수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외국인 디자이너의 혁신적 디자인을 앞세워 새로운 랜드마크 건설에 집중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대문 운동장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현재 DDP에는 과거 동대문 운동장의 조명탑 1대와 좁은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단순히 동대문운동장의 기억을 삭제해 버린 것에 대한 궁색한 위로로 보인다. 동대문 운동장의 의미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동대문 운동장의 상징적 구조물들, 즉 조명탑, 전광판, 관중석 의자 등을 예술가에게 제공했다면, 예술가들은 이것들을 ‘오브제’로 활용하여 개개의 기억의 조각들을 재구성해 동대문 운동장의 추억과 의미를 박제로라도 오래 보존시킬 작품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또한 서울시는 DDP를 건설하면서 지하철 역명 또한 '동대문 운동장'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는 새로운 랜드마크의 홍보를 위해 동대문 운동장의 기억을 아예 삭제해 버리려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옛 동대문운동장역’ 정도의 작명이었다면 동대문 운동장의 기억 보존에 기여했을 것이다.
Ⅴ. 결론
본 보고서는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 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이후, 광복 후 서울운동장으로 개보수 된 이후, 동대문운동장으로 개명된 후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기까지의 변천과정의 역사를 살펴보고 철거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작성되었다. 동대문운동장은 한국 근현대 체육의 산실이며,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혹자들은 서울 성곽을 깔고 앉은 일제의 잔재라고 비판하지만, 동대문운동장은 항일투쟁의 장이었으며, 근현대 한국스포츠의 요람이었고, 또 대중동원 행사 장소,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공존하는 집회장으로서도 기능하며 한국근현대사와 그 호흡을 같이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건설했다는 것을 확대해석하여 한국근현대의 문화, 체육유산을 완전히 철거시켜버린 것은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조선신궁봉찬경기대회에서 일제의 숨은 의도에 울분을 삼켰고, 그에 맞서 항일의 의지를 불태운 선조들의 의지를 간과한 우를 범한 것이다. 이제는 근 현대 한국스포츠의 기록이 담긴 기념물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동대문운동장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동대문 운동장의 기억과 정신을 보존시키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행하여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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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11.30
  • 저작시기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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