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에 대한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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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플라톤 국가에 대한 감상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호모 로기아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 하나를 강조하는 데 뒤따르는 이같은 부정적인 결과들을 보고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플라톤 식의 생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것에 대한 인정을 할 것을 주장했다.” 이예진, ‘국가 프로코콜 5’
다음은 엘리트주의가 양산하는 계급의식에 대해, 엘리트가 아닌 자의 변이다. 플라톤은 타고난 능력이 있어야 철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평범한 이들을 좌절시키는 이야기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는 자신의 분수에 맞는 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만족하는 것이다. 평범한 나의 처지를 놓고 보자면, 나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내가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하냐고. 나는 고정불변의 그릇같은 물체가 아닌데 왜 한정된 크기로 머물러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현재 이룬 것이 별볼일 없다는 평가를 인정하더라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원하는 바대로 성장하거나 발전하지 못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내일에 대한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거북이처럼 느리게 변화해온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여전히 도약을 꿈꾸는 내 모습이 틀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더 예리하고 빛나는 이성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꽤 뚫어 보며 던지는 철인의 평가일지라도 나는 그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개인의 욕심이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해친다면 주변에서 그의 질주를 저지해야하겠지만, 어떤 이의 꿈이 그를 보다 나은 자신으로 이끌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현재에 이루어놓은 것이 보잘 것 없더라도, 자신에 대한 비젼을 발견할 수 없는 자리에 머물도록 잡아두어서는 안된다. 도대체 어떤 이가 한 개인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꿈꾸는 자들에게 휘두르는 칼날이 앞선자, 혹은 탁월한 자의 책임감이나 권한이 아니라, 권력이자 자만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능력은 타고나는 것에 있지않고, 스스로에 대한 성실함과 겸손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것은 좀 더 새로운 관점에서 그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철인과 같은 탁월한 자는 꼭 필요하지만, 그의 냉철한 판단력은 칼날처럼 무자비할 수 있다.
* 모든 것이 법제화된 나라
소크라테스는 수호자의 교육에 있어 현실에서와 같이 시가교육부터 시작하기를 원하는데, 시가의 내용을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 감독해야 함을 주장한다. <국가>, 380c, 383c.
또 수호자의 양육에 대해서 그들에게 사유재산을 허용해서는 안되고 공동식사를 하며 공동으로 생활해야 함을 제안하며 이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위의 책, 416d-417b.
이 외에도 양성평등의 문제에서도 수호자들의 아내들에게 시가와 체육교육을 받도록 해야하며, 세 가지 파도 중 두 번째 파도인 처자공유의 문제에 대해 다룰 때에도 처자공유와 관련된 일련의 사항을 법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책, 457c.
이로써 이상국가의 수립은 일종의 법제화 과정이며 수호자에 대한 교육의 내용과 형식이 모두 이상국가의 수립자인 소크라테스와 아데이만토스, 글라우콘이 제정한 법과 법률에 의해 정해지고 있다. 이 외에도 법은 이상국가의 수립과정에서 건축과 조각, 사물의 제작과정을 포함한 문화 전반을 규율한다. 물론 그는 법을 통해 문화 전반을 규율하고자 했다기 보다는 수호자들의 영혼에 훌륭한 법질서가 배양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상국가에 필요한 법제화는 그가 10권의 에르이야기에서 철학이 필요한 주요한 이유로 ‘자유의지’를 어필하는 부분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의 이상국가를 위한 수호자 교육은 내게 거부감을 주는 요소를 상당부분 갖게 되는 것이다.
* 올바름이라는 올가미
정의에 대한 생시와 사후의 연계론과 결정주적인 모습에서 올가미에 걸린 듯 답답함을 느낀다. 다양한 종교에서 말하고 있듯, 신은 거대하고 알 수 없는 자연이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죽음을 필연적으로 맞아야하는 운명의 잔혹함과 우리가 화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능을 한다. 에르신화에서 들려주는 ‘올바름’에 대한 보상은 ‘신’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을 통제하는 기제(도구)가 아닐까? 올바른 삶이어야만 만족스러운 불멸을 선사받을 수 있다는 통제 말이다. 플라톤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르신화에서 상벌을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선택의 방향을 강제하는 듯이 보인다. 철학이 올바름으로 향하게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원인이 될 수 있고, 철인정치가 올바른 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임은 깊게 이해하였다. 그럼에도 나는 올바름이 강제를 통과하는 순간 빛을 잃는다고 본다. 따라서 올바름에 갇힌 철학은, 사유의 어머니와 같은 토대로서의 풍요로움은 사라지고 칼날같은 효용성으로 돌아선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5. 맺는말
플라톤의 <국가>는 올바름의 가치와 철학의 효용성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와 정리의 시간을 주었다. 흔히 인간의 내면에서, 그리고 그러한 인간이 모인 한 국가에서 드러나는 욕망과 미망의 다양한 형상들은 삶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흐리고 감춘다. 플라톤의 <국가>는 이러한 모습에 문답법이라는 놀라운 칼을 통해 정신을 해부하고 치료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되살리고자 한다. 그리고 이성을 최대화하는 체계적인 교육으로, 선의 이데아를 보고 내면화하게 이끄는 철학으로의 초대는, 2000년이 흐른 후 르네상스를 꽃피우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토대로서 우리의 지혜를 키우도록 돕는다.
물론 <국가>가 가진 정형화된 법제화와 이승뿐만 아니라 저승에서까지 따라와 목을 옥죄는 올바름의 경직화에 대해서는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새로운 관점으로 짓눌리 가치들을 해방시키고자 웅변해왔을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이 감상문에서, 반론을 제기하며 논박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역부족임을 겸허히 인정한다. 몇 마디의 사소한 첨언도, 플라톤의 다른 저서들 및 이후의 논의에 대한 지식없이는, 곧 흩어질 공중누각처럼 의미없는 짓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단단한 토대위에 나의 견해를 세워보고 싶은 욕심을 갖게 한 것만으로도 이번 <국가> 읽기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격려해 본다.
  • 가격1,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8.10.27
  • 저작시기201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6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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