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의 생애와 이후의 계보 [일제하 중산교 모습 교단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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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증산의 생애와 이후의 계보 [일제하 중산교 모습 교단의 분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아서 사후 대순진리회는 여러 갈래로 분열하게 된다.
조철제는 강일순의 종통과 유지를 계승하여 무극도-태극도 창설하였다. 조철제는 강일순을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몇 차례의 종교경험을 통해 강일순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박한경은 박한경은 태극도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조철제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하였다. 태극도에서 나와 1969년 서울중곡동에 대순진리회 창건하였다.이 단락은 ‘고병철, 한국종교교단연구2,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종교연구소, 190-193p\'를 참조하였다.
증산도는 종통의 맥이 증산 상제(1871~1909)-태모 고수부(고판례, 1880~1935)-안운산 종도사(1922~현재)-안경전 종정(1954~현재)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증산과 고수부를 신앙의 대상으로 한다. 구원의 통로는 조상선령신을 통해 상제님 태모님께 구원 받는다고 한다.증산도 공식 홈페이지(www.jsd.or.kr)
종도사 안운산은 충남 서산군 대산면에서 태어났는데 부친 안병욱은 열렬한 보천교인으로 안운산은 어렸을 때부터 증산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1974년에 안운산이 20여년에 걸친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새로운 종교운동을 하게 된 것을 이 교단의 시발점으로 잡는다. 그러나 보다 실질적으로는 1978년 봄부터 아들 안경전이 교화 원장으로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전개 하면서부터다. 안경전은 대전지역에서 교리강좌를 여러 차례 가졌으며 1980년에는 현재의 본부도장 자리에 성전을 건립하고 증산도장이라 이름 하여 매주 정기성회(定期聖會)를 가졌다. 1980년에 증산교 대학생 포교회를 조직하고 1981년에는 한양대학교에 처음으로 증산사상연구회라는 써클이 등록되는 것을 계기로 대학가에 포교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경희대학교, 서울대학교, 이화여대, 성균관대학교, 등을 필두로 매년 10여개 대학교에 폭발적으로 신앙 써클이 조직되어 대학의 젊은 지식인층에 증산교의 열풍을 일으켰다. 1984년부터 교명을 증산도라 하였다.한국민족종총람, 도서출판 한누리,1992, 615~616p
참고문헌
조경달, 민중과 유토피아, 역사비평사, 2009
안경전, 개벽 실제상황, 대원출판사, 2006
김탁, 증산 강일순, 한국학술정보, 2006
고병철 외, 한국종교교단연구2,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종교연구소, 2009
최준식, 한국종교사바로보기, 한울아카데미, 2007
대순종학교재연구회, 대순사상의 이해, 대진대학교 출판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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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0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7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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