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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 철학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생존 의미는 ‘행복의 추구’이다. 그러나 병원에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무슨 특별한 행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 만으로 감사하면서 더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에 일단 자기의사의 표현이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서 확보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일단 본인이 삶의 의지가 없다는 확실한 의사표현을 제시한 사람에게는 편안하게 눈감을 기회를 주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고 더 이상의 삶에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나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도 삶에 의욕이 없고, 의사들도 시간을 쪼개가며 그런 사람을 관리해야 하며,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아픔과 그들의 재정적 부담을 생각해보면 안락사를 허용치 않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락사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문제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환자들에 대한 문제이다. 말기 암 환자와 말기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만성질환의 말기환자 등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이후의 선택이 가능하다지만 뇌사환자나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사의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를 일반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뇌사상태의 사람들은 뇌가 이미 손상되어 사고조차 힘들기 때문에 이미 인간으로서의 기능이 끝났다고 생각되어 실제로도 많이 이루어지는 편이다. 다만 문제가 있는 부분은 일말의 회생가능성이 남아있는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3개월 이상 지속된 식물인간상태에서 회복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매우 드물다. 명확한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3개월 이상 된 상태를 지속식물상태라고 하며 거의 회복되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바라보며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들의 심적, 경제적 부담은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에 대한 처우 문제는 가족들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목숨에 대해 쉽게 말하는 내가 매우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생명은 신이 주신 것으로 인간 따위가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하는 나라에서 고통 속에서 인간답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약간 역설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안락사를 시행하게 된다면 이를 악용할 우려가 없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안락사 반대론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안락사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위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던가. 이것을 억제 할 수 있도록 악용한 사람들에게 강력한 법의 처벌을 가한다면, 그리고 인간의 목숨을 다루는 일인 만큼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조금 더 열심히 관리한다면 많은 부작용들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안락사는 인간들에게 인간의 권리를 찾아주는 일로서 용인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치판단의 문제인 안락사 논쟁은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끼리 논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환자의 권리를 찾는 일인만큼 그들의 의사에 따라, 그들을 책임지는 가족의 의사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맞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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