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집할 수도 있었습니다. 모두 타당한 일이긴 하지만 어느 것도 주님의 우선 순위에 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선 아버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거꾸로 여기저기 해매다니기에 바쁩니다. 술집으로 달려가거나 카운슬러부터 찾아가고 봅니다. 자신감을 키워주는 책을 읽거나 이웃에 사는 친구를 만납니다. 주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을 고백하는 그분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였습니다. p 194-195.
예수님보다 천 년 먼저 지상에 살았던 다윗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주님처럼 행동하라고 충고합니다. 다윗은 다른 양들한테 달려가는 대신 목자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해답은 시편 23편 4절에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할 만큼 평정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p 195.
생생한 언어
얼마전, 나는 사랑하는 친구의 마음에 이 약, 시편 23편을 발라주었습니다.
\"의사가 그러는데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창백한 얼굴. 입술은 바짝 말라붙고 갈라져 있었습니다. 헝겊이 살과 살 사이에 간신히 걸쳐 있는 낡은 우산처럼, 친구는 뼈와 가죽만 남은 꼴이었습니다. 암세포는 친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입맛도, 기력도, 살 힘도 다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무서운 암이라도 믿음만큼은 어쩌지 못했습니다.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다놓고 앉아서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소근소근 들려주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마치 말씀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듯, 친구는 곡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p. 19.
짐은 저마다 죄책감, 분노, 교만, 불신 따위의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온통 그런 짐들이었습니다. p 21.
더 심각한 것은 수중에 아무것도 지닌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글용 칼은 커녕 주머니칼도 없습니다. 성냥도 없고, 신호용 조명탄도 없고(청각), 음식도 없습니다(미각). 맨몸으로 함정에 빠졌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는 꼴입니다. p 114.
어떤 이들은, 아니 수많은 이들이 소망이 고갈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망의 가방은 정말 이상한 가방입니다. 다른 짐들과는 달리 아무리 채워도 차지 않습니다. 항상 텅 빈 상태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비어 있으면서도 무겁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지퍼를 열고 주머니들을 샅샅이 뒤져보십시오. 거구로 들고 탈탈 털어보십시오. 절망의 가방은 텅텅 비어 있습니다. p 116.
초대 손님들의 명단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성품입니다. 아집도 없고, 세력 다툼도 없습니다. 죄책감이라든가 수치심, 근심 따위는 잔칫집으로 들어가는 문간에서 다 걸러냈습니다. 질병, 죽음, 낙심 등은 페스트처럼 진작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파티에서는 지금 날마다 보는 것들을 하나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p 128.
두툼한 손으로는 수염 투성이 얼굴을 감쌉니다(촉각). 그가 악쓰는 소리(청각)가 예루살렘 밤거리에 길게 메아리칩니다. p 224.
궁금중 유발 => 배가 고파서였을까요? 어쩌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겠습니다. 배 속에서 쪼르륵 소리가(청각) 들리는 바람에 그물을 들고 나섰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한 마음을 견디다 못해서 그랬을 것니다. p 225.
총(청각)으로 살인을 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혀(미각)로는 어떨까요? 째려보는 눈초리(시각)는 어떨가요? 뒤에서 수군거리는(청각) 입방아로는 어떨까요? p 259.
원어 활용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첫 단어 \'여호와(야훼)\'를 설명하기 위해 15개의 어휘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p. 30.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말 알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걸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다윗은 \'야훼\'란 이름을 내어놓습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유대인이 아닌 우리들의 귀에는 다소 생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야훼\'란 다윗에겐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하나님을 통치하던 엘 샤다이(El Shaddai, 전능하신 하나님)라든가, 엘 엘리온(El Elyon,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엘 올람(El Olam, 영원하신 하나님) 다윗의 호칭을 다 제쳐두고 야훼란 이름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이름으로 표현할지는 완전히 다윗의 재량에 속하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모든 호칭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에 \'야훼\'를 쓰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왜 하필이며 야훼입니까? 야훼는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p 33-34.
\"나는 야훼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El Shaddai)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야훼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2-3).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나무 거룩해서 차마 인간의 입에 올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훼\'라는 이름을 부를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을 뜻하는 \'아도나이(Adonai)\'라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해야 할 일이 생기면 먼저 목욕을 했으며, 글을 쓴 뒤에는 펜을 분질러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훼\'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은 \'~이 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havah\'와 발음이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야훼(Yahweh)는 현제 시제(나는 ~이다)와 사역 시제(~이게 하다)가 조합된 명칭일지도 모릅니다. 그러 가전에 따르면 야훼라는 이름은 \'나는 존재한다\'와 \'존재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호칭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는 분이며 동시에 존재하게 하는 분인 것입니다. p 35-36.
질문 활용
지금 어떤 짐을 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시편을 통하여 짐을 가볍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까? 가볍게 길을 떠난 다는 것은 곧 어쩌다보니 지게 된 무거운 짐들을 하나님께 맡겨버린다는 뜻입니다.
왜 짐을 내려놓지 못합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가볍게 길을 나서보십시오. 힘에 부치게
예수님보다 천 년 먼저 지상에 살았던 다윗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주님처럼 행동하라고 충고합니다. 다윗은 다른 양들한테 달려가는 대신 목자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해답은 시편 23편 4절에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할 만큼 평정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p 195.
생생한 언어
얼마전, 나는 사랑하는 친구의 마음에 이 약, 시편 23편을 발라주었습니다.
\"의사가 그러는데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창백한 얼굴. 입술은 바짝 말라붙고 갈라져 있었습니다. 헝겊이 살과 살 사이에 간신히 걸쳐 있는 낡은 우산처럼, 친구는 뼈와 가죽만 남은 꼴이었습니다. 암세포는 친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입맛도, 기력도, 살 힘도 다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무서운 암이라도 믿음만큼은 어쩌지 못했습니다.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다놓고 앉아서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소근소근 들려주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마치 말씀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듯, 친구는 곡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p. 19.
짐은 저마다 죄책감, 분노, 교만, 불신 따위의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온통 그런 짐들이었습니다. p 21.
더 심각한 것은 수중에 아무것도 지닌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글용 칼은 커녕 주머니칼도 없습니다. 성냥도 없고, 신호용 조명탄도 없고(청각), 음식도 없습니다(미각). 맨몸으로 함정에 빠졌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는 꼴입니다. p 114.
어떤 이들은, 아니 수많은 이들이 소망이 고갈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망의 가방은 정말 이상한 가방입니다. 다른 짐들과는 달리 아무리 채워도 차지 않습니다. 항상 텅 빈 상태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비어 있으면서도 무겁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지퍼를 열고 주머니들을 샅샅이 뒤져보십시오. 거구로 들고 탈탈 털어보십시오. 절망의 가방은 텅텅 비어 있습니다. p 116.
초대 손님들의 명단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성품입니다. 아집도 없고, 세력 다툼도 없습니다. 죄책감이라든가 수치심, 근심 따위는 잔칫집으로 들어가는 문간에서 다 걸러냈습니다. 질병, 죽음, 낙심 등은 페스트처럼 진작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파티에서는 지금 날마다 보는 것들을 하나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p 128.
두툼한 손으로는 수염 투성이 얼굴을 감쌉니다(촉각). 그가 악쓰는 소리(청각)가 예루살렘 밤거리에 길게 메아리칩니다. p 224.
궁금중 유발 => 배가 고파서였을까요? 어쩌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겠습니다. 배 속에서 쪼르륵 소리가(청각) 들리는 바람에 그물을 들고 나섰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한 마음을 견디다 못해서 그랬을 것니다. p 225.
총(청각)으로 살인을 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혀(미각)로는 어떨까요? 째려보는 눈초리(시각)는 어떨가요? 뒤에서 수군거리는(청각) 입방아로는 어떨까요? p 259.
원어 활용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첫 단어 \'여호와(야훼)\'를 설명하기 위해 15개의 어휘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p. 30.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말 알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걸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다윗은 \'야훼\'란 이름을 내어놓습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유대인이 아닌 우리들의 귀에는 다소 생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야훼\'란 다윗에겐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하나님을 통치하던 엘 샤다이(El Shaddai, 전능하신 하나님)라든가, 엘 엘리온(El Elyon,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엘 올람(El Olam, 영원하신 하나님) 다윗의 호칭을 다 제쳐두고 야훼란 이름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이름으로 표현할지는 완전히 다윗의 재량에 속하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모든 호칭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에 \'야훼\'를 쓰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왜 하필이며 야훼입니까? 야훼는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p 33-34.
\"나는 야훼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El Shaddai)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야훼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2-3).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나무 거룩해서 차마 인간의 입에 올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훼\'라는 이름을 부를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을 뜻하는 \'아도나이(Adonai)\'라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해야 할 일이 생기면 먼저 목욕을 했으며, 글을 쓴 뒤에는 펜을 분질러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훼\'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은 \'~이 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havah\'와 발음이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야훼(Yahweh)는 현제 시제(나는 ~이다)와 사역 시제(~이게 하다)가 조합된 명칭일지도 모릅니다. 그러 가전에 따르면 야훼라는 이름은 \'나는 존재한다\'와 \'존재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호칭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는 분이며 동시에 존재하게 하는 분인 것입니다. p 35-36.
질문 활용
지금 어떤 짐을 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시편을 통하여 짐을 가볍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까? 가볍게 길을 떠난 다는 것은 곧 어쩌다보니 지게 된 무거운 짐들을 하나님께 맡겨버린다는 뜻입니다.
왜 짐을 내려놓지 못합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가볍게 길을 나서보십시오. 힘에 부치게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