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계장터(신경림)
눈물(오세영)
빙그레 우유 200ml 패키지(오규원)
세한도 가는 길(유안진)
침묵피정1(신달자)
-참고문헌
눈물(오세영)
빙그레 우유 200ml 패키지(오규원)
세한도 가는 길(유안진)
침묵피정1(신달자)
-참고문헌
본문내용
라는 구절이 조금식 변형되어 반복 되면서 시 전체의 규칙적인 리듬을 이끌고 가는 서술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민요가 대개 하나의 기본 가락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메기고 받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텐데, 비단 민요조 가락의 차용이 두드러진 시들에서뿐만 아니라, 하나의 언술단위를 조금씩 변형시키면서 규칙적으로 반복해나가는 수법은 신경림의 매우 두드러진 시작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가난한 사랑 노래」와 같은 시에서는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구절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시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고 있으며, 「오월은 내게」와 같은 시에서는 “오월은 내게 사랑을 알게 했고” “다시 오월은 내게 두려움을 가르쳤다” “마침내 오월에 나는 증오를 배웠다” “오월은 내게 갈길을 알게 했다”라는 구절들이 규칙적인 반복의 리듬을 이루면서 시의 의미를 점층적으로 강조해나가는 언술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에 기대어 있는 신경림의 시들이, 민요조의 가락을 본격적으로 차용해오기 이전에 이미 민요조 가락과 같은 유형의 규칙적인 율격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것 이다.
그러므로 신경림의 시와 민요조 가락의 만남은, 시인 자신은 “의도적이고 실용적인 동기”에서라고 했지만, 신경림의 시작 과정의 매우 자연스러운 구결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신경림의 시에서 민요조 가락이 지닌 민중적 삶의 한과 신명 흥겨운 신과 멋
이 그의 시가 지닌 또다른 특징인 서사적 언술형태와 어우러져 씌어진 가장 대로적인 시적 성과는 「세재」나 「남한강」「쇠무지벌」과 같은 서사시 형태의 장시들일 것이다. 이미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 장시들은 서정적 요소와 서사적 요소가 길항적인 관계로 삼투하면서 일제 점령기에서 해방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민중들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훑어나가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시들은 서로 내용상의 연관을 지닌 연작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새재」가 구한말에서 일제점령 초기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돌배라는 인물의 행적을 쫓아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 「남한강」은 돌배의 애인인 연이를 작품의 중심 인물로 설정하여 일제강점기 하층 민중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에 비해 「쇠무지벌」은 특정한 주인공을 내세우는 대신 민중들의 집단화된 목소리를 통해서 해방 이후의 혼란스런 시대상의 한 편린 사물의 극히 작은 일부분을 이르는 말
을 그려낸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장시들은 시대적 상황의 변화를 따라 그 내용상의 일관된 흐름을 견지해나가면서도, 기법적인 측면에서 시인의 치밀한 계산을 느끼게 하는 어떤 변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작 장시의 첫작품인 「새재」는 돌배라는 주인공의 행적을 단선적으로 뒤쫓는 과정을 통해서 ‘빼앗은 자’에 대한 돌배의 분노와 원한을 매우 직설적인 형태로 드러낸다.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불만감에 사로잡혀 있던 돌배가 마침내 지주의 집을 습격하고 의병에 가담하게 되는 것 또한 뚜렷한 서사적 계기 없이 다음과 같은 첨예하게 이분화된 직정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
의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비평
신경림 비평의 대상이 되는 주된 장르는 시양식이다.
아마도 그의 전문분야가 시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농촌현과 농민문학」「문학과 민중」, 이 두 편 정도의 글이 주로 소설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들은 농민문학 혹은 민중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씌어진 일종의 소략한 소설사인 셈이다. 그나마 이 글들은 그가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하던 초기에 씌어진 것들로서, 본격적인 소설평이라기보다 차라리 독서단상에 가깝다.
이후로는 시 이외의 분야에 대한 글이 거의 발견되지 않듯이, 대부분의 글들이 시 비평에 해당한다. 그의 시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척도는 창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중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그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이른바 ‘민중시’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목소리가 모두 같다는 것, 둘째로 삶의 인식이나 시적 처리가 상투적 항상 하는 버릇처럼 된 것
이라는 것, 셋째로 시어가 한정되고 있고 상상력의 부족이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넷째로 시의 세계가 한결같이 어둡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근거가 전혀 없지 않다고 보면서,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인에게 “자기의 가락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시인이 “인식의 피상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세 번째 비판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생생한 생활의 체험이 밑바탕이 된 수사의 탐구가 필요하다고 하여 문학의 형식적인 측면에까지 배려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올바른 시의 방향을 역시 민중성에 기반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민중성의 강조는‘공동창작’의 문제를 제기하는 곳에서도 나타난다.
신경림은 공동창작을, 민중이 주체로서 문화창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다. 즉 \"시가 일부 전문가와 지식인의 손에서 놓여 민중에게 되돌려지기 위해서는, 또 시가 잃어버린 공동체적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의 공동창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래 공동창작은 근대사회에서 사적 창작이 갖는 임의적이고 무정부적인 성격을 일정한 세계관에 입각하여 집단적 의지와 유대로써 근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공동창작에서 중요한 미적 원리는 집단성과 현장성운동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점 또한 부가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신경림의 민중문학론은 민요에 대한 각별한 관심 표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늘의 시인들 가운데 그는 누구보다도 민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미 많은 평자들이 신경시의 민요적 성격에 주목한 바 있거니와, 그 자신도 민요와 관련하여 「나는 왜 시를 쓰는가」「시와 민요」「내 시의 뒷이야기」「왜 민요운동이 필요한가」등의 글을
이를테면 「가난한 사랑 노래」와 같은 시에서는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구절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시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고 있으며, 「오월은 내게」와 같은 시에서는 “오월은 내게 사랑을 알게 했고” “다시 오월은 내게 두려움을 가르쳤다” “마침내 오월에 나는 증오를 배웠다” “오월은 내게 갈길을 알게 했다”라는 구절들이 규칙적인 반복의 리듬을 이루면서 시의 의미를 점층적으로 강조해나가는 언술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에 기대어 있는 신경림의 시들이, 민요조의 가락을 본격적으로 차용해오기 이전에 이미 민요조 가락과 같은 유형의 규칙적인 율격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것 이다.
그러므로 신경림의 시와 민요조 가락의 만남은, 시인 자신은 “의도적이고 실용적인 동기”에서라고 했지만, 신경림의 시작 과정의 매우 자연스러운 구결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신경림의 시에서 민요조 가락이 지닌 민중적 삶의 한과 신명 흥겨운 신과 멋
이 그의 시가 지닌 또다른 특징인 서사적 언술형태와 어우러져 씌어진 가장 대로적인 시적 성과는 「세재」나 「남한강」「쇠무지벌」과 같은 서사시 형태의 장시들일 것이다. 이미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 장시들은 서정적 요소와 서사적 요소가 길항적인 관계로 삼투하면서 일제 점령기에서 해방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민중들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훑어나가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시들은 서로 내용상의 연관을 지닌 연작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새재」가 구한말에서 일제점령 초기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돌배라는 인물의 행적을 쫓아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 「남한강」은 돌배의 애인인 연이를 작품의 중심 인물로 설정하여 일제강점기 하층 민중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에 비해 「쇠무지벌」은 특정한 주인공을 내세우는 대신 민중들의 집단화된 목소리를 통해서 해방 이후의 혼란스런 시대상의 한 편린 사물의 극히 작은 일부분을 이르는 말
을 그려낸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장시들은 시대적 상황의 변화를 따라 그 내용상의 일관된 흐름을 견지해나가면서도, 기법적인 측면에서 시인의 치밀한 계산을 느끼게 하는 어떤 변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작 장시의 첫작품인 「새재」는 돌배라는 주인공의 행적을 단선적으로 뒤쫓는 과정을 통해서 ‘빼앗은 자’에 대한 돌배의 분노와 원한을 매우 직설적인 형태로 드러낸다.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불만감에 사로잡혀 있던 돌배가 마침내 지주의 집을 습격하고 의병에 가담하게 되는 것 또한 뚜렷한 서사적 계기 없이 다음과 같은 첨예하게 이분화된 직정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
의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비평
신경림 비평의 대상이 되는 주된 장르는 시양식이다.
아마도 그의 전문분야가 시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농촌현과 농민문학」「문학과 민중」, 이 두 편 정도의 글이 주로 소설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들은 농민문학 혹은 민중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씌어진 일종의 소략한 소설사인 셈이다. 그나마 이 글들은 그가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하던 초기에 씌어진 것들로서, 본격적인 소설평이라기보다 차라리 독서단상에 가깝다.
이후로는 시 이외의 분야에 대한 글이 거의 발견되지 않듯이, 대부분의 글들이 시 비평에 해당한다. 그의 시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척도는 창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중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그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이른바 ‘민중시’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목소리가 모두 같다는 것, 둘째로 삶의 인식이나 시적 처리가 상투적 항상 하는 버릇처럼 된 것
이라는 것, 셋째로 시어가 한정되고 있고 상상력의 부족이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넷째로 시의 세계가 한결같이 어둡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근거가 전혀 없지 않다고 보면서,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인에게 “자기의 가락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시인이 “인식의 피상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세 번째 비판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생생한 생활의 체험이 밑바탕이 된 수사의 탐구가 필요하다고 하여 문학의 형식적인 측면에까지 배려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올바른 시의 방향을 역시 민중성에 기반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민중성의 강조는‘공동창작’의 문제를 제기하는 곳에서도 나타난다.
신경림은 공동창작을, 민중이 주체로서 문화창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다. 즉 \"시가 일부 전문가와 지식인의 손에서 놓여 민중에게 되돌려지기 위해서는, 또 시가 잃어버린 공동체적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의 공동창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래 공동창작은 근대사회에서 사적 창작이 갖는 임의적이고 무정부적인 성격을 일정한 세계관에 입각하여 집단적 의지와 유대로써 근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공동창작에서 중요한 미적 원리는 집단성과 현장성운동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점 또한 부가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신경림의 민중문학론은 민요에 대한 각별한 관심 표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늘의 시인들 가운데 그는 누구보다도 민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미 많은 평자들이 신경시의 민요적 성격에 주목한 바 있거니와, 그 자신도 민요와 관련하여 「나는 왜 시를 쓰는가」「시와 민요」「내 시의 뒷이야기」「왜 민요운동이 필요한가」등의 글을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