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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는 달랐다. 당시 함경도 지역을 선교부로 선교했던 곳은 캐나다 선교부였다. 캐나다 선교부는 1925년 캐나다 장로회가 본 국으로부터 교파에 상관없이 연합회로 연결되면서부터 캐나다 선교사들의 신학적 폭이 넓어지는 일을 겪게 된다.캐나다 연합교회가 형성된 뒤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는 스캇, 프래지어, 맥도날드등이 있는데 이들은 교단적 배경은 달랐고 신학적으로도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특히 스캇은 구약의 용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믿었으며 이것은 당시 한국에 퍼져있던 성서 무오설에는 반하는 역설이었다. 이처럼 성서에 개방적이고 진보주의자였던 스캇이 캐나다 선교회의 책임을 맡았고 김관식과 조희염 목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스탓을 중심으로 하는 캐나다 연합교회의 교육에 합류하였다. 특히 김관식, 조희염은 1926년 가을에 열린 함경도 노회의 교역자 연수회에서 새로운 신학을 소개하기 시작하였고 여기서 역사비판적인 방법으로 보는 성경관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김영재 되돌아 보는 한국 기독교 p 333
1925년 이후 본국의 교회 연합과 신학적 변천은 캐나다 선교의 주도권으로 보수주의에서 자유주의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개방적인 자유주의 신학사상은 자연히 선교현장 특히 함경도 지역의 성경교육과 신학교육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당시 김춘배 목사가 시무하고 있던 교회는 함남노회 산하의 성진 중앙교회 였던 점을 보았을때 김춘배 목사 또한 함경도의 캐나다 선교사들의 자유적인 신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2) 일본 신학교 출신의 유학자
1930년대의 신학적 변천에 가장 깊이 영향을 미쳤던 이들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한국의 선진 신학자들이다. 여권문제의 김춘배, 창세기 저작권을 부인한 김영주, 아빙돈단권주석 번역과 신학지남 기고문제가 제기된 송창근 채필근, 김재준은 모두 일본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김춘배 목사와 김영주 목사(창세기 모세 저작 부인)가 유학한 칸사이 학원 대학에서 유학하였는데 칸사이 학원 대학은 오늘날에도 일본 고베에 존재하는 감리교 계통의 신학교로서 일찍부터 비교적 진보적이고 자유적인 신학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이것은 곧 당시 두 사람이 모두 장로교회 목사이면서도 국내 장로교의 신학적 분위기를 이끌어 가던 유일한 신학교인 평양장로회신학교 출신이 아니라는데 주목해야한다. 서정민 한국교회논쟁사 p46~50.
특히 이들이 수학한 시기였던 1920년대 중반은 바르트 신학이 적지 않게 일본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기였다. 이에 이미 1920년 후반,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일본에서 교육받고 있던 시기에 바르트의 신정통적인 신학은 신학자들과 신학생들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국기독교회사 2 p 507
마찬가지로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과 사회복음주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칸사이학원대학 서정민 한국 기독교 사상 3.한국교회와 자유주의: 한국교회사적 입장 p173
에서 수학한 김춘배목사와 김영주 목사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3) 결론
1934년 한국 선교 50주년 이라는 큰 일이 있을 때 신학적인 논쟁이 마구
1925년 이후 본국의 교회 연합과 신학적 변천은 캐나다 선교의 주도권으로 보수주의에서 자유주의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개방적인 자유주의 신학사상은 자연히 선교현장 특히 함경도 지역의 성경교육과 신학교육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당시 김춘배 목사가 시무하고 있던 교회는 함남노회 산하의 성진 중앙교회 였던 점을 보았을때 김춘배 목사 또한 함경도의 캐나다 선교사들의 자유적인 신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2) 일본 신학교 출신의 유학자
1930년대의 신학적 변천에 가장 깊이 영향을 미쳤던 이들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한국의 선진 신학자들이다. 여권문제의 김춘배, 창세기 저작권을 부인한 김영주, 아빙돈단권주석 번역과 신학지남 기고문제가 제기된 송창근 채필근, 김재준은 모두 일본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김춘배 목사와 김영주 목사(창세기 모세 저작 부인)가 유학한 칸사이 학원 대학에서 유학하였는데 칸사이 학원 대학은 오늘날에도 일본 고베에 존재하는 감리교 계통의 신학교로서 일찍부터 비교적 진보적이고 자유적인 신학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이것은 곧 당시 두 사람이 모두 장로교회 목사이면서도 국내 장로교의 신학적 분위기를 이끌어 가던 유일한 신학교인 평양장로회신학교 출신이 아니라는데 주목해야한다. 서정민 한국교회논쟁사 p46~50.
특히 이들이 수학한 시기였던 1920년대 중반은 바르트 신학이 적지 않게 일본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기였다. 이에 이미 1920년 후반,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일본에서 교육받고 있던 시기에 바르트의 신정통적인 신학은 신학자들과 신학생들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국기독교회사 2 p 507
마찬가지로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과 사회복음주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칸사이학원대학 서정민 한국 기독교 사상 3.한국교회와 자유주의: 한국교회사적 입장 p173
에서 수학한 김춘배목사와 김영주 목사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3) 결론
1934년 한국 선교 50주년 이라는 큰 일이 있을 때 신학적인 논쟁이 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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