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쑨턴푸 시대 전후의 역사
2. 쑨턴푸 시대의 사회상과 왕실생활
3. 쑨턴푸의 출가와 승려생활
4. 쑨턴푸의 작품
5. 쑨턴푸 작품의 평가
6. 쑨턴푸의 글을 쓰고 나서
2. 쑨턴푸 시대의 사회상과 왕실생활
3. 쑨턴푸의 출가와 승려생활
4. 쑨턴푸의 작품
5. 쑨턴푸 작품의 평가
6. 쑨턴푸의 글을 쓰고 나서
본문내용
신 승려가 된 것이다
태국의승려는태국날씨의건기,우기,하기의세계절중우기인 8월부터 ~ 11월까지인 태국절기의 완카오판싸(8월)와 완억판싸(11월)의 사이의 \"판싸\"라고 하여 이 3개월간은 승려가 절에서 나가지 않고 명상과 법경에 몰두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승려들 사이는 몇 번의 판싸를 지냈냐는 것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냐와 같은 말이 되는 것이고, 쑨턴푸는 18번의 판싸를 거친 승려가 되는 것이다
이 18년간의 승려생활은 하루 두 끼의 식사(아침10시와 오후3시), 수면은 하루 5시간, 모든 잡기는 금하며 오직 수행과 정진으로 자신의 내면세계와의 싸움만 있을 뿐이었다.
왕실에서의 8년간의 기름진 음식과 편한 선생으로서의 직위를 버리고 1824년에 승려가 된 쑨턴푸는 하나의 절에서만 수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승려생활은 우리나라의 김삿갓처럼 전국을 유랑하며 보내게 된다. 어디 한 곳에 정착을 잘 못하는 그의 특유함과 부지런함이 라차부라나사원에서 시작하여 태국최초의대학교가되는포사원,마하타뚜사원그리고테파티다람사원등여러사원에서 여러 사원에서 승려생활을 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의 승려로서의 성지순례로 인한 지역의 답사는 그의 많은 작품에 남아 있고 이 기간에 일반평민과의 동고동락을 하면서 각종 구전되는 이야기 거리, 격언, 속담, 설화, 동요 등을 부지런히 수집하고 체계화 하면서 민중을 위한 극과 시와 작품을 만들게 되고 그의 모든 작품은 민중들에게 대단히 인기를 끄는 것도 민중이 원하는 형태로 글을 구성하였기 때문이다
4. 쑨턴푸의 작품
1) \"니랏므엉끌랭\"
쑨턴푸의 작품의 본격적 활동은 그의 여행 시인 \"니랏므엉끌랭\"이다. 이 작품은 1806년도의 것으로 쑨턴푸와 짠이 왕실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 쑨턴푸의 아버지가 승려로 지내는 라용주의 끌랭에 가는 여정을 시로 그린 기행 시이다. 이 기행 시는 방콕도시에서 배로 수로를 따라 또는 육로를 따라서 아버지가 계시는 반끄람사원이 있는 끌랭도시까지의 길의여정이다.지금이야 도로가 잘 되어있지만 원래 태국은 수로가 도로보다 많았었고 모든 집에는 배가 있을 정도로 수로를 이용한 여행이 잦은편이었다. 방콕 - 싸뭇쁘라깐 - 촌부리 - 파타야 - 라용으로 연결되는 태국동남부의 여정은 그의 첫 여인 짠과의 결혼을 위한 여행이기도 하였다
2) \"니랏프라밧\"
1807년 라마1세에 의한 복직으로 왕의 측근이 되어 싸라부리주의 불교행사를 기념하기위하여 가는 여정을 그린 기행 시다. 싸라부리주는 태국동북부의관문이다. 그 가는 길은 산과 강을 따라 가는 쉬운 길이 아니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만 하는 험한 여행이었다.
3) \"니랏푸카오텅\"
1821년 쑨턴푸가 승려생활을 하면서 아유타야사원의 탑을 방문하기 위하여 가는 여정을 그린 기행 시이다. 아유타야는 방콕북부에 위치한 곳으로서 물이 많고 날씨가 좋아 1년 3모작이 가능하지만 분지로써 무더운 날씨를 가진 지역이기도하다 .그곳의 여정은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비교적 쉬운 여정이었던 것 같다. 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
4) \"니랏쑤판\"
1831년 승려생활중 쑤판부리를 여행하면서 쓴 기행 시이다. 쑤판부리는 아유타야 위쪽에 위치한 곳으로 아유타야와 마찬가지로 쌀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다른 지역보다 풍요로운 지역으로 농민들의 생활과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5) \"니랏왓짜오파\"
1832년 아유타야의 찌오파사원을 방문하여 가는 여정을 그린 기행시이다. 승려이니 만큼 많은 사원을 방문하였고 ,특히 쑨턴푸는 짝끄리왕조시대에 태어낫지만, 그의 작품수집과정에서 그의 부모세대의 애환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아유타야는 그에게 많은 슬픔과 고통을 주었다
6) \"니랏이나오\"
이 작품은 아유타야왕국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시이다. 라마1세때 체계화 된 작품으로 쑨턴푸가 만들었고, 라마2세 때는 극으로 창으로써 궁실 내에서 많은 인기가 있었다.
이나오의 극중 인물의 슬픈 이야기이다.
이나오는 꾸래반성의 왕자로 다하성의 공주인 부싸바와 결혼을 하기로 집안끼리 약속을 한다
이나오가 성장하면서 다른 성의 사신으로 가서 오래 머물게 되면서 그 성의 짠다라를 만나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 이사실을 알게된 다하성성주는 꾸래반성과 원수가 되고 공주인 부싸바를 홧김에 다른 곳에 시집을 보내 버린다. 우연쟎게 결혼을 약속한 부싸바를 만나게 된 이나오는 갈등 중에 둘은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급기야는 이나오와 부싸바는 함께 도망을 가서 황금의 동굴에서 지내게 된다. 어느날 부싸바는 이나오를 마중 나가기 위해 황금의 동굴에서 배를 저어 나가다 심한 폭퐁우를 만나 행방불명이 된다. 이때부터 이나오는 부싸바를 찾기 위한 모험과 여행이 시작되고 그의 슬픔과 연민이 작품에 애절하여 후에는 일반인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기도 한 작품이다
7) \"람판필랍\"
1842년에 지은작품이다. 이작품은 일반작품과 달리 삶과 죽음에 대한 것으로 쑨턴푸가 테파티다람사원에서 승려생활을 할 때 자신의 꿈속에서 자신의 삶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허무함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 쑨턴푸가 왕실과의 안 좋은 관계로 스스로 왕실을 피해 숨어 다니는 상황이기도 하는 가운데서 쓰였고 또한 무너져 버린 아유타야 왕국에 대한 슬픔 때문이라고도 한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나온 인생에 대한 진실이 어디에 있는 가에 대한 답을 알 길이 없어 슬퍼하는 노래하는 시이다.
8)\"니랏프라쁘라톰\"
1842년 승려생활을 마치고 왕실에 복귀되면서 나컨쁘라톰의 탑 기념불공을 드리기 위해 가면서 쓴 기행 시이다. 나컨쁘라톰은 불교 유적지로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데 세계에서 제일 큰 사원이 나컨쁘라톰에 있고 불교적성향이 강한 곳이다.
9) \"니랏므엉펫\"
1845년 쑨턴푸가 펫부리 지역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 시이다. 이 작품 속에서 어머니의 선친들이 펫부리 출신임을 알수있다. 이 펫부리는 태국의 서남쪽에 있고 남부로 가기 위해서는 이 지역을 거쳐야 한다. 이곳은 방콕에서 멀지 않으면서 경관이 좋아 아유타야 시대부터 왕이 휴가를 즐기는 곳 중의 한곳이다.
10) \"싸왓디락싸\"
라마2세 왕실에서 선생을 하면서 교훈이 되는 말들을 수집하여 왕실교재로 사용하였다
11) \"쑤파
태국의승려는태국날씨의건기,우기,하기의세계절중우기인 8월부터 ~ 11월까지인 태국절기의 완카오판싸(8월)와 완억판싸(11월)의 사이의 \"판싸\"라고 하여 이 3개월간은 승려가 절에서 나가지 않고 명상과 법경에 몰두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승려들 사이는 몇 번의 판싸를 지냈냐는 것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냐와 같은 말이 되는 것이고, 쑨턴푸는 18번의 판싸를 거친 승려가 되는 것이다
이 18년간의 승려생활은 하루 두 끼의 식사(아침10시와 오후3시), 수면은 하루 5시간, 모든 잡기는 금하며 오직 수행과 정진으로 자신의 내면세계와의 싸움만 있을 뿐이었다.
왕실에서의 8년간의 기름진 음식과 편한 선생으로서의 직위를 버리고 1824년에 승려가 된 쑨턴푸는 하나의 절에서만 수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승려생활은 우리나라의 김삿갓처럼 전국을 유랑하며 보내게 된다. 어디 한 곳에 정착을 잘 못하는 그의 특유함과 부지런함이 라차부라나사원에서 시작하여 태국최초의대학교가되는포사원,마하타뚜사원그리고테파티다람사원등여러사원에서 여러 사원에서 승려생활을 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의 승려로서의 성지순례로 인한 지역의 답사는 그의 많은 작품에 남아 있고 이 기간에 일반평민과의 동고동락을 하면서 각종 구전되는 이야기 거리, 격언, 속담, 설화, 동요 등을 부지런히 수집하고 체계화 하면서 민중을 위한 극과 시와 작품을 만들게 되고 그의 모든 작품은 민중들에게 대단히 인기를 끄는 것도 민중이 원하는 형태로 글을 구성하였기 때문이다
4. 쑨턴푸의 작품
1) \"니랏므엉끌랭\"
쑨턴푸의 작품의 본격적 활동은 그의 여행 시인 \"니랏므엉끌랭\"이다. 이 작품은 1806년도의 것으로 쑨턴푸와 짠이 왕실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 쑨턴푸의 아버지가 승려로 지내는 라용주의 끌랭에 가는 여정을 시로 그린 기행 시이다. 이 기행 시는 방콕도시에서 배로 수로를 따라 또는 육로를 따라서 아버지가 계시는 반끄람사원이 있는 끌랭도시까지의 길의여정이다.지금이야 도로가 잘 되어있지만 원래 태국은 수로가 도로보다 많았었고 모든 집에는 배가 있을 정도로 수로를 이용한 여행이 잦은편이었다. 방콕 - 싸뭇쁘라깐 - 촌부리 - 파타야 - 라용으로 연결되는 태국동남부의 여정은 그의 첫 여인 짠과의 결혼을 위한 여행이기도 하였다
2) \"니랏프라밧\"
1807년 라마1세에 의한 복직으로 왕의 측근이 되어 싸라부리주의 불교행사를 기념하기위하여 가는 여정을 그린 기행 시다. 싸라부리주는 태국동북부의관문이다. 그 가는 길은 산과 강을 따라 가는 쉬운 길이 아니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만 하는 험한 여행이었다.
3) \"니랏푸카오텅\"
1821년 쑨턴푸가 승려생활을 하면서 아유타야사원의 탑을 방문하기 위하여 가는 여정을 그린 기행 시이다. 아유타야는 방콕북부에 위치한 곳으로서 물이 많고 날씨가 좋아 1년 3모작이 가능하지만 분지로써 무더운 날씨를 가진 지역이기도하다 .그곳의 여정은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비교적 쉬운 여정이었던 것 같다. 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
4) \"니랏쑤판\"
1831년 승려생활중 쑤판부리를 여행하면서 쓴 기행 시이다. 쑤판부리는 아유타야 위쪽에 위치한 곳으로 아유타야와 마찬가지로 쌀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다른 지역보다 풍요로운 지역으로 농민들의 생활과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5) \"니랏왓짜오파\"
1832년 아유타야의 찌오파사원을 방문하여 가는 여정을 그린 기행시이다. 승려이니 만큼 많은 사원을 방문하였고 ,특히 쑨턴푸는 짝끄리왕조시대에 태어낫지만, 그의 작품수집과정에서 그의 부모세대의 애환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아유타야는 그에게 많은 슬픔과 고통을 주었다
6) \"니랏이나오\"
이 작품은 아유타야왕국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시이다. 라마1세때 체계화 된 작품으로 쑨턴푸가 만들었고, 라마2세 때는 극으로 창으로써 궁실 내에서 많은 인기가 있었다.
이나오의 극중 인물의 슬픈 이야기이다.
이나오는 꾸래반성의 왕자로 다하성의 공주인 부싸바와 결혼을 하기로 집안끼리 약속을 한다
이나오가 성장하면서 다른 성의 사신으로 가서 오래 머물게 되면서 그 성의 짠다라를 만나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 이사실을 알게된 다하성성주는 꾸래반성과 원수가 되고 공주인 부싸바를 홧김에 다른 곳에 시집을 보내 버린다. 우연쟎게 결혼을 약속한 부싸바를 만나게 된 이나오는 갈등 중에 둘은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급기야는 이나오와 부싸바는 함께 도망을 가서 황금의 동굴에서 지내게 된다. 어느날 부싸바는 이나오를 마중 나가기 위해 황금의 동굴에서 배를 저어 나가다 심한 폭퐁우를 만나 행방불명이 된다. 이때부터 이나오는 부싸바를 찾기 위한 모험과 여행이 시작되고 그의 슬픔과 연민이 작품에 애절하여 후에는 일반인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기도 한 작품이다
7) \"람판필랍\"
1842년에 지은작품이다. 이작품은 일반작품과 달리 삶과 죽음에 대한 것으로 쑨턴푸가 테파티다람사원에서 승려생활을 할 때 자신의 꿈속에서 자신의 삶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허무함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 쑨턴푸가 왕실과의 안 좋은 관계로 스스로 왕실을 피해 숨어 다니는 상황이기도 하는 가운데서 쓰였고 또한 무너져 버린 아유타야 왕국에 대한 슬픔 때문이라고도 한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나온 인생에 대한 진실이 어디에 있는 가에 대한 답을 알 길이 없어 슬퍼하는 노래하는 시이다.
8)\"니랏프라쁘라톰\"
1842년 승려생활을 마치고 왕실에 복귀되면서 나컨쁘라톰의 탑 기념불공을 드리기 위해 가면서 쓴 기행 시이다. 나컨쁘라톰은 불교 유적지로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데 세계에서 제일 큰 사원이 나컨쁘라톰에 있고 불교적성향이 강한 곳이다.
9) \"니랏므엉펫\"
1845년 쑨턴푸가 펫부리 지역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 시이다. 이 작품 속에서 어머니의 선친들이 펫부리 출신임을 알수있다. 이 펫부리는 태국의 서남쪽에 있고 남부로 가기 위해서는 이 지역을 거쳐야 한다. 이곳은 방콕에서 멀지 않으면서 경관이 좋아 아유타야 시대부터 왕이 휴가를 즐기는 곳 중의 한곳이다.
10) \"싸왓디락싸\"
라마2세 왕실에서 선생을 하면서 교훈이 되는 말들을 수집하여 왕실교재로 사용하였다
11) \"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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