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조사 장소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리
2. 피조사자
@@@( @@세, 남)
3. 조사 내용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리
2. 피조사자
@@@( @@세, 남)
3. 조사 내용
본문내용
地理上에는 지네 형국이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玉女織錦穴이란 설은 地緣性이 가장 짙어 유래가 그와 같이 되었다. 그리고 적병이 여러 차례 한나루 부근에 침입 상륙을 기도하였으나 한나루 앞바다에 우뚝 솟은 靈雄巖 德仁巖을 큰 군함으로, 그리고 부근에 흩어져 있는 암석들을 부속선으로 오인하여 스스로 물러갔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러한 亂時일수록 줄다리기 행사는 더욱 확대 강화되었다. 이 지방 주민들은 남녀 구별 없이 합심 합력하여 계속해 왔다.
기지시리 줄다리기에 얽힌 주요한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옥녀직금혈설(玉女織錦穴)
옛날 한 나루가 하룻밤 사이에 육지가 꺼져 바다가 되는 이변이 있었던 무렵의 일이라고 한다. 이 고을은 대낮에도 호랑이가 나타나서 사람을 해치고 괴질이 도는 등 각종 행액이 자주 일어나 인심이 흉흉하였다. 그러나 이 곳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이곳을 지나는 길손이 이곳은 지형이 배틀 모양으로 옥녀직금혈(玉女織錦穴)이라 매년 온 마을 사람들이 정성으로 당제를 지내고 줄을 다려야 재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어 그때부터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3년을 격하여 윤년에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베를 짜는데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리는 것이어서 그동안 베를 짜서 윤달이 든 해에 마전을 하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베틀을 뜻하는 ‘틀’자와 길쌈을 하기 위해서는 물이 있어야 함으로 연못의 ‘못’자가 합쳐서 ‘틀못’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기록하다 보니 ‘기지시(機池市)’가 되었고 입으로 말을 할 때는 연음화 현상으로 ‘틀무시’로 되었다.
* 지네 형국설
옛날에 이 곳에 사는 한 선비가 큰 뜻을 품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과거만 보면 낙방하곤 하였다. 과거를 볼 때마다 선비가 공부한 문제는 출제되지 않거나 또는 평소에 공부를 했던 문제라도 과장에 들어가면 까맣게 머리에서 사라지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과장에서 나오면 잊었던 문제가 또렷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하도 여러 번 실패하다보니 낙담하여 과거를 포기할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그는 또 과거에 낙방을 하고 귀향하는 길에 국수봉에 올라 망연자실하여 속으로 자기 신세를 한탄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결에 구름이 용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하도 놀라 선비는 몸을 움cm렸다. 그러자 용이 선비에게 놀라지 말라는 듯한 몸짓을 하더니 용은 이내 노인으로 변신하여 선비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놀라지 말고 내 말을 듣거라, 그대가 과거에 거듭 낙방하고 이곳에 윤년마다 재난이 드는 것은 오래 묵은 지네의 심술 때문이다.”
선비는 노인에게 그러면 방비책이 없겠느냐고 묻자, 노인이 지금부터 내가 이르는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하면 지네의 횡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일렀다.
노인의 말인즉,
“오는 정월 보름날 그대가 이곳에 오면 죽은 가지없는 나무에 꽃이 핀 것이 있을 것이다. 자정이 지나면 그 꽃에서 예쁜 아가씨가 나올 것인데 그 아가씨가 그대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 할 것이다. 그 때 그대는 재빠르게 그 꽃에 불을 붙여 그 여자의 입속에 집어넣고 뒤돌아보지 말고 그곳을 피하라.”
말하고는 사라졌다.
선비는 꿈속에서 노인이 일러 준 대로 하기로 마음먹고 정월 보름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정월 대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선비는 국수봉에 올라 살펴보니 과연 가지 없는 죽은 나무에 꽃이 피어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선비는 먼저 꿈에서 노인 시켰던 대로 하고는 얼른 그곳을 피하였다.
잠시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예쁜 아가씨는 간 곳이 없고 큰 구렁이와 지네가 나타나 뒤엉켜 싸우다가 결국 지네가 죽어 있었다. 선비가 다도 놀래어 정신이 얼떨떨하여 혼미한 중 비몽사몽간에 먼저 꿈에 나타났던 노인이 다시 나타나 하는 말이 심술을 부리던 지네는 죽었지만 이 고장은 지형이 지네형국이라 횡액을 막기 위해서는 윤달이 드는 해마다 지네 모양의 밧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하여 지네의 허리를 늘려놓고 지네의 혈을 뭇사람들이 밟아 지네의 기를 꺾어주어야 지네가 심술을 부리지 못하여 재난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꿈에서 노인이 선비에게 알려준 대로 하니 재난이 없는 살기 좋은 고장이 되었다 하며, 이때부터 줄다리기 행사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일제치하에서는 민심의 단결을 두려워한 일제의 갖은 박해와 압력으로 중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환이 또 바로 일어나, 다시 복원하여 행사는 더욱 활발하였다 한다. 근래에 이르러는 과학 문물에 밀려 이 행사가 사라져 가는 경향이었다.
1972년도에 73년 행사 계획을 의논한 자리에서 兩論이 있었다. 한편에서는 너무도 원시적이고 미신적이라는 이유로 행사 폐지론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역사성과 전통성을 제의, 有持論이 맞섰다. 결론이 내리지 않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결정할 것을 결의하였다. 모든 자료를 수집, 충청남도 문화재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地方文化財 35호로 지정을 받아 주민들은 더욱 활기를 되찾았다.
1976년에는 公州의 公山城에서 행한 백제 문화 행사에 참가했고, 1981년에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행한 國風81에 참가하였다. 1982년 6월1일 중앙문화재 위원회에 심사를 거쳐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으며 보유자 1人과 후보자도 지정되었다. 1985년도에는 매 음력 2월 1일자 中和節에 國守堂祭를 복원하여 小祭를 올렸고, 충청남도 대표 祝祭로 지정받았다. 윤년의 행사는 大祭로 하고, 매년 中和節의 행사는 小祭로 구분하여 축제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기지시리 줄다리기 주요 연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주요 연혁
-1973년 12월 26일 :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35호로 지정
-1979년 7월 3일 : 충청남도 지방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
-1982년 6월 1일 : 문화공보부 중요 무형문화재 75호로 지정
-1986년 11월 1일 : 문화공보부 352호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단체로 지정
3) 기지시리 줄다리기 관련 행사
① 국수봉 당제
기지시 줄다리기가 3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데 이 행사 첫날에 당제와 용
기지시리 줄다리기에 얽힌 주요한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옥녀직금혈설(玉女織錦穴)
옛날 한 나루가 하룻밤 사이에 육지가 꺼져 바다가 되는 이변이 있었던 무렵의 일이라고 한다. 이 고을은 대낮에도 호랑이가 나타나서 사람을 해치고 괴질이 도는 등 각종 행액이 자주 일어나 인심이 흉흉하였다. 그러나 이 곳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이곳을 지나는 길손이 이곳은 지형이 배틀 모양으로 옥녀직금혈(玉女織錦穴)이라 매년 온 마을 사람들이 정성으로 당제를 지내고 줄을 다려야 재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어 그때부터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3년을 격하여 윤년에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베를 짜는데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리는 것이어서 그동안 베를 짜서 윤달이 든 해에 마전을 하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베틀을 뜻하는 ‘틀’자와 길쌈을 하기 위해서는 물이 있어야 함으로 연못의 ‘못’자가 합쳐서 ‘틀못’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기록하다 보니 ‘기지시(機池市)’가 되었고 입으로 말을 할 때는 연음화 현상으로 ‘틀무시’로 되었다.
* 지네 형국설
옛날에 이 곳에 사는 한 선비가 큰 뜻을 품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과거만 보면 낙방하곤 하였다. 과거를 볼 때마다 선비가 공부한 문제는 출제되지 않거나 또는 평소에 공부를 했던 문제라도 과장에 들어가면 까맣게 머리에서 사라지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과장에서 나오면 잊었던 문제가 또렷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하도 여러 번 실패하다보니 낙담하여 과거를 포기할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그는 또 과거에 낙방을 하고 귀향하는 길에 국수봉에 올라 망연자실하여 속으로 자기 신세를 한탄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결에 구름이 용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하도 놀라 선비는 몸을 움cm렸다. 그러자 용이 선비에게 놀라지 말라는 듯한 몸짓을 하더니 용은 이내 노인으로 변신하여 선비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놀라지 말고 내 말을 듣거라, 그대가 과거에 거듭 낙방하고 이곳에 윤년마다 재난이 드는 것은 오래 묵은 지네의 심술 때문이다.”
선비는 노인에게 그러면 방비책이 없겠느냐고 묻자, 노인이 지금부터 내가 이르는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하면 지네의 횡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일렀다.
노인의 말인즉,
“오는 정월 보름날 그대가 이곳에 오면 죽은 가지없는 나무에 꽃이 핀 것이 있을 것이다. 자정이 지나면 그 꽃에서 예쁜 아가씨가 나올 것인데 그 아가씨가 그대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 할 것이다. 그 때 그대는 재빠르게 그 꽃에 불을 붙여 그 여자의 입속에 집어넣고 뒤돌아보지 말고 그곳을 피하라.”
말하고는 사라졌다.
선비는 꿈속에서 노인이 일러 준 대로 하기로 마음먹고 정월 보름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정월 대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선비는 국수봉에 올라 살펴보니 과연 가지 없는 죽은 나무에 꽃이 피어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선비는 먼저 꿈에서 노인 시켰던 대로 하고는 얼른 그곳을 피하였다.
잠시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예쁜 아가씨는 간 곳이 없고 큰 구렁이와 지네가 나타나 뒤엉켜 싸우다가 결국 지네가 죽어 있었다. 선비가 다도 놀래어 정신이 얼떨떨하여 혼미한 중 비몽사몽간에 먼저 꿈에 나타났던 노인이 다시 나타나 하는 말이 심술을 부리던 지네는 죽었지만 이 고장은 지형이 지네형국이라 횡액을 막기 위해서는 윤달이 드는 해마다 지네 모양의 밧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하여 지네의 허리를 늘려놓고 지네의 혈을 뭇사람들이 밟아 지네의 기를 꺾어주어야 지네가 심술을 부리지 못하여 재난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꿈에서 노인이 선비에게 알려준 대로 하니 재난이 없는 살기 좋은 고장이 되었다 하며, 이때부터 줄다리기 행사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일제치하에서는 민심의 단결을 두려워한 일제의 갖은 박해와 압력으로 중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환이 또 바로 일어나, 다시 복원하여 행사는 더욱 활발하였다 한다. 근래에 이르러는 과학 문물에 밀려 이 행사가 사라져 가는 경향이었다.
1972년도에 73년 행사 계획을 의논한 자리에서 兩論이 있었다. 한편에서는 너무도 원시적이고 미신적이라는 이유로 행사 폐지론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역사성과 전통성을 제의, 有持論이 맞섰다. 결론이 내리지 않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결정할 것을 결의하였다. 모든 자료를 수집, 충청남도 문화재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地方文化財 35호로 지정을 받아 주민들은 더욱 활기를 되찾았다.
1976년에는 公州의 公山城에서 행한 백제 문화 행사에 참가했고, 1981년에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행한 國風81에 참가하였다. 1982년 6월1일 중앙문화재 위원회에 심사를 거쳐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으며 보유자 1人과 후보자도 지정되었다. 1985년도에는 매 음력 2월 1일자 中和節에 國守堂祭를 복원하여 小祭를 올렸고, 충청남도 대표 祝祭로 지정받았다. 윤년의 행사는 大祭로 하고, 매년 中和節의 행사는 小祭로 구분하여 축제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기지시리 줄다리기 주요 연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주요 연혁
-1973년 12월 26일 :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35호로 지정
-1979년 7월 3일 : 충청남도 지방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
-1982년 6월 1일 : 문화공보부 중요 무형문화재 75호로 지정
-1986년 11월 1일 : 문화공보부 352호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단체로 지정
3) 기지시리 줄다리기 관련 행사
① 국수봉 당제
기지시 줄다리기가 3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데 이 행사 첫날에 당제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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