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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1) 내원성이 포주성(抱州城 : 의주)과 함께 금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듬해 3월 요나라 장군이 고려에게 내원성과 포주성을 접수하라는 공문을 보내고 해로로 철수하자, 고려는 두 성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포주를 고쳐 의주방어사(義州防禦使)를 삼고, 압록강으로서 경계를 삼았다.
금나라가 요나라의 내원성과 포주성을 공격한 것은 고려와 요나라 사이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려가 두 성을 접수, 점령하는 것을 금나라가 쉽게 승인한 것은 고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내원성은 금나라가 점유해, 1183년(명종 13) 이 성을 내원군(來遠軍)으로 고쳤음을 고려에 통보해 왔고, 1217년(고종 4) 내원성이 고려의 영덕성(寧德城 : 의주)에 첩(牒)을 보내어 동진국(東眞國)의 포선만노(蒲鮮萬奴)와 거란의 군대를 서로 방어할 것을 약속해 오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내원성은 고려와 금나라 사이에서도 국방상외교상의 요지가 되었다.
19. 연양(延陽)
【歌詞 不傳 詩歌】
1) 고려시대의 작자, 연대 미상의 가요로 가사는 전하지 않고, \'고려사\'권71 삼국속악 고구려조에 그 내력만이 전하고 있다.
2) 평안북도 영변의 옛 이름인 연산부(延山府)의 지명이다.
3) 연양현에 한 충실한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자기 몸을 나무에 비유하여 말하기를 \"나무가 자신을 불태워 재가 되도록 직분을 다하듯이 나도 비록 재가 되어 버리더라도 열심히 일을 사양하지 않겠다.\"라고 읊었다.
4) 남에게 쓰여져 죽기를 무릅쓴다는 내용을 나무에 비유해 노래했다.
5) 신세타령조의 노동요가 충성을 내용으로 했기에 나라에서 채택했다고 보아진다.
6)나무가 불을 도우노라면, 그야 스스로를 해치는 화를 불러오지만, 긴요하게 쓰이는 것이나 다행으로 여기면서, 재가 되어 다 없어질망정 사양하지 않으리라고 한 대목은 노래말의 번역이라고 보아도 좋다. 남에게 쓰이는 바 되었다는 것은 노비의 신세로 떨어졌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7) 원래는 그런 처지에서 신세타령을 하면서 부른 노동요일 것 같은 이 노래를 충직하게 주인을 섬기는 사설이 들어 있다고 평가했음인지 고구려 때 나라에서 채택했을 듯하다.
8) 어느 시대나 사회에는 항상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작품들의 내용이 전해지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하면 문학은 그 사회의 일면을 반영한다는 말은 진리이다.
맺음말
결론적으로 상대시가라 함은 향가 출현 이전의 시가를 총칭하는 것으로, 이는 정치사회적으로 부족 연맹기, 문학사적으로는 신화시대, 혹은 신화시대에서 전설 민담 시대로의 이행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상대시가는 그 독자적인 미학을 중시하여 설정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시가의 원천을 파악하고자 하는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서 설정된 범주여서 연구 방법상 다소간 융통성이 다소간 허용된다.
어느 민족의 경우에나 마찬가지겠으나 우리 민족시가 발생국면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도 구체적 자료나 근거를 풍부하게 갖지 못하는 관계상 이에 대한 접근은 금방 난관에 부딪친다. 그러나 민족시가의 기원을 탐색한다는 것 자체가 연구자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며, 상대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상대시가는 대부분 서사 산맥속에 존재하는 까닭에 산문전승과의 긴밀한 관련성속에 논의가 전개되었는데, 연구초기에는 연구방법론을 무리하게 적응시킴으로써 텍스트해석에서 시가와 산문 그 어느 한쪽에 의미부여가 편중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으나 점차 균형 있는 의미 파악에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상대시가의 조사를 통해서 상대시가의 작품분석과 다양한 관점에서의 해석을 살펴
봄으로써 상대시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三國史記
韓國音樂硏究(李惠求, 國民音樂硏究會, 1957)
國文學通論(張德順, 新丘文化社, 1960)
한국고전시가론(鄭炳昱, 新丘文化社, 1979)
한국고시가의 거시적 탐구(김학성, 집문당, 1997)
新羅古樂再攷(李杜鉉, 新羅伽倻文化 1, 靑丘大學 新羅伽倻文化硏究院, 1966)
兜率歌再攷(金性彦, 東亞大 國語國文學論文集 6, 1985)
兜率歌와 新羅初期의 歌樂(許南春, 李佑成先生定年退職紀念 國語國文學論叢, 1990)
兜率歌(金承璨, 崔珍源博士 停年紀念論叢 古典詩歌의 理念과 表象,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韓國上古文學硏究(金承璨, 第一文化社, 1978)
海東異蹟, 靑鶴集, 朝鮮道敎史(李能和, 李鍾殷譯, 普成文化社, 1977)
교감역주 삼국유사 시공사, 하정룡
새로있는 삼국사기 동방미디어, 정구북 편전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리상호 옮김,1999
삼국유사, 이민수 옮김, 을유문화사, 1994
청소년이 단숨에 읽는 삼국유사, 2002, 역주 차평일, 동해출판사
삼국유사, 을유 문화사, 펴낸이 정진숙, 옮긴이 김원중, 2002
삼국사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교육원,아름출판공사,1959
삼국사기, 한국자유교양추진회, 1970
삼국유사이야기, 한국자유교육협회, 김창수 엮음, 1969
고전시가강독, 예지각, 김종원. 1996
고전시가선, 김기동. 박기준, 교학연구사 1984
한국의 고전시가, 임기중, 이회문화사
향가와 고려가요, 김완진, 서울대학교출판부
정읍사 풀이에 따른 가설, 한국언어문학, 김동기,1973
고가요집, 한국문학사, 홍기문, 1996
북방문학자료(중국연변) 고대가요 고대한시,이해산, 1991, 대제각
지방문학사, 조동일, 서울대학교출판부,2003
한국고전시가연구, 이규호, 새문사, 2004
중보고려시대의가요, 이성주저, 민속원, 1998
전북문학기행, 이종근, 신아출판사, 1997
http://www.seelotus.com
http://www.koreandb.net
http://kch64.gnfh.hs.k
http://www.naver.com 백과사전
http://www.yahoo.co.kr 백과사전
http://www.empas.com 백과사전
http://www.daum.net 백과사전
<참고>
정읍사 방문후 관련사진 첨부
고려사악지에 나온 정읍사, 방등산가, 지리산가 등 스캔 첨부
금나라가 요나라의 내원성과 포주성을 공격한 것은 고려와 요나라 사이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려가 두 성을 접수, 점령하는 것을 금나라가 쉽게 승인한 것은 고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내원성은 금나라가 점유해, 1183년(명종 13) 이 성을 내원군(來遠軍)으로 고쳤음을 고려에 통보해 왔고, 1217년(고종 4) 내원성이 고려의 영덕성(寧德城 : 의주)에 첩(牒)을 보내어 동진국(東眞國)의 포선만노(蒲鮮萬奴)와 거란의 군대를 서로 방어할 것을 약속해 오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내원성은 고려와 금나라 사이에서도 국방상외교상의 요지가 되었다.
19. 연양(延陽)
【歌詞 不傳 詩歌】
1) 고려시대의 작자, 연대 미상의 가요로 가사는 전하지 않고, \'고려사\'권71 삼국속악 고구려조에 그 내력만이 전하고 있다.
2) 평안북도 영변의 옛 이름인 연산부(延山府)의 지명이다.
3) 연양현에 한 충실한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자기 몸을 나무에 비유하여 말하기를 \"나무가 자신을 불태워 재가 되도록 직분을 다하듯이 나도 비록 재가 되어 버리더라도 열심히 일을 사양하지 않겠다.\"라고 읊었다.
4) 남에게 쓰여져 죽기를 무릅쓴다는 내용을 나무에 비유해 노래했다.
5) 신세타령조의 노동요가 충성을 내용으로 했기에 나라에서 채택했다고 보아진다.
6)나무가 불을 도우노라면, 그야 스스로를 해치는 화를 불러오지만, 긴요하게 쓰이는 것이나 다행으로 여기면서, 재가 되어 다 없어질망정 사양하지 않으리라고 한 대목은 노래말의 번역이라고 보아도 좋다. 남에게 쓰이는 바 되었다는 것은 노비의 신세로 떨어졌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7) 원래는 그런 처지에서 신세타령을 하면서 부른 노동요일 것 같은 이 노래를 충직하게 주인을 섬기는 사설이 들어 있다고 평가했음인지 고구려 때 나라에서 채택했을 듯하다.
8) 어느 시대나 사회에는 항상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작품들의 내용이 전해지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하면 문학은 그 사회의 일면을 반영한다는 말은 진리이다.
맺음말
결론적으로 상대시가라 함은 향가 출현 이전의 시가를 총칭하는 것으로, 이는 정치사회적으로 부족 연맹기, 문학사적으로는 신화시대, 혹은 신화시대에서 전설 민담 시대로의 이행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상대시가는 그 독자적인 미학을 중시하여 설정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시가의 원천을 파악하고자 하는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서 설정된 범주여서 연구 방법상 다소간 융통성이 다소간 허용된다.
어느 민족의 경우에나 마찬가지겠으나 우리 민족시가 발생국면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도 구체적 자료나 근거를 풍부하게 갖지 못하는 관계상 이에 대한 접근은 금방 난관에 부딪친다. 그러나 민족시가의 기원을 탐색한다는 것 자체가 연구자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며, 상대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상대시가는 대부분 서사 산맥속에 존재하는 까닭에 산문전승과의 긴밀한 관련성속에 논의가 전개되었는데, 연구초기에는 연구방법론을 무리하게 적응시킴으로써 텍스트해석에서 시가와 산문 그 어느 한쪽에 의미부여가 편중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으나 점차 균형 있는 의미 파악에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상대시가의 조사를 통해서 상대시가의 작품분석과 다양한 관점에서의 해석을 살펴
봄으로써 상대시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三國史記
韓國音樂硏究(李惠求, 國民音樂硏究會, 1957)
國文學通論(張德順, 新丘文化社, 1960)
한국고전시가론(鄭炳昱, 新丘文化社, 1979)
한국고시가의 거시적 탐구(김학성, 집문당, 1997)
新羅古樂再攷(李杜鉉, 新羅伽倻文化 1, 靑丘大學 新羅伽倻文化硏究院, 1966)
兜率歌再攷(金性彦, 東亞大 國語國文學論文集 6, 1985)
兜率歌와 新羅初期의 歌樂(許南春, 李佑成先生定年退職紀念 國語國文學論叢, 1990)
兜率歌(金承璨, 崔珍源博士 停年紀念論叢 古典詩歌의 理念과 表象,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韓國上古文學硏究(金承璨, 第一文化社, 1978)
海東異蹟, 靑鶴集, 朝鮮道敎史(李能和, 李鍾殷譯, 普成文化社, 1977)
교감역주 삼국유사 시공사, 하정룡
새로있는 삼국사기 동방미디어, 정구북 편전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리상호 옮김,1999
삼국유사, 이민수 옮김, 을유문화사, 1994
청소년이 단숨에 읽는 삼국유사, 2002, 역주 차평일, 동해출판사
삼국유사, 을유 문화사, 펴낸이 정진숙, 옮긴이 김원중, 2002
삼국사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교육원,아름출판공사,1959
삼국사기, 한국자유교양추진회, 1970
삼국유사이야기, 한국자유교육협회, 김창수 엮음, 1969
고전시가강독, 예지각, 김종원. 1996
고전시가선, 김기동. 박기준, 교학연구사 1984
한국의 고전시가, 임기중, 이회문화사
향가와 고려가요, 김완진, 서울대학교출판부
정읍사 풀이에 따른 가설, 한국언어문학, 김동기,1973
고가요집, 한국문학사, 홍기문, 1996
북방문학자료(중국연변) 고대가요 고대한시,이해산, 1991, 대제각
지방문학사, 조동일, 서울대학교출판부,2003
한국고전시가연구, 이규호, 새문사, 2004
중보고려시대의가요, 이성주저, 민속원, 1998
전북문학기행, 이종근, 신아출판사, 1997
http://www.seelotus.com
http://www.koreandb.net
http://kch64.gnfh.hs.k
http://www.naver.com 백과사전
http://www.yahoo.co.kr 백과사전
http://www.empas.com 백과사전
http://www.daum.net 백과사전
<참고>
정읍사 방문후 관련사진 첨부
고려사악지에 나온 정읍사, 방등산가, 지리산가 등 스캔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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