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을 수 있다.
자기를 아는 것이 철학의 주된 목적이라면, 신체적 차원의 지식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의 중대한 목적 중의 하나는 바른 행동이다. 바르게 행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력은 몸의 효력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신체적 경험을 탐구하고 연마함으로써 의지를 행위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효율적 의지력의 실제적 작용을 제대로 획득할 수 있다. 철학이 행복의 추구와 더 나은 삶을 과제로 삼는다면 즐거움의 요체이자 매체로서의 몸에 대한 미학은 더욱 가치 있다. 사유가 신체의 건강에 의존하며 또한 근육의 긴장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자연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각자가 ‘실천적 행위자’로서의 삶을 사는 실행적인 예술가이다. 미학은 더 이상 이론적 탐구를 자행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실천을 끌어내는 철학인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은 감각적 습관을 개선하는 동시에 실천을 중시하는 정신을 함양하는 훈련을 통해 ‘나’와 ‘타자’와의 관계, ‘나’와 ‘환경’과의 관계성을 터득하여 미적 경험과 가치의 개념을 습득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도덕적인 완성을 지향하는 삶을 살게 된다.
현대사회는 불특정 다수로 형성된 대중사회, 즉 익명성의 사회이며, 현대사회는 인간의 개체성과 주체성을 말살하고 획일화된 일반법칙을 강요한다.
바로 이러한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나를 상실한 상태이며, 무조건적으로 무한경쟁을 강요하고 배금주의의 장점만을 보여주는 작금의 세태 속에서 이를 위한 성찰의 기회조차 요원한 탓에 본질적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나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갈망하고, 인간 본질적인 주체성과 개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 바로 프래그머티즘이 추구하는 기본적 주조음이라 할 수 있다. 프래그머티즘의 관점은 과학기술이 발달한 정보화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발생한 도덕적 해이와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고 전인적 인간을 추구하면서, 정보와 과학, 기술만을 중시하며 인간을 소외시키던 사회를 벗어나 인간중심의 정보사회를 구축하여야 하는 실존적 과제가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서도 변함없는 과제로 인간의 눈앞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시금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조금씩 주류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열린 교육’과 각종 ‘대안 교육’도 그 이론적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결국 프래그머티즘의 주장과 만나게 됨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인간의 본질을 찾고 자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행위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지만, 특히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이루어진 기나긴 억압과 혼란의 역사에서 자유와 선택, 책임, 자율성, 주체성, 정체성 등을 강조하는 프래그머티즘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볼 때 현실적으로 필요한 사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프래그머티즘을 학문만을 위한 학문인 철학 사조로 평가절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 현대인을 이끌어 갈 진정한 예술적 행위를 위한 해답을 도출하여야 할 것이다.
3. 결론
프래그머티즘에의하면, 예술적인활동을통해주어진상황에대한참여와개입, 상호작용이없으면배움이일어나지않는다. 어쩌면 삶과결합한예술은이러한배움그자체인지도모른다. 현대사회를살아가는우리가주목해야할예술적대안은바로우리 자신의삶이며, 우리는 예술과 삶의 일치를 위해 일상을살아가는보편적인간과그의삶에내재한아름다움을집중적으로탐구하는삶의미학을전개해나가야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은자체로예술적으로가꾸어져야하는\'퍼포먼스\'인것이다.
4. 참고자료 및 출처
아키드림 건축사사무소, 건축가 칼럼 중 ‘건축철학, 가우디’ 참조
슈스터만, ‘삶의 미학’(이학사, 2012) 참조
자기를 아는 것이 철학의 주된 목적이라면, 신체적 차원의 지식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의 중대한 목적 중의 하나는 바른 행동이다. 바르게 행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력은 몸의 효력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신체적 경험을 탐구하고 연마함으로써 의지를 행위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효율적 의지력의 실제적 작용을 제대로 획득할 수 있다. 철학이 행복의 추구와 더 나은 삶을 과제로 삼는다면 즐거움의 요체이자 매체로서의 몸에 대한 미학은 더욱 가치 있다. 사유가 신체의 건강에 의존하며 또한 근육의 긴장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자연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각자가 ‘실천적 행위자’로서의 삶을 사는 실행적인 예술가이다. 미학은 더 이상 이론적 탐구를 자행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실천을 끌어내는 철학인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은 감각적 습관을 개선하는 동시에 실천을 중시하는 정신을 함양하는 훈련을 통해 ‘나’와 ‘타자’와의 관계, ‘나’와 ‘환경’과의 관계성을 터득하여 미적 경험과 가치의 개념을 습득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도덕적인 완성을 지향하는 삶을 살게 된다.
현대사회는 불특정 다수로 형성된 대중사회, 즉 익명성의 사회이며, 현대사회는 인간의 개체성과 주체성을 말살하고 획일화된 일반법칙을 강요한다.
바로 이러한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나를 상실한 상태이며, 무조건적으로 무한경쟁을 강요하고 배금주의의 장점만을 보여주는 작금의 세태 속에서 이를 위한 성찰의 기회조차 요원한 탓에 본질적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나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갈망하고, 인간 본질적인 주체성과 개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 바로 프래그머티즘이 추구하는 기본적 주조음이라 할 수 있다. 프래그머티즘의 관점은 과학기술이 발달한 정보화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발생한 도덕적 해이와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고 전인적 인간을 추구하면서, 정보와 과학, 기술만을 중시하며 인간을 소외시키던 사회를 벗어나 인간중심의 정보사회를 구축하여야 하는 실존적 과제가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서도 변함없는 과제로 인간의 눈앞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시금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조금씩 주류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열린 교육’과 각종 ‘대안 교육’도 그 이론적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결국 프래그머티즘의 주장과 만나게 됨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인간의 본질을 찾고 자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행위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지만, 특히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이루어진 기나긴 억압과 혼란의 역사에서 자유와 선택, 책임, 자율성, 주체성, 정체성 등을 강조하는 프래그머티즘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볼 때 현실적으로 필요한 사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프래그머티즘을 학문만을 위한 학문인 철학 사조로 평가절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 현대인을 이끌어 갈 진정한 예술적 행위를 위한 해답을 도출하여야 할 것이다.
3. 결론
프래그머티즘에의하면, 예술적인활동을통해주어진상황에대한참여와개입, 상호작용이없으면배움이일어나지않는다. 어쩌면 삶과결합한예술은이러한배움그자체인지도모른다. 현대사회를살아가는우리가주목해야할예술적대안은바로우리 자신의삶이며, 우리는 예술과 삶의 일치를 위해 일상을살아가는보편적인간과그의삶에내재한아름다움을집중적으로탐구하는삶의미학을전개해나가야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은자체로예술적으로가꾸어져야하는\'퍼포먼스\'인것이다.
4. 참고자료 및 출처
아키드림 건축사사무소, 건축가 칼럼 중 ‘건축철학, 가우디’ 참조
슈스터만, ‘삶의 미학’(이학사, 20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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