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민주주의와 교육 요약
2. 민주주의와 교육에 대한 비판적 이해
2. 민주주의와 교육에 대한 비판적 이해
본문내용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언제나 어떤 구체적 사태에 유용하고 그와 비슷한 사태에서도 유용한 가치를 가진다면 그것의 가치는 내재적으로 유용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재적 가치를 이런 식으로 조금 비약해서 생각한다면 듀이의 내재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를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그래도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내재적 가치를 교과에 적용하면 그것만으로도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학생은 어떤 특정한 교과-수학이라고 하자-에 대한 내재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그 학생은 그것만으로도 학습에 강력한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학생에게 수학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가치를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하는 점에서도 혼란이 발생한다. 예컨대 수학이라는 교과목이 충분히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학생은 수학보다는 음악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교수는 학생에게 음악의 악보를 위해서는 수학의 원리를 알아야 더 쉽게 이해하고 외울 수 있다고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화학이라면 이러한 설득이 가능한가? 아무리 완곡하게 생각해도 음악과 화학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교수는 학생에게 화학이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득하거나-이 경우엔 학생이 그것에 인정하지 않으므로 포기해야 한다- 학생에게 유용하다고 설득해야 하는가? 만약 학생이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설득한다면 교과목에 대한 가치 부여는 학생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교수 자체를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학습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것은 단지 그것자체로 좋기 때문에 동기가 발생한다던가, 어떻게해서든 실제에 유용하니까 좋다라고 정당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지만-본문에서 역자가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는- 듀이의 견해는 상당히 매력 있다. 이론과 실제의 구분은 계층 구분을 영구히 시킨다. 라는 것이다. 계층의 구분은 역사적으로 지속된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 지배 계급의 지배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보존하고 재교육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많은 실천 철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듀이의 견해는 나름대로 식상할 수 있는 실천 철학의 교육 이론에 조금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어째서 교육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해주는가. 이에 대한 진단으로 듀이는 교과목의 분열과 그것에 대한 독립적 가치 인정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며칠 전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네 상대에는 비서학과 같은 매우 세분화된 전문학과가 많이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비단 그 학교만이 아니라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이고 중고교도 똑같은 이야기이다. 이러한 교과목의 세분화에 대해 지금까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러한 교과목의 세분화가 사회계층의 분열을 영속시킨다는 듀이의 견해는 상당히 생소하고 흥미롭다. 물론 그 이유로 듀이는 이러한 교과목의 분열이 서로 위계를 쌓아가고, 교류를 차단시키는 것 때문에 계층을 분열한다고 하였지만 어쨌든 이것은 아마도 사회철학의 또 다른 진단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수-학습자 관계에서 듀이가 강조한 학습자의 능동성에 매우 동감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역시도 학습이란 소수의 학습자 집단 혹은 학습자 스스로가 목표를 설정하고 능동적으로 활동하며, 교수란 이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학습자-학습자를 연결하고 학습자-목표를 연결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람시는 이것은 세미나라고 불렀지만 듀이의 실험과 관찰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써도 무방할 것이다.
내재적 가치를 교과에 적용하면 그것만으로도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학생은 어떤 특정한 교과-수학이라고 하자-에 대한 내재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그 학생은 그것만으로도 학습에 강력한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학생에게 수학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가치를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하는 점에서도 혼란이 발생한다. 예컨대 수학이라는 교과목이 충분히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학생은 수학보다는 음악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교수는 학생에게 음악의 악보를 위해서는 수학의 원리를 알아야 더 쉽게 이해하고 외울 수 있다고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화학이라면 이러한 설득이 가능한가? 아무리 완곡하게 생각해도 음악과 화학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교수는 학생에게 화학이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득하거나-이 경우엔 학생이 그것에 인정하지 않으므로 포기해야 한다- 학생에게 유용하다고 설득해야 하는가? 만약 학생이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설득한다면 교과목에 대한 가치 부여는 학생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교수 자체를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학습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것은 단지 그것자체로 좋기 때문에 동기가 발생한다던가, 어떻게해서든 실제에 유용하니까 좋다라고 정당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지만-본문에서 역자가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는- 듀이의 견해는 상당히 매력 있다. 이론과 실제의 구분은 계층 구분을 영구히 시킨다. 라는 것이다. 계층의 구분은 역사적으로 지속된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 지배 계급의 지배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보존하고 재교육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많은 실천 철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듀이의 견해는 나름대로 식상할 수 있는 실천 철학의 교육 이론에 조금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어째서 교육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해주는가. 이에 대한 진단으로 듀이는 교과목의 분열과 그것에 대한 독립적 가치 인정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며칠 전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네 상대에는 비서학과 같은 매우 세분화된 전문학과가 많이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비단 그 학교만이 아니라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이고 중고교도 똑같은 이야기이다. 이러한 교과목의 세분화에 대해 지금까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러한 교과목의 세분화가 사회계층의 분열을 영속시킨다는 듀이의 견해는 상당히 생소하고 흥미롭다. 물론 그 이유로 듀이는 이러한 교과목의 분열이 서로 위계를 쌓아가고, 교류를 차단시키는 것 때문에 계층을 분열한다고 하였지만 어쨌든 이것은 아마도 사회철학의 또 다른 진단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수-학습자 관계에서 듀이가 강조한 학습자의 능동성에 매우 동감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역시도 학습이란 소수의 학습자 집단 혹은 학습자 스스로가 목표를 설정하고 능동적으로 활동하며, 교수란 이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학습자-학습자를 연결하고 학습자-목표를 연결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람시는 이것은 세미나라고 불렀지만 듀이의 실험과 관찰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써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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