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아니한가(傢), 아름다운가(傢) - 아름다운 가족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 연애할 땐 Yes 결혼하면 No 가 되는 이유 / 이혼해도 될까요? - 만남 & 떠남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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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름답지 아니한가(傢), 아름다운가(傢) - 아름다운 가족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 연애할 땐 Yes 결혼하면 No 가 되는 이유 / 이혼해도 될까요? - 만남 & 떠남 을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아름답지 아니한가(傢), 아름다운가(傢)
1) 들어가는 말
2) 아름다운 가족 - 내용분석
3) 나가는 말 - 평가 및 느낀점
2.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1) 들어가는 말
2) 연애할 땐 YES 결혼하면 NO 가되는 이유- 내용분석
3) 나가는 말 - 평가 및 느낀점
3. 이혼해도 될까요?
1) 들어가는 말
2) 만남 & 떠남- 내용분석
3) 나가는 말 - 평가 및 느낀점

본문내용

경우 간음의 비난을 면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처럼 성서시대의 이혼은 모세의 율법에 근거해서도 당연시 받아들여졌다.
예수는 자신이 결혼에 대한 새로운 법이나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혼문제에 대해 예수에게 질문했던 바리새인들에 대한 그의 답변은(막 10:2) 완전한 결혼의 이상이 신성한 결혼의 근원적인 제도를 기록하는 것으로 고백하고 있는 창세기의 구절들을 충분히 선언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결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발견할 수 없고 단지 이혼문제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볼 수 있는데, 예수는 이혼 자체를 금하거나 이혼 금지법을 세운 것이 아니다. 예수는 당시 남자들이 율법을 마음대로 이용하여 아내를 버리는 것을 금했다. 아내를 버리는 유대 남자들의 불의를 폭로하고 율법이 본래 요구한 하나님의 의를 올바로 세우라는데 그 초점을 둔 것이다.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은 예수에게 책(責)잡을 증거를 위해 이러한 질문을 던졌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의 공적인 유대교에서는 거의 모든 경우의 이혼이 가능했으며 이혼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었고, 율법이 가르치는 바 이혼법을 제시하는 부분이 있었으므로 예수는 율법에 항거하도록 도전을 받게 된다.
헤롯안티파스가 지배하던 ‘베레아’ 라는 지역에서는 혼인과 이혼의 문제가 첨예한 관심사였고 잘못된 이혼과 혼인의 모습을 세례요한에 의해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예민한 문제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질문함으로서 예수의 답변에 율법과 배치되는 점을 발견하여 예수를 공격하기 위한 증거로 삼고자 하였던 것이다.
예수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한다. 대신 바리새인에게 그들의 최종 권위가 되는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율법적인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예수의 질문은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미리 간파하고 바리새인들이 자신 있게 근거로 제공하는 율법으로부터 답변을 시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예수는 율법을 악의 적으로 왜곡시키는 점을 폭로하고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와 결혼과 이혼에 대한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대답함으로써 그들의 입장을 고수한다. 미슈나 규정에 의하면 이혼증서는 무엇보다도 이제 아내가 자유로워졌으며 다른 누구하고라도 결혼 할 수 있다는 남편의 선언을 포함해야 한다. 이 증서를 건네줌으로써 일단 이혼이 성립되면 이 증서를 회수한다고 해도 부부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혼에 대한 모세의 허락은 여성의 권위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모세는 적극적인 입장에서 이혼을 명령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완악한 생각과 행동들로 인하여 유린당하는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혼법이라는 보호 장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된다’라는 말에서는 그 당시의 가부장적인 씨족 유대와 보호를 떠나 독립된 인격체로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맺어지는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를 이야기 한다. 여기서 ‘한 몸’(one flesh)이 된다는 말은 완전한 하나를 의미하는 셈어적(Semitic)표현법으로서 단순한 육체의 결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에 있어서 육체적 합일은 물론 중요하지만 영혼과 정신의 합일이 배제된 육체적인 결합만을 온전한 결혼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은 육체와 영혼이 혼연일체가 되어 전 인격적인 결합에 있다고 본다.
또한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은 가정을 이룬다는 말이 되는데 가정이란 남녀 두 사람만의 결합체라는 좁은 의미보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념하는 사랑의 공동체요,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계속성을 유지하는 생명전파의 건전한 기관이자,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고 그 통치의 확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거룩한 선교적 공동 운명체라는 넓은 의미까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본래 하나님께서 결혼을 통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들을 올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정으로 원하시는 하나 된 결혼생활의 모습인데 오늘날의 많은 부부들이 이러한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는데서 부터가 이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홍교수님의 주장이다. 이혼은 단순히 법률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할 수는 없다. 따라서 결혼생활을 하는 많은 부부들이 암묵적인 이혼 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잣대로 법률적 이혼의 절차를 밟는 사람들에게 죄인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깨어진 부부관계를 제도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에 부로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미 나누어진 관계니 이혼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위험한 것이라고 홍교수님은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 부부관계의 치유 및 회복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제도나 법에 의해서 평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의 관계의 질에 의해서 평가하는 것이 기독교적 입장인 것이다. 개인적인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결혼 하는 태도는 물론 잘못이지만 지나친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무조건 이혼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부부관계들에 있어서 가능한 한 파괴적인 요소들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요소들을 양육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3. 나가는 말 - 평가 및 느낀점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의 이혼율이 가히 세계최고의 수준이며 부정한 성관계가 난무한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결혼의 상대자를 쉽게 포기해 버리려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결혼에는 더욱 더 고귀하고 참된 또 다른 일면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서는 결혼이 남녀가 서로를 속박하는 인간적인 법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영구적인 축복의 수단이 되는 것 이라고 이야기 한다. 진정한 결혼은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또한 축복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신성하게 제정된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고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인간의 본질이 가장 충만한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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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0.06.25
  • 저작시기2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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