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부 새
2부 밤
3부 불꽃
2부 밤
3부 불꽃
본문내용
진주 이송자 명부 사본을 대구형무소에 요청하자는 의견도 인선의 엄마가 낸 거였다고.
인선의 어머니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십 오년 형기를 마치고 나온 아버지를 어느 여름 처음 만난다. 혹시라도 마주쳤을지도 모를 외삼촌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공유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3부 불꽃
2부에서의 인선 어머니의 유해 찾기 여정을 거쳐, 이 소설의 3부는 어머니의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인선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그린다. 인선은 어머니의 치매투병 기간, 그리고 사후의 시간들을 통해 ‘평생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못 다한 프로젝트를 자신이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년 전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경하가 제안한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바닷가 검은 나무들의 숲에 말린 통나무를 깎아 만든 인간형상의 등신대를 세우겠다는 것.
섬으로 돌아온 뒤 가끔 그날을 생각했어. 잠들어 있던 내 입에 손가락을 물리고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엄마는 아이처럼 울었어. 짜고 끈끈한 그 손가락을 억지로 빼내지 못하고 나는 견뎠어. 장사처럼 힘이 세진 엄마가 숨을 못 쉬도록 나를 껴안을 때는 다른 길이 없어서 마주 껴안았어.(312-313)
치매를 앓은 인선의 어머니는 정신이 혼탁해질 때면 어떤 일관된 착란 증세를 보인다. 인선을 죽어가는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언니라고 믿을 때도 많았다. 어떨 때는 낯선 사람으로 여겼다. 자신을 구하러 온 모르는 어른으로. 그래서 밤새 잠도 자지 않으며 인선의 손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엄마와 그것을 옆에서 돌보는 인선. 인선은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그 무렵부터 인선은 경하와의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생각한다.
그게 시작이었어.
다음날부터 세천리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 증언을 남긴 노인이 살았던 바닷가 집에 다녀온 뒤로는, 섬에서 수장된 수천 명의 시신이 해류를 타고 쓰시마섬으로 떠내려갔으리라고 추정하는 논문을 읽었어. 엄마의 옷장 서랍에서 외삼촌에 관한 자료들을 발견한 건, 다음 차례로 쓰시마섬에 가야 할지, 칠십년 전 해안에 밀려왔거나 도중에 가라앉은 유해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막막하게 생각하던 즈음이었어.
무거운 배의 키를 돌리듯 그때 방향을 틀었어. 엄마가 모은 자료들의 빈자리에 내가 새로 찾은 것들을 메꿔 넣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어. 1960년 당시 엄마가 이 집과 대와 경산을 오가며 몸을 실었을 배편과 버스, 기차의 경로를 추측하고 시간을 계산하면서는 내사 서서히 미쳐가고 있다고 느꼈어.
낮에는 공방에서 나무를 깎고, 밤이며 안채로 돌아와 구술 증언 자료들을 읽었어. 자료마다 다른 사망자들의 데이터를 대조해 확정했어. 오십 년 봉인이 해제된 후 접근 가능해진 미군 기록물들과 당시 언론 보도, 1948년과 1949년에 재판 없이 수감된 제주 수형인 명부와 보도연맹 학살 사이에서 사건들을 복기했어. 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 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 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 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315-316)
그 겨울 삼 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제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 오 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 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ㅓ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뚫인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 십 년 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317-318)
그렇게 인선의 프로젝트는 시작된 것이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줄곧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족사에 얽힌 비극을 알아가게 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인선에게는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해 주는 친구 경하가 있다.
꿈이란 건 무서운 거야.
소리를 낮춰 나는 말한다.
아니, 수치스러운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
이상한 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다.
밤마다 악몽이 내 생명을 도굴해간 걸 말이야. 살아 있는 누구도 더 이상 곁에 남지 않을 걸 말이야.
아닌데, 하고 인선이 내 말을 끊고 들어온다.
아무도 남지 않은 게 아니야, 너한테 지금.
그녀의 어조가 단호해서 마치 화가 난 것 같았는데, 물기 어린 눈이 돌연히 번쩍이며 내 눈을 꿰뚫는다.
...... 내가 있잖아. (237-238)
K시의 학살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경하, 그 후로 악몽에 시달리며 우울과 죽음충동에 시달리는 경하, 그 일을 계기로 인선에게 학살을 기억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경하. 그리고 새를 살려야 한다는 인선의 부탁에 온갖 어려움을 뚫고 한달음에 서울에서 제주로 날아가 준 경하. 누군가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공감하고 기억하며 나아가 연대해 준다는 것에, 인선과 경하는 서로의 존재에 용기를 얻는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 역사의 아픔을 기억한다는 것을 결국 이러한 공감과 연대에서 출발할 것이다.
인선의 어머니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십 오년 형기를 마치고 나온 아버지를 어느 여름 처음 만난다. 혹시라도 마주쳤을지도 모를 외삼촌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공유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3부 불꽃
2부에서의 인선 어머니의 유해 찾기 여정을 거쳐, 이 소설의 3부는 어머니의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인선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그린다. 인선은 어머니의 치매투병 기간, 그리고 사후의 시간들을 통해 ‘평생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못 다한 프로젝트를 자신이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년 전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경하가 제안한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바닷가 검은 나무들의 숲에 말린 통나무를 깎아 만든 인간형상의 등신대를 세우겠다는 것.
섬으로 돌아온 뒤 가끔 그날을 생각했어. 잠들어 있던 내 입에 손가락을 물리고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엄마는 아이처럼 울었어. 짜고 끈끈한 그 손가락을 억지로 빼내지 못하고 나는 견뎠어. 장사처럼 힘이 세진 엄마가 숨을 못 쉬도록 나를 껴안을 때는 다른 길이 없어서 마주 껴안았어.(312-313)
치매를 앓은 인선의 어머니는 정신이 혼탁해질 때면 어떤 일관된 착란 증세를 보인다. 인선을 죽어가는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언니라고 믿을 때도 많았다. 어떨 때는 낯선 사람으로 여겼다. 자신을 구하러 온 모르는 어른으로. 그래서 밤새 잠도 자지 않으며 인선의 손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엄마와 그것을 옆에서 돌보는 인선. 인선은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그 무렵부터 인선은 경하와의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생각한다.
그게 시작이었어.
다음날부터 세천리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 증언을 남긴 노인이 살았던 바닷가 집에 다녀온 뒤로는, 섬에서 수장된 수천 명의 시신이 해류를 타고 쓰시마섬으로 떠내려갔으리라고 추정하는 논문을 읽었어. 엄마의 옷장 서랍에서 외삼촌에 관한 자료들을 발견한 건, 다음 차례로 쓰시마섬에 가야 할지, 칠십년 전 해안에 밀려왔거나 도중에 가라앉은 유해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막막하게 생각하던 즈음이었어.
무거운 배의 키를 돌리듯 그때 방향을 틀었어. 엄마가 모은 자료들의 빈자리에 내가 새로 찾은 것들을 메꿔 넣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어. 1960년 당시 엄마가 이 집과 대와 경산을 오가며 몸을 실었을 배편과 버스, 기차의 경로를 추측하고 시간을 계산하면서는 내사 서서히 미쳐가고 있다고 느꼈어.
낮에는 공방에서 나무를 깎고, 밤이며 안채로 돌아와 구술 증언 자료들을 읽었어. 자료마다 다른 사망자들의 데이터를 대조해 확정했어. 오십 년 봉인이 해제된 후 접근 가능해진 미군 기록물들과 당시 언론 보도, 1948년과 1949년에 재판 없이 수감된 제주 수형인 명부와 보도연맹 학살 사이에서 사건들을 복기했어. 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 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 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 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315-316)
그 겨울 삼 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제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 오 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 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ㅓ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뚫인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 십 년 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317-318)
그렇게 인선의 프로젝트는 시작된 것이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줄곧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족사에 얽힌 비극을 알아가게 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인선에게는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해 주는 친구 경하가 있다.
꿈이란 건 무서운 거야.
소리를 낮춰 나는 말한다.
아니, 수치스러운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
이상한 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다.
밤마다 악몽이 내 생명을 도굴해간 걸 말이야. 살아 있는 누구도 더 이상 곁에 남지 않을 걸 말이야.
아닌데, 하고 인선이 내 말을 끊고 들어온다.
아무도 남지 않은 게 아니야, 너한테 지금.
그녀의 어조가 단호해서 마치 화가 난 것 같았는데, 물기 어린 눈이 돌연히 번쩍이며 내 눈을 꿰뚫는다.
...... 내가 있잖아. (237-238)
K시의 학살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경하, 그 후로 악몽에 시달리며 우울과 죽음충동에 시달리는 경하, 그 일을 계기로 인선에게 학살을 기억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경하. 그리고 새를 살려야 한다는 인선의 부탁에 온갖 어려움을 뚫고 한달음에 서울에서 제주로 날아가 준 경하. 누군가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공감하고 기억하며 나아가 연대해 준다는 것에, 인선과 경하는 서로의 존재에 용기를 얻는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 역사의 아픔을 기억한다는 것을 결국 이러한 공감과 연대에서 출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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