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초기의 이탈리아와 로마 왕정
2. 초기의 공화국
3. 카르타고와의 숙명적인 전쟁
4. 공화정 말기의 사회 투쟁
5. 변화된 로마
6. 원수정 시대 또는 제정 정치
7. 원수정 시대의 문화
8. 로마법
9. 서기 3세기의 위기(180-284)
10. 로마 쇠퇴의 원인
2. 초기의 공화국
3. 카르타고와의 숙명적인 전쟁
4. 공화정 말기의 사회 투쟁
5. 변화된 로마
6. 원수정 시대 또는 제정 정치
7. 원수정 시대의 문화
8. 로마법
9. 서기 3세기의 위기(180-284)
10. 로마 쇠퇴의 원인
본문내용
리스인들은 연극을 즐긴 반면, 로마인은 인간 도살극에 지나지 않은 검투 경기를 즐김
미트라 숭배와 기독교의 전파
원수정 시대의 로마인은 공화정 시대에 비해 구원 종교에 대해 한층 깊은 관심을 보임
미트라 숭배는 지모신 및 세라파스 숭배자들을 다수 흡수하여 수천 명의 신도들을 얻음
서기 40년 경 로마에 처음으로 기독교인이 등장
기독교는 서서히 성장하여 마침 내 미트라 숭배를 제치고 구원 종교들 가운데 가장 널리 전파
8. 로마법
로마법의 초기 발전
로마가 후대에 남긴 최대의 유산 가운데 하나가 로마법
로마법은 대략 기원전 450년경 12표법이 공표되면서부터 시작해서 완만히 발전해 온 결과물
원수정 시대의 로마법
로마법의 발달이 절정에 달한 때는 원수정 시대
아우구스투스 이래의 로마 황제들이 탁월한 일부 법학자들에게 법정에서 심리 중인 사건의 법률 문제에 관해 그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
이는 로마법의 근간으로 수용
로마법의 세 갈래
법학자들의 영향 하에서 발전을 거듭한 로마법은 시민법, 만민법, 자연법 등 세 갈래로 구분
시민법이란 로마 및 그 시민들에 대한 법
만민법은 민족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법률
만민법은 시민법보다 우월하지는 않았지만 제국의 외래 거주자들에게 적용됨으로서 시민법을 보완
자연법
로마법에서 가장 흥미롭고도 중요한 갈래는 자연법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평등하며, 정부도 침범할 수 없는 일정한 기본 권리를 가짐
자연법은 국가 그 자체보다도 우위에 놓여 있으며, 그것을 위배하는 모든 지배자는 폭군으로 전락
9. 서기 3세기의 위기(180-284)
제위 계승 문제
서기 180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하면서 자애로운 황제의 지배시대는 막을 내림
자애로운 황제의 지배시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아들이나 친인척이 아닌 유능한 젊은이를 골라 제위를 계승했기 때문
그러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무능한 패륜아인 자신의 아들 코모두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줌
제위에 오른 코모두스는 사악한 취미에 탐닉하고 원로원을 공공연히 경멸하고, 잔인한 지배를 이어가다 결국 서기 192년에 궁정 파벌에 의해 교살당함
코모두스의 뒤를 이을 분명한 후계자가 없었기에 그 후의 사태는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황제 자리를 향한 군사령관들의 내란이 지속
원로원이 지닌 이론상의 권리마저도 묵살한 채 노골적인 군사독재를 자행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
서기 235년에서 284년까지 무려 26명의 군인 황제들이 등장했으며 이들 중 25명이 폭력에 의해 살해
내란의 결과
235년부터 284년에 이르는 동안 로마는 최악의 위기 시대
내란이 경제적 파멸을 초래
전쟁이 계속되면서 농업과 상업은 피폐
무절제한 화폐발행으로 화폐가치가 하락
평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이 부과
전쟁과 기근에 이어 전염병이 창궐
외적의 침입
설상가상으로 로마는 외적의 침입이라는 또 하나의 시련에 직면
서쪽의 게르만족, 동쪽의 페르시아인이 로마를 칩입
3세기의 문화
최악의 위기를 맞은 로마의 3세기는 고뇌로 가득 차 있었음
황제 필리푸스(244-249)의 흉상은 자신이 곧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
이런 시대 정신에 부응해 내세적인 성격이 신플라톤주의가 전면에 등장
신플라톤주의자는 플라톤 사상의 종교적 성향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것
신플라톤주의의 근본 가르침은 유출로서, 모든 존재는 연속적인 유출의 흐름속에서 신으로부터 발생된다는 것
유출의 첫 단계는 세계 영혼의 유출
세계 영혼으로부터 신성한 이념이 나오고, 다시 여기에서 개체의 영혼이 나옴
유출의 마지막 단계는 물질
물질은 그 자체의 형태나 속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정신의 결여, 즉 신으로부터 나온 정신의 빛이 다 타버리고 난 후에 남은 찌꺼기에 불과
그렇기에 물질은 악과 어둠의 상징으로서 경멸받아 마땅
인간이 영혼은 본래 신의 일부분이었지만 물질과 결합하면서 그 신적인 근원으로부터 분리
인생의 최고 목표는 신과의 신비한 합일이며 그 합일은 명상을 통해 그리고 영혼을 육체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킴으로서 달성
인간은 마땅히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육체를 복종시켜야 함
플로티노스
신플라톤주의의 진정한 창시자는 플로티노스로서 204년경 이집트에서 태어남
그는 만년에 로마에서 가르쳤으며 주로 상류 계층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음
비합리적인 관점과 국가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신플라톤주의는 3,4세기에 로마에서 폭발적 인기
10. 로마의 쇠퇴원인
쇠퇴의 내적 원인
내부 문제들 가운데 일부는 정치적인 것
원수정 시대 로마의 가장 뚜렷한 정치적 결함은 분명한 제위 계승법이 없었다는 것
지배자가 갑자기 사망했을 경우에 그 뒤를 누가 이을 것인지가 확실치 않았기에 내란이 발생
폭력에 의존하는 내란 상황에서는 더 큰 폭력을 초래
또한 로마의 최대 정치적 약점은 많은 인민을 정치에 참여시키지 못했다는 것(무관심의 팽배)
경제적 원인
로마의 가장 심각한 경제 문제는 노예제와 인력 부족
로마 문명은 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로마의 도시들은 대체로 노예들이 생산하는 잉여 농산물에 의해 존속
그러나 노예들이 지나치게 혹사되었던 까닭에 노예 인구의 현상 유지마저도 불가능
또한 노예제로 인해 불황 타개를 위한 기술 향상이 등한시
로마의 지주들은 기술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 간주하여 이에 무관심
노예 노동력이 존재했기에 기계 장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천박하다 여김
그러는 동안 농업 잉여는 서서히 감소
인력의 부족
인력 부족은 로마의 경제 문제를 크게 악화
대외 정복이 끝나고 노예제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농업 인구가 많이 필요했으나, 야만인의 지속적인 압력으로 인한 병력의 증가,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인해 인구가 격감(로마 인구의 1/3이 격감)
시민적 이상의 결여
3세기의 로마 제국은 공통의 시민적 이상을 결여
로마 제국이 관대한 평화 정책을 펴지 않고 오직 빈번한 전쟁과 강압적 징세만을 일삼았을 때, 속주민들은 로마의 이상을 위해 충성하지 않음
로마는 무관심과 더불어 쇠락했으며, 일거에 끝장난 것이라기 보다는 흐느낌 속에서 서서히 종말을 맞이함
미트라 숭배와 기독교의 전파
원수정 시대의 로마인은 공화정 시대에 비해 구원 종교에 대해 한층 깊은 관심을 보임
미트라 숭배는 지모신 및 세라파스 숭배자들을 다수 흡수하여 수천 명의 신도들을 얻음
서기 40년 경 로마에 처음으로 기독교인이 등장
기독교는 서서히 성장하여 마침 내 미트라 숭배를 제치고 구원 종교들 가운데 가장 널리 전파
8. 로마법
로마법의 초기 발전
로마가 후대에 남긴 최대의 유산 가운데 하나가 로마법
로마법은 대략 기원전 450년경 12표법이 공표되면서부터 시작해서 완만히 발전해 온 결과물
원수정 시대의 로마법
로마법의 발달이 절정에 달한 때는 원수정 시대
아우구스투스 이래의 로마 황제들이 탁월한 일부 법학자들에게 법정에서 심리 중인 사건의 법률 문제에 관해 그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
이는 로마법의 근간으로 수용
로마법의 세 갈래
법학자들의 영향 하에서 발전을 거듭한 로마법은 시민법, 만민법, 자연법 등 세 갈래로 구분
시민법이란 로마 및 그 시민들에 대한 법
만민법은 민족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법률
만민법은 시민법보다 우월하지는 않았지만 제국의 외래 거주자들에게 적용됨으로서 시민법을 보완
자연법
로마법에서 가장 흥미롭고도 중요한 갈래는 자연법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평등하며, 정부도 침범할 수 없는 일정한 기본 권리를 가짐
자연법은 국가 그 자체보다도 우위에 놓여 있으며, 그것을 위배하는 모든 지배자는 폭군으로 전락
9. 서기 3세기의 위기(180-284)
제위 계승 문제
서기 180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하면서 자애로운 황제의 지배시대는 막을 내림
자애로운 황제의 지배시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아들이나 친인척이 아닌 유능한 젊은이를 골라 제위를 계승했기 때문
그러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무능한 패륜아인 자신의 아들 코모두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줌
제위에 오른 코모두스는 사악한 취미에 탐닉하고 원로원을 공공연히 경멸하고, 잔인한 지배를 이어가다 결국 서기 192년에 궁정 파벌에 의해 교살당함
코모두스의 뒤를 이을 분명한 후계자가 없었기에 그 후의 사태는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황제 자리를 향한 군사령관들의 내란이 지속
원로원이 지닌 이론상의 권리마저도 묵살한 채 노골적인 군사독재를 자행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
서기 235년에서 284년까지 무려 26명의 군인 황제들이 등장했으며 이들 중 25명이 폭력에 의해 살해
내란의 결과
235년부터 284년에 이르는 동안 로마는 최악의 위기 시대
내란이 경제적 파멸을 초래
전쟁이 계속되면서 농업과 상업은 피폐
무절제한 화폐발행으로 화폐가치가 하락
평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이 부과
전쟁과 기근에 이어 전염병이 창궐
외적의 침입
설상가상으로 로마는 외적의 침입이라는 또 하나의 시련에 직면
서쪽의 게르만족, 동쪽의 페르시아인이 로마를 칩입
3세기의 문화
최악의 위기를 맞은 로마의 3세기는 고뇌로 가득 차 있었음
황제 필리푸스(244-249)의 흉상은 자신이 곧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
이런 시대 정신에 부응해 내세적인 성격이 신플라톤주의가 전면에 등장
신플라톤주의자는 플라톤 사상의 종교적 성향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것
신플라톤주의의 근본 가르침은 유출로서, 모든 존재는 연속적인 유출의 흐름속에서 신으로부터 발생된다는 것
유출의 첫 단계는 세계 영혼의 유출
세계 영혼으로부터 신성한 이념이 나오고, 다시 여기에서 개체의 영혼이 나옴
유출의 마지막 단계는 물질
물질은 그 자체의 형태나 속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정신의 결여, 즉 신으로부터 나온 정신의 빛이 다 타버리고 난 후에 남은 찌꺼기에 불과
그렇기에 물질은 악과 어둠의 상징으로서 경멸받아 마땅
인간이 영혼은 본래 신의 일부분이었지만 물질과 결합하면서 그 신적인 근원으로부터 분리
인생의 최고 목표는 신과의 신비한 합일이며 그 합일은 명상을 통해 그리고 영혼을 육체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킴으로서 달성
인간은 마땅히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육체를 복종시켜야 함
플로티노스
신플라톤주의의 진정한 창시자는 플로티노스로서 204년경 이집트에서 태어남
그는 만년에 로마에서 가르쳤으며 주로 상류 계층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음
비합리적인 관점과 국가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신플라톤주의는 3,4세기에 로마에서 폭발적 인기
10. 로마의 쇠퇴원인
쇠퇴의 내적 원인
내부 문제들 가운데 일부는 정치적인 것
원수정 시대 로마의 가장 뚜렷한 정치적 결함은 분명한 제위 계승법이 없었다는 것
지배자가 갑자기 사망했을 경우에 그 뒤를 누가 이을 것인지가 확실치 않았기에 내란이 발생
폭력에 의존하는 내란 상황에서는 더 큰 폭력을 초래
또한 로마의 최대 정치적 약점은 많은 인민을 정치에 참여시키지 못했다는 것(무관심의 팽배)
경제적 원인
로마의 가장 심각한 경제 문제는 노예제와 인력 부족
로마 문명은 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로마의 도시들은 대체로 노예들이 생산하는 잉여 농산물에 의해 존속
그러나 노예들이 지나치게 혹사되었던 까닭에 노예 인구의 현상 유지마저도 불가능
또한 노예제로 인해 불황 타개를 위한 기술 향상이 등한시
로마의 지주들은 기술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 간주하여 이에 무관심
노예 노동력이 존재했기에 기계 장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천박하다 여김
그러는 동안 농업 잉여는 서서히 감소
인력의 부족
인력 부족은 로마의 경제 문제를 크게 악화
대외 정복이 끝나고 노예제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농업 인구가 많이 필요했으나, 야만인의 지속적인 압력으로 인한 병력의 증가,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인해 인구가 격감(로마 인구의 1/3이 격감)
시민적 이상의 결여
3세기의 로마 제국은 공통의 시민적 이상을 결여
로마 제국이 관대한 평화 정책을 펴지 않고 오직 빈번한 전쟁과 강압적 징세만을 일삼았을 때, 속주민들은 로마의 이상을 위해 충성하지 않음
로마는 무관심과 더불어 쇠락했으며, 일거에 끝장난 것이라기 보다는 흐느낌 속에서 서서히 종말을 맞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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