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한국의 문화적 특징
1. 서론
2. 본론: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미친 집단주의의 영향.
1) 4.19 혁명
2) 5.18 광주민주화운동
3) 노동운동
3. 결론
1. 서론
2. 본론: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미친 집단주의의 영향.
1) 4.19 혁명
2) 5.18 광주민주화운동
3) 노동운동
3. 결론
본문내용
불량도시락 거부투쟁 등을 이어나갔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임금과 초과 수당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는 가만히 있다 얻어진 것들이 아니다. 모두 이들이 역사 속에서 집합하여 외쳤기 때문에 현재로써 누릴 수 있는 고마운 것들인 것이다. 결국 노동을 통해 얻은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의 질도 끌어 올렸다. 점차 선진국화 되어가는 자본주의 계열에 대한민국도 발을 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3. 결론
한국인에게는 매우 독특하고도 신기한 성질인 ‘집단주의’가 있다. 개화기부터 살펴보면 언제라도 국민은 국가의 위험에 등 돌린 적이 없었다. 개화기의 위정척사운동, 일제강점기의 1919년 3월 1일의 만세운동이 그러했다. 남북전쟁 이후 민주화를 위해 부정선거와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고 IMF에는 집에 있는 금을 끌어 모아 국채를 갚아나갔다. 굉장히 독특하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보아도 이러한 국민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런 집단주의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미친 영향을 근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들을 꼽아 살펴보았다. 본고에서 다룬 집단주의가 민주주의 와 자본주의에 영향을 준 사례는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는 4·19 혁명이었고 두 번째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며 마지막은 노동운동이었다.
첫 번째 4.19 혁명은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 제1공화국인 자유당이 당시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해 개표 조작을 한 것으로 시작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민들은 이에 반발했고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삽시간에 퍼져 시위형태로 퍼지게 되었고 부정선거에 대하여 항쟁하는 대학생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전국구로 확산되게 되었다. 이 혁명은 반독재를 위해 국민이 집단적으로 뭉쳐 민주주의를 수호한 혁명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5·18 광주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에서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발발한 사건이다. 광주에 있는 거의 모든 남학생들이 길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의 시위를 전두환은 자신이 점령한 군사력으로 진압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대해 시위대는 진압군과 격렬한 대립을 벌였고 결과적으로는 진압군과 광주 시민들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광주는 진압되었고, 수많은 사상자 발생했다. 아직까지도 광주의 시위 정신은 민주화의 모범으로 남는다.
마지막은 노동이다. 전쟁이후 한국은 하루 12시간 이상씩 공장이 돌아가고 임금은 매우 낮은 국가였다. 또한 외화벌이가 급했던 시기에는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상당히 증가했다. 국가에서는 해외 파견 간호사나 광부 등을 장려했고 이를 통해 노동자를 선발하여 수많은 이주노동자를 양산했지만 이 속에서도 한국인은 한국인이라는 집단의식, 한국이 잘 살아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매우 많은 수가 해외 파견 이주 노동자 행을 걷게 된다. 노동에서도 집단주의 덕분에 우리는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 노동자들이 후에 노동조합 등을 설립하여 노동권을 보호하는 운동을 진행하게 되자 더불어 민주주의의 성장도 동반되게 된다.
3. 결론
한국인에게는 매우 독특하고도 신기한 성질인 ‘집단주의’가 있다. 개화기부터 살펴보면 언제라도 국민은 국가의 위험에 등 돌린 적이 없었다. 개화기의 위정척사운동, 일제강점기의 1919년 3월 1일의 만세운동이 그러했다. 남북전쟁 이후 민주화를 위해 부정선거와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고 IMF에는 집에 있는 금을 끌어 모아 국채를 갚아나갔다. 굉장히 독특하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보아도 이러한 국민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런 집단주의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미친 영향을 근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들을 꼽아 살펴보았다. 본고에서 다룬 집단주의가 민주주의 와 자본주의에 영향을 준 사례는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는 4·19 혁명이었고 두 번째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며 마지막은 노동운동이었다.
첫 번째 4.19 혁명은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 제1공화국인 자유당이 당시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해 개표 조작을 한 것으로 시작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민들은 이에 반발했고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삽시간에 퍼져 시위형태로 퍼지게 되었고 부정선거에 대하여 항쟁하는 대학생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전국구로 확산되게 되었다. 이 혁명은 반독재를 위해 국민이 집단적으로 뭉쳐 민주주의를 수호한 혁명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5·18 광주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에서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발발한 사건이다. 광주에 있는 거의 모든 남학생들이 길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의 시위를 전두환은 자신이 점령한 군사력으로 진압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대해 시위대는 진압군과 격렬한 대립을 벌였고 결과적으로는 진압군과 광주 시민들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광주는 진압되었고, 수많은 사상자 발생했다. 아직까지도 광주의 시위 정신은 민주화의 모범으로 남는다.
마지막은 노동이다. 전쟁이후 한국은 하루 12시간 이상씩 공장이 돌아가고 임금은 매우 낮은 국가였다. 또한 외화벌이가 급했던 시기에는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상당히 증가했다. 국가에서는 해외 파견 간호사나 광부 등을 장려했고 이를 통해 노동자를 선발하여 수많은 이주노동자를 양산했지만 이 속에서도 한국인은 한국인이라는 집단의식, 한국이 잘 살아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매우 많은 수가 해외 파견 이주 노동자 행을 걷게 된다. 노동에서도 집단주의 덕분에 우리는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 노동자들이 후에 노동조합 등을 설립하여 노동권을 보호하는 운동을 진행하게 되자 더불어 민주주의의 성장도 동반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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